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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드 Oct 11. 2024

간편식대신 진짜 삶을 요리하다


퇴사하니 유튜브 알고리즘에 퇴사자가 많이 등장한다. 물론 내가 검색을 많이 해보니까 뜬다. 그중 30대 퇴사자 몇 명의 현실이 기억에 남는다. 호기롭게 퇴사했지만 재취업이 안 된다면서 괴로워하는 모습이었다. 섣부르고 배도 부른 결정이었다면서 자취방에서 전자레인지에 냉동볶음밥을 데워 먹거나, 편의점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는 모습이 나왔다. 남일 같지 않았다.


그들의 현실은 공감 가면서도 공감가지 않았다. 특히 가공식품을 먹는 상황이 그랬다. 나 또한 독립 초기에 요리에 대한 막연함과 남는 재료 탓에 가공식품만으로 삶을 꾸려봤다. 이는 건강에도, 멘탈에도 좋지 않았다. 썰고 볶고 조리는 과정이 번거롭지만 나를 돌보는 과정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것들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여유 없는 삶이 좋을 리 없었다.


식비 절약 차원에서도 직접 만드는 게 절약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퇴사하면 하루 한 끼도 아니고 세끼를 챙겨야 하니까. 삼시 세 끼는 정말 보통이 아니다. 세 끼를 모두 요리하면 힘들긴 해도 확실히 절약이 되긴 할 것이다. 아무리 취업준비를 한다고 해도 직장인일 때보다는 시간이 많아진 것은 사실이니까 요리할 시간은 물리적으로 더 있긴 하다.


어쨌든 그들의 선택은 그들의 선택이니 존중하고, 덕분에 내 삶을 꾸리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나는 퇴사하고 요리를 직접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퇴사 선물로 원목도마와 주물냄비도 받았다. 과연 어떻게 됐을까.



못하니까 못하겠어.


요리 초짜의 2개월 후기는 ‘역시 어렵다’다. 못하니까 더 못하겠는 그런 악조건의 상황이다. 칼질도 서툰 데다 레시피 영상을 여러 번 돌려 보며 하니 시간도 많이 걸린다. 두 끼, 세 끼를 요리하다 보면 조리와 설거지까지 시간을 보통 잡아먹는 게 아니다. 일주일 식단표 구상과 식재료를 정기 구매하는 일도 만만치 않다. 그래도 포기는 하지 않으려고 한다. 라면만큼 쉬운 요리들만 더 찾을 뿐이다.


힘들어도 요리를 하고자 하는 이유는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위해서다. 내가 직접 해 먹는 밥은 사 먹는 밥보다 몸에 건강할 것이다. 특히 신선한 채소 위주로 가공식품은 최소화하고 불필요한 양념을 덜 이용하기로 마음먹었기에 더 그랬다. 메뉴도 저속노화 식단으로 건강하게 꾸려볼 예정이었다.


요리는 멘탈에도 좋을 것 같았다. 행복은 몰입에서 온다고 하는데 요리를 하는 동안에는 요리에 몰입할 수 있다. 그리고 손으로 무엇인가 만진다는 촉감과 요리를 통한 오감 자극은 삶을 풍성하게 만들 것 같았다. 또한 작은 것이라도 무엇인가를 완성한다는 성취감, 요리도 계속하다 보면 어쨌든 실력이 늘 것이기에 자존감에도 좋을 것 같았다. 좀 더 익숙해지면 볶고 조리는 과정이 주는 번거로움보다는 힐링이 더 클 것이라 믿는다.




이런 불편함을 겪으며 요리가 연애와 비슷한 점이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요즘은 연애하지 않는 사회라고들 한다. 연애가 가성비가 떨어지는 일이 돼서다. 누군가 알아가고 맞춰가는 과정이 만만치 않을뿐더러 헤어지면 상처도 꽤 크다. 데이트하려면 돈과 시간이 많이 드는데 나 혼자 먹고 쉬기도 벅차다. 그래서 <나는 솔로>나 <환승연애> 같은 연애 프로그램으로 연애감정을 대리만족한다는 것이다.


나도 <환승연애>와 <나는 솔로>를 재미있게 봤었다,,,


연애가 어려운 것은 분명 하지만 연애만이 주는 인간적 성숙함과 삶의 풍요로움이 있다고 믿는다. 연애를 안 했다면 나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나로 여태까지 살았을 것이다. 내가 상상할 수 없던 취향이 내 안에 들어올 기회도 없었을 것이다. 연애를 하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보다 미성숙하고 재미없는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요리도 비슷하다. 귀찮지만 건강한 삶을 살게 한다. 어떤 요리를 할지 정하는 것부터 재료 구입, 괜찮은 레시피 찾기, 재료 손질과 칼질, 계량의 과정이 너무나 번거롭고 귀찮다. 그에 비해 맛도 보장되지 않고 먹는 순간은 찰나다. 설거지 시간이 더 길기도 하다. 그래서 사 먹는 게 편하다. 어쩔 때는 돈도 덜 든다. 그러나 요리를 하면 몸도 마음도 건강해진다. 불편함과 건강함은 내 안에서 늘 줄다리기 중이다.


연애감정을 연애 프로그램으로 대리만족하듯 요즘에는 나도 요리 유튜버를 더 찾아보게 된다. 단순 먹방, 가학적으로까지 느껴지는 대식가보다 집밥 느낌으로 조물조물하는 요리해서 잘 먹는 요리 유튜브의 단골이 됐다. 가장 즐겨보는 <플랜디>님의 요리하는 모습을 보며 내가 범접할 수 없는 야무진 손재주와 손맛을 대리만족하는 게 아닐까 싶다.


퇴사 후 요리는 나의 우선순위 과제가 됐다. 포기는 배추 셀 때나 하고,, 대신 조금 익숙해질 수 있도록 '한식조리기능사'를 따볼까 진지하게 고민 중이다. 요리의 경험치를 강제로 늘리면서 레시피 숙지하는 데도 좋을 것 같다. 그리고 백수이기에 고용노동부의 내일배움카드로 수강하면 절반 정도 가격으로 저렴하게 학원 이용이 가능하다. 퇴직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이제는 간편식대신 내 삶을 요리하고 싶다.


허접하지만 노력의 흔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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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runch.co.kr/@beibringen/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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