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자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
퇴사하고 수영을 시작했다. 운동을 하나 시작해야 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수영이었다. 많은 운동중 수영을 택한 이유는 직장인 시절 진입장벽이 꽤 높았던 운동이기 때문이다. 수강신청부터 쉽지 않았고 특히 새벽 수영은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기에 언감생심이었다. 이런 현실에서 수영은 늘 버킷리스트였다. 생존에도, 호캉스에도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퇴사하고 가장 먼저 떠오른 운동이 수영이었다. 퇴사하니 오후 1시 수업을 여유롭게 등록할 수 있었다.
퇴사자에게 새로운 운동을 배운다는 것은 꽤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퇴사 후 보내는 이 시간을 결코 실패로 만들 수 없는 장치가 될 것 같았다. 만약 퇴사 기간 동안 시도한 모든 것들이 실패한다고 하더라도 수영만큼은 훈장처럼 남을 것이다. 또 스쿠버다이빙이나 서핑같이 아예 꿈꿔볼 수 없던 운동을 시작할 수 있는 기회도 마련한 것일 테다. 생존을 위해서도, 삶을 더 즐기기 위해서도 수영은 가치 있었다.
운동을 시작한 지 3개월이 지나니 운동은 퇴사한 내게 필수였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운동은 나를 움직이게 했다. 운동을 가지 않는 날은 늘 몸이 찌뿌둥해 생산적인 것들을 지속하기가 어려웠고 누워있고만 싶었다. PT선생님에게 이런 얘기를 하니 집에만 있으면 움직임이 줄어 대사가 떨어진다고 했다. 그래서 몸이 축 처지는 것이다. 특히 좁은 원룸에 살고 있기에 더 심했다. 그저 몇발자국으로 화장실 가는 일이 전부였다. 이런 내게 운동, 특히 유산소 운동은 신진대사를 원활하게 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운동은 시간관리에도 중요했다. 퇴사를 하니 늦잠이나 피곤한 컨디션 등 여러 이유들로 오전 시간을 허투루 보내는 날도 있는데 이런 날에는 하루를 망쳤다는 자괴감이 엄청났다. 사실 아직 망친 것도 아니다. 나에게는 아직 오후가 남아 있는데 이 자괴감은 오후까지 포기하게 만들어 더 속상했다. 죄책감에 포기하는 나 자신이 한심했다. 그런데 중간에 운동을 다녀오니 자괴감의 흐름이 끊어졌다. 기분도 좋아졌다. 그래서 오후 시간에는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었다. 수영은 하루를 반만 망치게 해 줬다.
또 운동은 멘탈관리에도 도움이 됐다. 작은 성취로 행복과 자신감을 줬다. 수영은 단계별로 나눠 진도를 나간다. 호흡, 발차기, 자유형 팔 돌리기, 옆으로 숨쉬기 등 전혀 못하는 것을 처음에 선생님이 알려주고 레인을 돌며 혼자 익히는 구조다. 가끔 개별로 봐주긴 하지만 단체강습 특성상 늘 있는 일이 아니다 보니 처음엔 혼자 어찌할 줄 모르고 무작정한다. 그래서 호흡조차 어려워 헤매고 힘이 들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발차기, 자유형, 배영으로 진도가 나갈수록 이전에 어려웠던 것들이 쉽게 되기 시작한다. 매일의 연습이 누적된 것이다. 처음에 못하던 것들을 이제는 능숙하게 해내니 뭔가 성취한 기분에 뿌듯했다. 그리고 지금 못하던 것도 나중에 쉬워질 것이라는 자신감도 얻었다.
이후 안 풀리는 문제가 있으면 신기하게 수영을 떠올리게 된다. 호흡에서 발차기로, 발차기에서 팔돌리기로 나아갈 때 맛봤던 작은 성공 경험이다. 이 경험을 본따 단계를 쪼개고, 이전에 배운 것을 계속 지속하면서 익숙하게 하는 동시에 새로운 목표에 도전한다. 어렵고 새로운 목표를 잘게 쪼개 작은 성취감을 가지는 경험이다. 많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해도, 특출 나지 못해도 그저 앞으로 나가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기쁨과 위안이 된다. 수영에서 인생을 배웠다.
퇴사 후 꾸려간 루틴에 운동을 넣은 것은 멘탈 관리에도, 체력에도 좋았다. 쉽게 흔들릴 수 있는게 퇴사자의 멘탈이었고 이는 생활 전반을 좌우했다. 흔들리지 않는 멘탈과 체력은 생산성을 높이는 1등 공신이었다. 그래서 운동을 하나 더 늘렸다. 월수금엔 수영을, 화목엔 요가를 한다. 요가는 몸으로 하는 명상으로 머리를 비울 수 있다. 그리고 접힌 명치와 굽은 어깨를 펴주는 점도 좋다. 순환에도 좋지만 어깨를 펴니 자신감도 생기는 것 같다. 운동은 벌써 내 퇴사 생활에 빠질 수 없는 동반자가 됐다. 무엇보다 운동은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퇴사에는 몸과 마음의 기초 체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