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전 창업부트캠프를 수강했다. 수강료는 200만 원으로 적지 않았지만 얻은 것이 많았다. 3개월 동안 창업 관련 강의도 듬뿍 듣고, 두 번의 실전 프로젝트도 진행했다. 10만 원을 2주 안에 불려 오는 미션도 수행하고, 팀을 이뤄 서비스까지 런칭해보는 경험도 했다. 이 과정에서 고객에게 직접 영업해 소액이지만 돈도 벌어봤으며 VC앞에서 PT도 하는 등 창업의 AtoZ를 빠르게 맛보는 경험이었다. 씨드 투자도 받지 못했고 프로젝트는 종료됐지만 그래도 창업을 한번 경험한 느낌이었다. 깨닫는 바가 많았다.
첫 번째, 창업은 처음에는 거대해서는 안 된다. 무엇이든 가장 작은 단위로 시작해야 했다. 실패할 확률이 높기 때문에 자원을 투입하는 것은 최소화해야 했다. 가설을 세우고 이를 증명할 수 있는 간단한 시도면 충분했다. 시장의 반응을 계속 테스트한 뒤 입질이 왔을 때 그것을 발전시키는 것이 좋았다. 그리고 이에 집중해 점차 스케일업을 하는 것이 합리적이었다. <아이디어 불패의 법칙>이라는 책에서는 이를 ‘프리토타이핑’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코인 세탁소에서 사용할 수 있는 세탁물을 접어주는 기계를 팔고 싶은데 비싼 돈 들여 개발해서 만들어 놓고 안 팔리면 손해가 막심하다. 이때 프리토타이핑 과정을 거치면 개발비를 아낄 수 있다. 기계 대신 기계인 척을 하는 거다. 기계 옆에 숨겨진 공간을 설치해 구멍으로 세탁물을 넣으면 기계가 돌아가는 것처럼 녹음된 기계음을 틀고 안에서 사람이 세탁물을 개서 다시 구멍으로 건네주면 된다. 이미 상품이 만들어진 것마냥 시장의 니즈를 파악할 수 있다. 이미 많이 알려진 방법이지만 나같이 처음 창업을 접하는 사람에게는 신박하고 유용한 접근이었다. 실제로 교육 수강생 중에서도 2년 동안 퇴근 후 개발한 앱이 시장 반응이 없어 그간의 고생이 물거품으로 돌아갔다는 분도 더러 있었다.
두 번째, 마케팅이 가장 어렵다. 모든 창업 과정에서 거의 대부분 마케팅 문제에 봉착한다. 프로덕트를 생각하고 개발하는 것도 어려운 과정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내 손에서 해결이 된다. 그런데 힘들게 만들어 놓은 상품을 널리 알려 구매까지 이어지게 하는 과정은 내 의지로 되지 않는다. 그래서 어려웠다. 이는 ‘브런치’와도 비슷하다. 글을 열심히 쓰는 것으로는 브런치에서 영향력을 높일 수 없다. 꾸준하게 글을 써 존버의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나를 알릴 수 있는 알고리즘 픽의 기회라도 오고 구독으로 이끌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반복돼야 성장할 수 있다.
과거에는 ‘퍼포먼스 마케팅’이라는 것으로 마케팅 문제를 해결했다. 퍼포먼스 마케팅이란 구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에 연령이나 성별 등의 타깃을 잡아 유료 광고를 돌리는 것이다. 인사팀이었던 나는 처음 듣는 개념으로 관련 강의도 결제해서 들어봤다. 강의에서는 요즘엔 개인정보 문제 때문에 퍼포먼스 마케팅이 잘 안 된다며 ‘오가닉 마케팅’이 점점 더 중요하다고 했다. 내가 들었던 강의 제목도 ‘퍼포먼스 마케팅의 종말’이었다.
‘오가닉 마케팅’은 유료 광고를 집행하지 않고 트래픽을 생성하는 마케팅이다. 그럴듯해 보이지만 쉽게 말해 열심히 블로그나 인스타그램, 네이버 카페 게시물을 올리거나 댓글 달며 입소문이 나게 홍보하는 것이다. 강사였던 스타트업 대표님은 초기에는 네이버 지식인까지 댓글을 달았다고 했다. 회사에서 들었던 노티드 도넛 마케팅 담당자분의 이야기도 생각났다. 노티드도 처음에는 댓글부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제품을 알리는 데에는 시간이 정말 많이 걸릴 수밖에 없다. 우리 창업팀도 마케팅에서 어려움을 겪었고, 다른 팀들도 대부분 마케팅에서 문제를 겪어 종료된 듯 싶었다.
세 번째, 창업 프로젝트 진행 과정에서 나에 대해 알게 된 점도 크다. ‘나는 무엇을 팔 수 있는 사람인가?’ 아이템을 정하는 것이 창업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아이템이 합의가 돼야 팀원도 구할 수 있었다. 아이템은 크게 두 가지 중에서 결정됐는데 하나는 돈 될만한 것을 파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내가 팔고 싶은 것이었다. 나는 후자가 아니면 동기부여가 잘 되지 않았다. 역량도 역량이지만 지속할 수 있는 동기를 찾는 일이 내게 중요함을 깨달을 수 있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내가 팔고 싶은 것은 ‘가치’였다. 그 가치가 와닿지 않으면 아이디어도 생각나지 않았고 움직이지도 않았다. 미련한 생각이기도 하다. 팔리는 것을 먼저 찾고 그에 가치를 갖다 붙이면 될 텐데 나는 태생적으로 그게 잘 안 된다. 머리에서 이해가 돼야 행동까지 이어지는 스타일이다. 나에게 가치 없이 무언가 파는 것은 공허한 외침에 불과했다.
그래서 창업 프로젝트가 끝나고 내가 전하고 싶은 가치를 고민하고 있다. 아직은 잘 모르겠다.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지만 그냥 내 생각을 꾸준히 기록해 보는 방법을 택했다. 몇 달 전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정리하다가 알게 된 뜻밖의 깨달음 덕이다. 심심해서 2019년부터 올린 인스타그램 스토리 게시물을 카테고라이징 해봤더니 특정 몇 가지로 정리가 됐다. 그것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고 그것들이 나였다. 의식적으로 올린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좋았던 것, 싫었던 감정을 순수하게 기록한 것에서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기록하면 내가 보였다.
나의 가치관을 브런치에 기록하고자 한다. 특정 가치관을 한정하지 않고 나라는 인간이 하는 생각들을 가리지 않고 모두 브런치에 업로드해 볼 생각이다. 이는 프리토타이핑과도 같다. 가치관은 내가 팔고 싶은 것의 최소단위다. 글을 올림으로써 내 가치관에 공감하는 분들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여러 가치관 중에도 가장 세상에 소구력 있고 필요한 가치관이 무엇인지 판단 가능하다. 그 가치관을 바탕으로 어떤 상품을 팔 수 있을지 고민해보고 싶다. 정공법이지만 돌아가는 길이고 오래 걸릴 것 같다. 어차피 내 생각 정리도 오래 걸릴 텐데 겸사겸사 오래 걸린다.
그럼에도 이를 시도하고 지속하려는 이유는 좋은 마케팅 툴이 될 것 같기 때문이다. 많은 회사들이 오가닉 마케팅으로 홍보한다는데 나 또한 브런치로 오가닉 마케팅을 하는 것이다. 운이 좋으면 알고리즘을 타고 구글 검색에 걸릴 테다. 그러면 내 글이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분에게 가닿게 되고 그런 분들이 모이면 그들에게 필요한 유형이나 무형의 프로덕트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시간은 오래 걸리겠지만 빨리 급격하게 성장하는 것보다 천천히 단단하게 크는 방법이라 믿는다. 그것이 내가 원하는 성장이다.
그래서 퇴사하고 내 가치관에 대한 글을 열심히 써보고자 한다. 사실 가치관이라고 할 정도로 분명하지 않은 내 생각의 조각들이다. 그런 것들이 모여 나도 모르는 내 가치관이 되리라 믿는다. 결국 ①세상에 널리 전하고 싶은 가치를 고민하고 찾아 ②그것을 꾸준히 기록해 나와 비슷한 이들을 모으는 것. ③그리고 그 가치를 전달하고 실천할 수 있는 프로덕트를 만들어 파는 것. 이것이 퇴사자인 내가 성공할 때까지 지속할 목표다. 그리고 이를 무한히 할 수 있는 최소한의 현금 흐름도 준비를 해두어야 한다. (아마 이모티콘이 될 것 같고 그렇게 되길 바란다.) 그리고 성공하는 사람은 성공할 때까지 계속하는 사람이다. 이것이 내가 200만 원 들여 얻은 깨달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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