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녀에게 빙수를 먹이기 위해 팥을 끓였던 나의 할머니
팥빙수 과일빙수 견과류 빙수 눈꽃빙수 등
심지어 망고를 좋아하지도 않는데, 망고가 올라간 망고빙수는 좋다.
겨울에도 가끔 빙수를 사 먹고
여름에는 1주일에 1번은 맛있는 곳을 찾아다니며 빙수투어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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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빙수를 좋아했다.
집 근처 제과점에서 파는 후르츠캔과 과일이 올라간 2천 원짜리 빙수를 천 원씩 친구와 모아 사 먹곤 했다.
하루 용돈 천 원을 빙수에 올인하는 나를 못마땅하게 여긴 짠순이 엄마는
내가 초등학생 2학년이었던 어느 여름날 시장에서 판다모양을 한 빙수기를 하나 사서 들고 왔다.
그리고 다른 한 손에는 빙수 재료인 젤리와 냉동떡 통조림팥이 검정 비닐봉지에 담겨있었다.
그때부터 나의 1일 1 빙수는 시작되었다.
빙수기에 맞는 얼음통에 물을 채워 냉동실에 빼곡히 쌓아 놓고, 학교에 다녀오면 혼자 빙수를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
친구와 둘이 먹을 때는 항상 아쉬웠는데, 국그릇에 내가 원하는 재료를 손으로 한 움큼씩 넣어 연유를 듬뿍 뿌린 셀프빙수는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심지어 화려한 토핑 덕분에 배까지 불렀다.
할머니는 내가 빙수 위에 올릴만한 과일을 시장에서 사 와 먹기 좋게 잘라서 반찬통에 담아두었다.
복숭아, 수박, 자두 등 과일을 올려 먹으면 과일에 따라 매번 새로운 맛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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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빙수사랑은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되었다.
한겨울에도 토스트를 주는 캔모아에 친구들과 과일이 올라간 눈꽃빙수를 먹었고
만원이 넘는 카페베네 빙수를 계절 가리지 않고 사 먹었다.
빙수에 대한 사랑은 임신과 동시에 더 커졌다.
맵고 짠 음식을 먹은 후엔 항상 달달한 빙수가 당겼다.
매일 저녁 남편과 함께 집 앞 카페와 빵집을 투어 하며 빙수를 포장해 왔다.
그러고도 모자라 나 역시 빙수기와 재료를 사서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
내 식성을 닮아서인지 우리 집 8살 사랑둥이도 빙수를 좋아한다.
팥이 듬뿍 올라간 빙수도 잘 먹는 걸 보면 어쩜 이리 나를 닮았을까 하는 생각에 신기할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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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서 팥을 사 와 꼬박 하루를 불리고 설탕을 넣어 2-3시간을 푹 삶아내 충분히 식혀 그릇에 담는다.
떡이 떨어지면 떡집에서 인절미를 사 와 가위로 잘라 준비해 놓고
과일은 계절마다 떨어지지 않게 사서 깨끗이 씻어 작은 채반에 담아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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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살림이라는 걸 해보니 할머니의 이런 것들이 티는 안 나는데 수고스러운 일이었다는 걸 실감한다.
할머니와 그 시절을 가끔 이야기하다 보면
할머니는 "돈이 없어 먹고살기 힘들어서 그랬다. 이 지지배야" 라며 할머니 특유의 욕을 넣어 답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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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빙수로 유명한 집에 갔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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