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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드 Oct 19. 2019

백팩 천사


 출근 길 2호선은 지옥철이다. 특히 출근 시간 9시가 가까운 시간은 더 그렇다. 옆 사람이 어제 먹은 고기 냄새는 1차 테러다. 반대쪽 옆 사람의 카톡 메시지는 2차 테러다. 남친에게 보내는 애교 철철 메시지까지 보이는 거리감이다. 이런 상황에서 백팩족을 만나 짓눌리기라도 하면 백팩을 벗겨 던져 버리고 싶다. 그 마음을 가라 앉혀 준 것은 한 백팩족의 표정이었다. 그는 앞사람에게 불쾌감을 줄까 안절부절 못하면서 어깨를 반으로 접고 있었다. 접힌 어깨를 두드리며 문제는 앞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의 진심어린 표정과 어깨 앞에서 말을 삼켰다.


 한 사람의 진심은 확실히 힘이 셌다. 문득문득 그 표정이 생각났다. 그동안 백팩에 가려 보지 못했던 얼굴이어서 더 그랬나 보다. 그 표정은 배려심 많은 천사와 비슷했다. 그동안 백팩밖에 보지 못했다는 사실이 미안해졌다. 백팩을 메는 순간 착한 사람이 개념 없는 사람으로 돌변할 리는 없다. 그정도 다중인격은 너무 소름 돋는다. 그렇게 믿는게 상식일 테다. 그렇다면 내 순간의 짜증이 다른 것들을 찬찬히 볼 시야를 좁혔을 뿐이다. 항상 사람이 아니라 백팩이 먼저였다.


 백팩에 가려 놓친 것이 무엇이었을까. 지하철은 항상 붐비나? 사실 내가 좀 더 여유롭게 나왔으면 될 일이다. 20분만 빨리 나와도 사람이 없다. 백팩 안전거리를 충분히 확보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내가 굳이 서울이란 도시에 기를 쓰고 직장을 옮기지 않았어도 될 일이다. 사실 첫 직장은 용인이었다. 회사 근처에 번화가는 커녕 큰 건물도 없었다. 영 회사 다니는 느낌이 나지 않았다. 분당선의 끝과 끝을 '내일로' 여행 하는 기분이었다. 지하철을 타기 싫어 지하철 5대를 보낸 적도 있었다. 이른 출퇴근 시간 덕에 백팩에 치이는 일도 없었다. 단지 재미없고 불편한 용인이 미웠을 뿐이다.


 그렇다면 용인이 싫어서 서울로 회사를 옮긴 내 탓으로만 돌리기엔 억울하다. 애초에 서울에 모든 인프라를 밀집시켜 서울 공화국을 만든 사회의 잘못이기도 하니까. 서울에서 나고 자랐지만 부산에 취직할 수밖에 없었던 한 후배는 항상 부산 탈출을 꿈꾼다. 부산이 대한민국 제 2의 도시라지만 서울에 비할 수는 없다고 했다. 그는 한국은 서울과 나머지로 나뉜다는 명언을 남겼다. 백팩으로 놓쳤던 빈틈의 조각들이 하나의 그림으로 맞춰지는 순간들이었다.


 퇴근 때까지 생각나는 백팩족 덕에 네이버에 '백팩족'을 쳐봤다. 백팩족은 백팩충이 되어 가루가 되게 욕을 먹고 있었다. 백팩 에티켓이라며 백팩을 앞으로 메거나 바닥에 두라는 말도 있었다. 백팩에 짓눌렸던 순간의 불쾌한 감정과 아픔이 고스란히 표출된 탓일테다. 아침에 본 백팩족의 얼굴을 떠올린다. 천사같은 그는 백팩 날개를 달고 있다. 개인의 선택과 사회의 잘못을 애먼 백팩충에게 뒤집어 씌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곰곰 생각한다. 그 너머로 많은 OO충들이 스치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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