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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드 Oct 24. 2021

힙합과 워라밸

팔로알토와 아마존 CEO 제프 베조스의 평행이론


 나는 행복한 직장인이다. 워라밸을 지키며 살고 있다. 사기업에 다니고 있지만 야근과 거리가 멀다. 기껏해야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야근할 뿐이다. 야근하지 않는 날은 퇴근 후에 하고 싶은 것들을 한다. 글쓰기, 운동, 악기 등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고 먹고 싶은 것을 먹는다. 이게 행운이라는 것을 스스로 잘 안다. 워라밸은 이 시대 직장인의 행복을 판단하는 척도 중 하나가 분명하다.


 행복의 척도에 내 기분을 들이대 본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행복하지 않다. 저녁이 있는 복에 겨운 삶을 살면서도 허구한 날 불행하다고 노래를 부르고 있다. 동료들은 나를 보고 배부른 소리 말라며 눈살을 찌푸린다. 행복은 회사 밖에서 찾는 것이라고 꼭 덧붙인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가슴으로는 이해가 안 된다는 말을 이때 몸소 체험한다. 나는 몇 년째 이 말에 타협이 안 된다.


 하루를 시간으로 쪼개면 더 분명해진다. 잠자는 7시간을 제외하면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은 최소 8시간이다. 이는 하루의 절반 이상이다. 이런 회사에서 행복하지 않다면 나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게 1년, 2년, 10년이 흘렀다. 그동안 쌓인 시간이 너무 아까울 뿐이다. 앞으로도 직장 생활을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그 시간은 더더욱 크게 느껴진다. 인생 전체로 보면 얼마나 많은 시간일까.


 모두가 워라밸을 외치고 있는 시대에 나는 워라밸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 이야기에 귀를 더 기울이게 된다. 그 유명한 아마존 CEO 제프 베조스가 바로 그 사람이다. 그에게 워라밸은 기계적 중립 같은 개념이다. 일과 삶의 수평을 맞추기 위해서는 반드시 한쪽을 깎아내리는 작업이 필요한 것이다. 그에게는 그것이 더 인위적이고 부자연스러워 보였나 보다. 대신 '워크 라이프 하모니’, 즉 일과 인생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말했다. 일리 있었다.


찬찬히 생각해보니 더 고질적인 문제가 있었다. 나는 워라밸이라는 단어를 시간의 구분으로만 받아들이고 있었다. 일과 삶에 시간만 기계적으로 고르게 할당된다고 행복한 것은 아니었다. 에너지와 열정도 조화롭게 스며들어야 했다. 그 기준을 따르면 나는 워크에 쏟을 에너지를 깎아내 라이프를 살찌우고 있었다. 회사에 몰입하지 못하고 열정을 쏟지 못했다. 그리고 쏟지 못해 넘치게 남은 그것들을 라이프에 몰빵한 것이 진짜 문제였다. 제프 베조스가 말하는 조화의 의미가 좀 더 절실해졌다.


 내가 퇴근 후 쏟는 '자기 계발'이라는 이름의 활동들은 업무과 거의 관련이 없다. 운동, 글쓰기, 드럼, 랩, 아이패드 드로잉.... 어느 것도 HR과 거리가 멀다. 내 업무와 관련이 없는 자기 계발 활동들이 내 어떤 능력을 계발시켜줄 수 있을까 생각하니 답이 나오지 않았다. 즐겨하는 대부분의 활동이 주는 행복이 공허하게 느껴졌다. 워라밸을 맞춘다고 하면서 워크와 라이프를 점점 분리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힙합에서 래퍼들은 직업인 힙합을 라이프와 분리하지 않는다. 그들은 힙합이 삶의 방식이다. 래퍼 팔로알토는 늘 음악을 듣고, 생각하고, 작업하고, 클럽에 음악을 틀러 간다고 했다. 그의 삶이 곧 음악과 힙합이다. 자신의 삶을 가사로 만들고 직접 뱉는다. 서울에 사는 그는 '서울'에 대한 노래를 6곡이나 냈다. 서울, 서울 로맨스, 서울의 밤, 서울의 밤 파트2.. 그가 서울에서 살기 때문에 나올 수 있었던 노래들이다. 그는 ‘good times’라는 노래에서 '돈 땜에 안 불러 거짓 사랑 노래'라는 가사를 썼다. 사랑을 하지 않으면 사랑 노래를 내지 않는다. 그는 겪지 않은 일을 음악으로 만들지 않는다.


 힙합을 하는 사람들은 옷 입는 것도 힙합이다. 복장만 봐도 힙합을 하거나 좋아한다는 것을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다. 인사말도, 대화중 추임새도, 액세서리에서도 힙합은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힙합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은 온몸으로 삶이 힙합이라고 말하고 있다. 본인이 래퍼의 삶을 싫어하면서도 그 삶을 유지하는 래퍼는 내가 아는 한에서 없다. 래퍼들은 직업 만족도가 높다. 워크와 라이프가 조화된 삶을 그들은 살고 있다.


 하루의 절반 이상을 보내는 워크는 나와 분리할 수 없다. 그것 또한 내 라이프 스타일, 삶의 방식이다. 현재는 일을 싫어하지만 속마음은 일을 강제로 해야 하는 것으로 치부하거나 하기 싫다고 배척하고 싶지 않다. 일과 삶은 조화를 이뤄야 행복하는 것을 인정한다. 물론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돼서 고통을 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었다. 그래도 싫어하는 일이 싫어진 것보다 좋아하는 일이 잠시 싫어진 쪽이 더 낫지 않을까. 자연스럽게 일과 삶이 조화를 이루었으면 한다.


 제프 베조스는 "가정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행복한 에너지가 충만한 상태로 출근할 수 있다. 그리고 직장에서 즐겁게 일한 뒤엔 역시 건강한 에너지를 가지고 집에 돌아갈 수 있다."라고 말했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워크에서 받은 즐거움이다. 지금은 괴롭지만 회사가 조금이라도 힙합을 닮아간다면 나는 워크가 즐거워질 것 같다. 퇴근길은 라이프를 즐길 에너지로 가득했으면 좋겠다. 지금의 회사는 힙합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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