커피 회사 직원은 퇴사하면 무슨 커피 마실까?
퇴사자에게도 매일 아침 커피가 필요했다. 그런데 마시게 되는 커피는 달라졌다. 특히 나는 F&B 업계에 몸담고 있었기에 변화가 조금은 더 컸다. 그동안은 임직원 할인으로 30% 할인된 가격에 커피를 사 마시고 있었기 때문이다. 매일 사 마신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타격은 있었다. 아니, 오히려 악조건에 놓여 있었다.
커피 회사에 4년을 근무하며 커피 맛에 대한 기준이 평범보다는 높아진 탓이다. 4년의 세월이 내 미뢰 알알이 박혀 있었다. 입사자 교육 때부터 커피 산지와 가공방법에 따른 원두 맛에 대한 강의를 들었고, 직접 에스프레소 샷도 내려보며 원두 맛을 구별해 본 기억도 있다. 조직문화 담당자로 일하며 옆자리 바리스타 선생님을 설득해 사내에서 핸드드립 원데이 클래스도 열어 수강했다. 트렌드도 알아야 한다며 커피가 맛있는 카페를 찾아다니기도 했다.
옆자리 동료가 바리스타 선생님들이기에 어깨너머로 배운 것도 많다. 네임드 로스터리 카페의 원두를 사 오면 맛있게 내려주셨다. 10년 이상 경력의 바리스타 선생님의 훌륭한 실력 덕에 포도껍질, 자두, 견과류 등 원두 포장지에 적혀있는 맛을 온전히 맛볼 수 있었다. 그리고 옆에서 핸드드립 내리는 방법도 배웠다. 커피 회사에서 이런 세월을 지내며 커피 맛에 대한 기준이 쓸데없이 높아져 있었다. 전문가는 아니어도 서당개 생활 4년이었다.
내게 커피 하면 ‘비용절감’이라는 키워드가 자동연상되는 것도 특이점이다. 부동산 공부를 시작한 뒤 커피값에 대한 죄책감이 생긴 탓이다. 부동산 유튜버 중 많은 분들은 절약을 강조하는데 특히 커피값을 줄이라고 많이 말한다. 5천 원짜리 커피대신 300원짜리 카누를 마시라고 한다. 나 또한 이에 동의했다. 원두값을 생각하면 아메리카노 한잔의 값은 너무 비싸다. 대체품도 많았다. 그래서 직원 할인받는 회사에 다님에도 커피를 줄였다. 그렇게 아낀 돈으로 나도 집을 샀다.(아직 등기도 안 쳤고 빚도 절반 이상이지만요..)
퇴사하니 상황은 더 타이트해졌다. 그나마도 며칠에 한번 사 먹던 아메리카노까지 끊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전 회사 대표님 경영 메시지의 한 구절이 현실화되고 있었다. 직원 할인받는 입장에서 벗어나 상품을 기획해야 한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저가 커피가 돌풍을 일으키며 웬만한 커피 회사들이 모두 크게 타격받은 상황이다. 직원일 때 나는 ‘메가커피 너무 쓰고 맛도 없는데 왜 마시지? 아무리 메가커피가 싸다고 해도 맛없는 커피를 매일 마시고 싶진 않을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었다. 지금 생각하니 뭣도 몰랐다.
퇴사를 하니 바로 찐 고객의 입장이 됐다. 매일 마시는 모닝커피에 5천 원을 태우는 게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아침에 향이 풍부한 커피맛을 느끼기보다는 그냥 커피를 마신다는 그 ‘기분’이 중요했다. 목구멍을 넘어가는 쓴 맛과 함께 쓰디쓴 밥벌이의 고단함을 같이 넘기고 싶었다. 고객들도 이 마음이었을 것 같다.
그런데 퇴사 후 한 푼 한 푼의 가치가 소중해진 나는 메가 커피, 컴포즈 커피에 쓰는 1,500원도 아까웠다. (아이스는 2,000원,,,) 정확히는 가격보다도 가격으로 사는 커피의 맛이 아쉬웠다. 나는 집에서 대부분의 작업을 하니 공간을 이용할 필요도 없었기에 더 아까웠다. 캡슐커피, 드립백도 맛이 없었다. 모두 쓸데없이 높아진 내 입맛을 충족시키지 못했던 것이다.
결론은 맛있는 커피를 마시고 싶었는데 거기에 절약을 곁들여야 했다. 그래서 퇴사한 커피 회사 직원인 나는 맛있는 원두를 직접 사서 핸드드립을 내려 먹는다. 핸드드립 도구는 다행히 퇴사 전 바리스타 선생님께 배워서 적당히 이용할 줄 알았다. 한창 핸드드립을 배울 당시에 남자친구가 그라인더와 드리퍼를 선물로 사주었기에 장비도 갖추고 있었다.
핸드드립 방법은 직접 배우지 않아도 유튜브에 찾아보면 많이 나와 있다. 옆자리 바리스타 선생님은 원데이 클래스를 준비할 때 에그 문화센터의 이상순 님 강좌 영상을 보고 준비하셨다. 핸드드립을 잘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쉽게 설명해 낸 영상이었다. 이런 영상을 보면서 몇 개월간 그냥 따라 해 보면 누구나 핸드드립을 내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도 3개월이 지나니 이제는 제법 물줄기를 가눌 줄 알게 되었다. 시간의 복리로 더 완성도 있는 커피를 내릴 수 있을 것이다.
https://youtu.be/SibShmFdKl8?si=YLcthhOM_3y6JVyH
장비는 갖췄으니 문제는 원두였다. 사실 커피의 맛을 좌우하는 것이 원두인데 나도 아직 시행착오를 겪는 중이다. 동네에서 직접 로스팅한 원두를 사봤는데 몇 번 실패했다. 그래서 커피 덕후인 남자친구의 도움을 받았다. 남자친구는 까다롭기로는 어디 가서 지지 않는 ㅎㅎ 디자이너인데 커피 쪽에서도 그 세심함을 발휘하고 있다. 여기에 가성비까지 따지는 야무진 소비자인 그가 내 원두도 같이 사줬다. 독거 퇴사자에게 보급품처럼 보급이 되고 있다.
남자친구는 ‘소소한 사치’라는 곳을 자주 이용한다. 경기도 부천 소사역 부근에 위치한 직접 로스팅하는 카페다. 이름부터 재미있다. 소사역에 위치한 소소한 사치. 줄이면 '소사'다. 사장님의 센스를 이름에서부터 느낄 수 있다. 원두는 네이버 스마트 스토어에서 온라인 구매가 가능하고 200g에 만 원 내외로 살 수 있다. 한잔에 20g을 내리니 10잔 마실 수 있다. 한잔에 1,000원인데 메가나 컴포즈와 비교가 안 되는 풍부한 향을 느낄 수 있다. (원두 500g을 사면 단가를 더 줄일 수 있다,,,)
그동안 원두는 산미를 좋아하는 나의 취향을 반영해 에티오피아, 온두라스, 코스타리카 등으로 보급을 받았는데 ㅎㅎ 향이 풍부해서 맛있고 먹는 재미가 있다. 지금은 에티오피아 계열의 원두를 마시는 중이다. 개봉했을 때는 꽃향이 많이 나서 향긋했는데 개봉한 지 며칠이 지난 지금은 레드 와인 맛이 더 많이 나고 타닌감이 느껴져 신기하다. 그의 깐깐한 기준을 통과할만하다고 인정해 버렸다.
원두를 구매할 때는 크게 고소한 맛과 신 맛 둘로 나눠서 찾아보면 편하다. 나는 향이 다채롭고 화사한 꽃향, 과일향을 좋아해서 신맛을 좋아하는데 견과류, 초콜릿, 달콤한 맛을 더 선호하며 위에 부담이 덜한 것을 원하면 고소한 맛을 고르면 된다. 맛은 산지를 기준으로 우선 구별하고 설명해 놓은 노트를 보면서 맛을 상상한다.
여기에 어떤 날은 추가로 MCT 오일을 한 스푼 넣어 마신다. MCT 오일은 쉽게 생각해 코코넛 오일로 무색무취다. 커피 향을 크게 해지지 않는다. 요즘 저속노화 식단에 관심이 많은데 정희원 의사 선생님이 간헐적 단식 시간을 유지하고 싶을 때 MCT 오일을 아메리카노에 넣어서 마신다고 하셔서 따라 해 보는 중이다. MCT오일은 먹어도 단식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내고 지방이기에 포만감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사실 이렇게 유난을 떠는 나도 어떤 날은 커피 내리기 너무 귀찮다. 그래도 내리는 데 5분 정도밖에 안 걸린다는 생각에 마음을 다잡기 수월하다. 커피 내릴 때 명상하는 기분도 나서 좋다. 그라인더에 원두를 갈면서, 물을 저울에 재면서 멍 때리기도 하고 그 잠시 동안 복잡했던 생각이 정리되기도 한다. 이제는 따뜻한 라테를 만들기 위한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넘어가야 되나 싶기도 하지만 지금 이대로도 충분히 좋다. 퇴사자에게 핸드드립 커피는 정말 좋은 선택인 것 같다. 커피도 자립이 필요하다.
{퇴사자를 위한} 핸드드립 단계 및 입문용 장비
* 고급장비는 아니고 그라인더를 제외하고는 사내 바리스타 선생님이 원데이 클래스 때 수업용으로 구매하신 장비입니다. (제품 링크 걸어드려요.)
1. 원두 1회분(20g) 무게를 잰다.
- 저울: 아쿠바 커피저울 (15,250원)
https://link.coupang.com/a/bUQssw
2. 원두를 내려마시기 좋은 가루 형태로 간다.
- 그라인더: 타임모어 체스넛 C2 커피그라인더 (42,000원)
https://link.coupang.com/a/bUQoIc
여유가 되시면 코만단테를,,,
3. 드리퍼와 서버를 세팅한다.
- 드리퍼: 하리오 커피드리퍼 (5,370원)
https://link.coupang.com/a/bUQnx9
- 서버: 칼리타 드립서버 500cc (17,300원)
https://link.coupang.com/a/bUQn19
4. 종이 필터를 깔고 린싱을 준비한다.
- 종이필터: 하리오 커피필터 여과지 (3,89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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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린싱 1회 후 드립용 물을 4회 정도 내린다.
- 드립 주전자: 바리스타 드립포트 (13,650원)
https://link.coupang.com/a/bUTgws
여유가 되시면 펠로우 드립포트를,,,
6. 서버를 흔들어 내린 커피를 섞어준 뒤 컵에 옮겨 마신다.
* 장비 구매 계 : 97,460원
(배송비는 제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