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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돌아온 캥거루는 자기만의 방이 필요했다

by 비잉벨

친구들은 신혼집을 마련하는 35살에 나는 부모님 집 근처 5평짜리 작업실을 얻었다.


나는 돌캥(돌아온 캥거루)이다. 회사 통근이 힘들어 29살에 독립했다가 5년만에 다시 부모님 댁으로 쭈뼛대며 들어와 생활하고 있다. 5년 전 독립 할 당시에는 대기업 직장인이었기 떄문에 마음에 드는 투룸 계약금을 당일 송금할 여유도, 월세 보증금을 대출받을 신용도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없다. 왜 없냐고? 그렇게 됐다. 번아웃으로 퇴사 후 3년 째 N잡으로 자아성찰 및 진로 탐색 중이었기 때문이다. 안정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3년간 해 오다가 정신을 차리니 통장이 너무도 가벼웠다. 함께 살던 친동생은 전셋집을 얻어 나가고 나는 다시 내가 가장 오래 살아온 그 집으로 향했다.



내게 기억이 존재하는 이래로 평생을 살아온 집인데도, 들어갈 결정을 하고 나니 마음이 콱 막히고 불편감이 올라왔다. 집은 5년 전과는 달랐다. 일단 서울 외곽 오래된 주택가의 노후주택이라 집이 낡는 상태가 초고속이었다. 비가 오면 벽지가 울고, 주방은 늘 습했다. 무엇보다 돌봄이 필요한 존재가 셋으로 늘어 있었다. 건강을 잃어가는 부모님과 사회성 박살난 진도믹스 강아지 하나. 이제 오롯이 내 책임이구나 싶었다. 누가 책임지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부담감과 압박감이 느껴지는 증상은 K-장녀 고유의 지병일 것이다. 주거비용에 대한 경제적인 부담은 줄어들었지만 심리적인 부담은 몇 배로 늘었다. 큰일이었다.



독립할 때 내 로망은 벙커침대를 놓는 것이었다. 고양이의 캣 타워처럼, 계단을 올라가 조금 높은데서 잠드는 기분이 그렇게 좋았다. 그렇지만 이 벙커침대를 고대로 들고 이 집에 돌아올 줄은 몰랐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독립해서 쓰던 방보다 부모님 집에서 내가 쓸 방이 아주 조금 크다는 것이었다. 침대를 놓고도 옆에서 요가를 할 수 있을 테니 다행이었다. 그렇지만 책상을 놓을 공간은 절대로 안 나왔다. 이전에 살던 집에서는 방에서 자고, 거실에 책상을 놓아 일을 했다. 그러나 부모님 집의 거실은 TV와 식탁의 공간이었다. 집에 돌아가게 되면 내 일상을 꾸릴 물리적 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지금이다. 작업실을 구해야만 한다.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친구들이 찾아오기 좋도록, 되도록 역세권이면 좋을까? 잘 모르겠다. 보증금 500만원, 월세 40만원 이하로 알아보기로 했다. 네이버 부동산을 두 달간 뒤졌다.


마음에 드는 매물이 있다. 집에서 도보 12분 거리, 오며가며 본 적 있는 꽃집이 있던 상가주택이었다. 마음에 들었던 꽃집 자리는 아니었고 그 뒤편 반지하였다. 지층인데 채광이 들어 보여서 일단 보러나 가야지 싶었다. 근처 이웃인 대학동기 지연에게 혹시 같이 가주지 않겠냐고 부탁했다. 지연은 흔쾌히 부동산을 같이 보러 가 주었다. 들어가는 순간 마음에 들었다. 흠 잡을 데가 없었다. 위치며, 채광이며, 가격까지. 나 여기 해야겠다. 그런데 그 때 지연이 말했다. "너 이거 하면, 나 10만원 보태고 쉐어해도 돼?" 뭐지. 순간 천사인 줄 알았다. 그렇게 일사천리로 부동산 계약을 했다.



이사 준비 등으로 돈이 묶여있어 통장에 사용할 수 있는 현금은 50만원 뿐이었다. 그러니까 이 글은 50만원밖에 없었던 35살 무직자(물론 프리랜서가 완곡한 표현이지만)가 작업실을 구해 대안적인 독립을 이루어낸 이야기다.



작업실 이삿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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