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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드 Oct 03. 2024

회사 정수기로부터 자립을 외치다

그런데 ChatGPT를 곁들인,,


벌써 또 물을 주문해야 한다고?


퇴사를 하니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이슈가 발생한다. 이번에는 물이다. 퇴사 후에는 평소 마시던 물보다 더 많은 물이 필요했다. 하루에 8시간 이상 지내던 사무실에 출근하지 않게 된 후 주작업 공간으로 카페대신 집을 택한 탓이다. 게다가 이전에는 임직원 할인으로 생수를 저렴한 가격에 마시고 있었는데 퇴사 후 임직원 혜택이 사라졌다. 소비량은 늘었는데 단가도 비싸지는 상황이었다. 당분간 벌이가 없을 예정이기에 모든 살림은 절약의 눈초리로 다시 점검해야 했다.


그동안은 생수를 주문해서 마시고 있었다. 물은 대부분 회사에서 마시는 데다가 1인 가구이기에 정수기는 과하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요리에 쓰는 물도 아주 가끔 라면 끓이는 정도라 많지 않았다. 그래서 퇴사 전에는 7,980원으로 500ml 40병을 구매해 한 달을 연명할 수 있었다. 한 병에 200원 꼴이었다. 밖에서 사 마시는 생수가 아까울 정도로 저렴한 가격이었다.


그런데 퇴사를 하니 물도, 요리도, 심지어 커피까지 집에서 해결하는 비중이 높아졌다. 생수 줄어드는 속도도 덩달아 빨라졌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생수를 마실 때마다 나오는 페트병도 매번 죄책감을 들게 하는 요소였다. 게다가 미세 플라스틱으로 인한 건강 문제도 늘 걸렸지만 흐린 눈으로 지나친 지 오래였다. 이제 생수를 더 많이 사 먹으면 이런 찝찝함은 더 커질 테다. 그래서 어떤 물을 마셔야 할지 알아보기 시작했다.


솔직히 물이 다른 것에 비하면 그렇게 비싼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정수기는 여전히 과했다. 렌털 구독형은 최소 2~3만 원대였고 주방도 좁아 놓을 곳도 없었기에 정수기는 제외했다. 퇴사 전 F&B 트렌드 조사하다가 지나친 브리타 정수기가 떠올랐다. 자료에서 본 이 정수기는 페트병 생수보다는 좀 더 친환경적으로, 간편하면서도 수돗물 특유의 냄새를 없애준다는 것이 요지였다. 친구 자취방 냉장고 안에서 본 브리타 정수기도 생각났다.


브리타 정수기는 여러 버전이 있었는데 종류가 너무 많아서 뭘 사야될지 몰랐다. 고민 끝에 ‘마렐라 XL(3.5L)’로 구매했다. 가격은 필터 1개 포함 37,000원이었다. (지금은 쿠팡에서 할인쿠폰으로 32,000원인 것 같다.) 배송받고 보니 생각보다는 커서 2.4L짜리를 사는 게 나았을 것 같다. 좀 더 귀여웠을 것 같기도 하다. 3.5L가 이렇게 큰 줄 몰랐다.


ChatGPT에게 물어보았습니다,,



필터는 한 달에 한번 갈아주면 됐다. 필터 가격은 4개 29,200원이라 하나에 7,300원 꼴이었다. 하루에 2~3회의 물을 채우는 것 같다. 생수보다 저렴하고 쓰레기가 덜 나와 좋다. 그리고 내가 마실 물을 좀 더 꼼꼼히 알아보고 선택한 기분이 들어 자립한 기분도 든다.



퇴사를 하고 보니 바쁘다는 핑계로 무지성 위탁을 한 것이 참 많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도 그랬다. 내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물을 대충 제일 간편해 보이는 생수로 취했다. 틀린 것은 아니었지만 숙고의 시간이 부족했음은 사실이다. 4년 전, 처음 독립하고 이것 저것 신경쓸 것이 많아 조금 더 알아볼 여유가 부족했다. 이제는 조금 더 내 일상에 집중할 수 있다.


회사를 떠나는 자립은 나에 대한 관찰과 나를 위한 번거로움을 수반했다. 진짜 내게 필요한 물의 양은 얼마나 되는지, 정수된 물을 어떻게 얻을 것인지, 어떤 방식이 나의 라이프 스타일과 맞을 것인지 따져보는 과정이었다. 귀찮았지만 나는 어떤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어떤 것이 내게 필요한지 더 또렷해졌다. 앞으로도 이런 자잘한 결정들이 나라는 사람을 분명하게 만들 것 같다. 이렇게 나는 회사로부터 자립해가고 있다.



필터를 갈아 정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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