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이웃일 줄 알았던 노부부의 이사
회사 통근을 위해 분당으로 독립하기 전까지 내가 평생을 살아온 집이 있는, 요즘은 미아 258 번지라는 이름으로 부동산 투자자들에게 핫해졌다는 동네. 부동산 블로거, 유튜버들이 임장을 그렇게들 온다는 우리 동네에 오랜만에 다녀왔다. 아침에 일어나 동생과 뒷산을 산책했다. 오패산이라는 나즈막한 산인데 유치원 때부터 엄마 손 잡고 다닌 산이다. 언제 와도 정말 관리가 잘 되어 있는 걸 보니 강북구청 녹지과의 수고가 느껴진다. 오랜 시간 동안 구석 구석 공들여 닦아 사람들이 걷기 좋은 산책길이 마련되어 있고, 크기와 종류가 다양한 나무와 식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 여기서 낮잠도 잤고, 책도 읽고, 김밥도 까먹고, 배드민턴도 치고, 언젠가 울어도 본 것 같다.
아랫집 노부부가 곧 이사를 가신다고 했다. 두 분은 신혼부부였던 우리 부모님이 갓난 아기인 나를 데리고 이사올 때부터 그 집에 사셨다. 그래서 이제는 80 언저리의 연배시지만 할아버지 할머니 보다는 아저씨 아줌마라고 부르는게 익숙한.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사춘기를 보내고 어른이 되는 모습까지 다 보신 분들이다. 나도 두 분의 자식과 손자들이 가끔 놀러오는 모습, 아드님이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신 것, 노견이었던 하얀 말티즈 뭉치가 무지개다리를 건너고 몇 년 후 새 식구인 요크셔테리어 샤샤가 들어온 것까지 다 알고 있다.
재개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나오면서 동네 집값이 많이 올랐다. 젊은 주민들은 존버와 대출의 힘으로 아파트 입성을 꿈꾸지만 고령의 어르신만 사시는 집이라면 10년 걸린다는 재개발보다는 당장 생활비의 보탬이 될 수 있도록 집을 처분하고 좀더 낮은 가격의 집으로 이사가는 선택을 한다. 재개발은 결국 살림이 빠듯한 원주민을 쫓아내고 몇 억씩 총알을 장전한 투자자들을 들인다. 그나저나 당장 다다음주에 이사 가신다고 하는데, 늘상 화초를 가꾸시던 마당에 안 보이시길래 못 뵙고 가나 했더니 분당 집에 가는 길에 우연히 두 분을 만났다. 일요일 점심 때 즈음이었니 아마도 성당 다녀오시는 길일 것이다. 두 분은 아드님을 여의신 이후로 성당에 열심히 다니시는 듯 하다.
길에서 만난 우리 자매를 반가워 하시며 이사 간다는 말 너희 부모님에게 들었느냐고, 아쉽다고 하셨다. 나도 웃으며 '집들이 선물 해야 겠는데요' 했더니 아주머니가 '나는 너희들 와서 얼굴 보여준게 선물이야.' 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셔서 동생과 둘 다 조금 울컥했다. 멀리 가는 건 아니니까 오며가며 보자고 하시며 헤어졌다. 그렇지만 이 날이 두 분과의 마지막 만남일지도 모른다. 언제까지나 이웃 어르신일 것 같았던, 아무 조건 없이 우리를 예뻐해주신 모습으로 오래 남을 것 같다.
앞으로 재개발은 이 동네를 얼마나 바꾸어 놓을까. 우리 가족 중 누군가가 그 아파트에 살지 않더라도 그 아파트가 오패산을 가리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어쩔 수 없이 변화하고 사라지는 것이 있지만 꼭 남아야 할 것들이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