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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품위있는 그녀 Jul 29. 2024

빙수를 좋아하는 여자

손녀에게 빙수를 먹이기 위해 팥을 끓였던 나의 할머니

빙수가 좋다.

팥빙수 과일빙수 견과류 빙수 눈꽃빙수 등

심지어 망고를 좋아하지도 않는데, 망고가 올라간 망고빙수는 좋다.

겨울에도 가끔 빙수를 사 먹고

여름에는 1주일에 1번은 맛있는 곳을 찾아다니며 빙수투어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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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빙수를 좋아했다.

집 근처 제과점에서 파는 후르츠캔과 과일이 올라간 2천 원짜리 빙수를 천 원씩 친구와 모아 사 먹곤 했다.

하루 용돈 천 원을 빙수에 올인하는 나를 못마땅하게 여긴 짠순이 엄마는

내가 초등학생 2학년이었던 어느 여름날 시장에서 판다모양을 한 빙수기를 하나 사서 들고 왔다.

그리고 다른 한 손에는 빙수 재료인 젤리와 냉동떡 통조림팥이 검정 비닐봉지에 담겨있었다.

그때부터 나의 1일 1 빙수는 시작되었다.

빙수기에 맞는 얼음통에 물을 채워 냉동실에 빼곡히 쌓아 놓고, 학교에 다녀오면 혼자 빙수를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

친구와 둘이 먹을 때는 항상 아쉬웠는데, 국그릇에 내가 원하는 재료를 손으로 한 움큼씩 넣어 연유를 듬뿍 뿌린 셀프빙수는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심지어 화려한 토핑 덕분에 배까지 불렀다.

할머니는 내가 빙수 위에 올릴만한 과일을 시장에서 사 와 먹기 좋게 잘라서 반찬통에 담아두었다.

복숭아, 수박, 자두 등 과일을 올려 먹으면 과일에 따라 매번 새로운 맛이 났다.

조금 아쉬웠던 건 엄마가 처음 빙수기와 같이 사온 떡과 통조림팥이 바닥을 보이자

할머니는 팥을 사 와 직접 단팥을 만들었고, 냉동떡대신 인절미를 잘게 썰어 반찬통에 담아두었다.

할머니의 수제팥과 인절미가 들어간 빙수는 제과점에서 파는 그 맛이 나지 않았다.

나는 통조림팥이었으면 사 먹는 맛이 날텐데... 하며 먹을 때마다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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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빙수사랑은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되었다.

한겨울에도 토스트를 주는 캔모아에 친구들과 과일이 올라간 눈꽃빙수를 먹었고

만원이 넘는 카페베네 빙수를 계절 가리지 않고 사 먹었다.

빙수에 대한 사랑은 임신과 동시에 더 커졌다.

맵고 짠 음식을 먹은 후엔 항상 달달한 빙수가 당겼다.

매일 저녁 남편과 함께 집 앞 카페와 빵집을 투어 하며 빙수를 포장해 왔다.

그러고도 모자라 나 역시 빙수기와 재료를 사서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

내 식성을 닮아서인지 우리 집 8살 사랑둥이도 빙수를 좋아한다.

팥이 듬뿍 올라간 빙수도 잘 먹는 걸 보면 어쩜 이리 나를 닮았을까 하는 생각에 신기할 때도 있다.

요즘 빙수를 매일 먹고 싶은 아들은 빙수재료를 사 집에서 만들어 먹게 해 달라고 성화다.

임신 때 사놓은 빙수기도 주방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어떻게 보면 1주일에 한 번씩 사 먹을 봐엔 만들어 먹는 게 더 돈을 아끼는 거란 생각이 들지만, 이를 위해 들어가는 내 노동과 시간을 고려해 보면 집에서 만들어 먹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

주기적으로 과일과 재료를 구비해 놓아야 한다. 얼음 얼리는걸 신경써야 하고, 먹은 후엔 설거지를 해야 한다.

돈을 아끼려다 스트레스를 자진해서 얻는 셈이 될 것 같아 시작하기에 망설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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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면 어릴 때 외할머니는 어쩜 그렇게 부지런하게 움직였는지 모르겠다.

시장에서 팥을 사 와 꼬박 하루를 불리고 설탕을 넣어 2-3시간을 푹 삶아내 충분히 식혀 그릇에 담는다.

떡이 떨어지면 떡집에서 인절미를 사 와 가위로 잘라 준비해 놓고

과일은 계절마다 떨어지지 않게 사서 깨끗이 씻어 작은 채반에 담아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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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살림이라는 걸 해보니 할머니의 이런 것들이 티는 안 나는데 수고스러운 일이었다는 걸 실감한다.

또 그것들이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된다.

생각해 보니 이런 것들이 나를 향한 할머니의 사랑이었던 것 같다.

할머니와 그 시절을 가끔 이야기하다 보면

할머니는 "돈이 없어 먹고살기 힘들어서 그랬다. 이 지지배야" 라며 할머니 특유의 욕을 넣어 답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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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빙수로 유명한 집에 갔더니

빙수 위에 직접 만든 단팥을 올려주었다.

어릴 땐 수제 단팥이 마음에 들지 않아 투덜거렸는데, 커서 보니 손이 많이 가는 이런 게 정말 귀한 거였다는 걸 실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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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80이 넘은 할머니는 화장실에 가기 어려울 정도로 거동이 불편하다.

할머니가 만든 귀한 음식을

먹고 싶어도 먹을 수가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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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항상 지나고 나서야 소중함을 깨닫는 걸까?

더 늦기 전에 할머니에게 다녀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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