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를 인정하는 마음
"작업실 오픈했다며? 멋있다! 나도 놀러갈래!"
'오픈'이라는 말이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작업실을 갖게 되었다. 인스타그램에 작업실 소식을 올리기 시작하자 겸연쩍게도 멋있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멋있다'라...어쩌면 친구들에게 멋있다는 말을 듣기 위해 나는 이 고생을 하는 걸까? 2022년 카카오를 퇴사하고 나서 프리랜서를 시작했을 때 주변에선 내가 부럽고 멋있다고 했다. 당황스러웠다. 나는 그대로인데 정확히 나의 무엇이 좋아 보인다는 걸까? 나의 용기가? 도전정신이? 무모함이? 추진력이? 잘 모르겠지만 우선은 9 to 6 근무를 하지 않으면서 어떻게든 생활비를 벌어 먹고 살아간다는 점을 가장 부러워하는 듯 했다. 그러나 내가 결국 퇴사 3년 후 돌아온 캥거루가 된 여정, 그러니까 경제적 안정을 서서히 상실해 간 과정은 아래와 같다.
처음 계획은 한 달에서 3개월 정도만 쉬고 이직을 준비할 작정이었다. 그런데 사이드 프로젝트로 시작한 '멘탈스타일리스트'가 생각보다 너무 재미있었다. 전전 직장의 디자인 팀장 미자님을 꼬셔서 미술치료 그림일기장을 함께 제작했다. 연재하던 뉴스레터로 출간 계약도 했다. 예술치료를 본격적으로 배우고 싶어 사이버대 예술치료학과에 편입을 했다. 10일간 묵언하는 명상 센터에도 다녀왔다.
첫 책 출간을 기다리며 슬슬 이직할 준비를 하려고 했는데 출간이 몇 달 밀렸다. 그래서 단기로 프리랜서 마케터 일을 구했다. 마침 스타트업 인사팀에 있는 친구가 '주니어 계약직이 필요한데 잘 안구해진다'고 하기에, 내가 그 일 받으면 안되겠냐고 물어 일을 땄다. 놀고 있는 사정을 아는 지인의 부탁으로 준비된 강의안을 달달 외워 강사 알바를 30시간 정도 뛰었는데, 생각보다 적성에 잘 맞았다. 그래서 책이 나오고 나서는 책과 그림일기장을 들고 다니며 기업과 도서관에서 강사로 일했다. 성북문화재단에서 지원사업을 따서 한 달 동안 팝업 전시도 운영해보고, 모 에디터님께 제안받아 근사한 매거진 팝업 스토어에 내 콘텐츠를 넣는 기회도 생겼다. 그렇게 어떻게 신기하게도 먹고 살았는데, 퇴사 후 2년이 지나니 위기감이 들었다. 수입이 너무 들쭉날쭉했다. 사실 나에게는 수익화 전략이라는 게 없었다. 시간당 페이로 치면 멘탈스타일리스트가 훨씬 높음에도 불구하고, 멘탈스타일리스트보다 마케터로 버는 돈이 더 많다는 것이 문제였다. 과감하게 마케터 일을 확 줄이고, 멘탈스타일리스트를 사업화 해 보고자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지원하는 창업교육과정 '아트비즈니스챌린지'에 들어갔다. 2달간 매일 울면서 교육을 받았고, <성인을 위한 아트 테라피 스튜디오> 아이템으로 우수팀에 뽑혀 경진대회 PT까지 했지만 입상은 하지 못했다. 허무했다. 경진대회가 끝날 때쯤 1유로프로젝트라는 사업에 지원했다. 성수동 인근 낡은 건물을 매입해 알찬 스몰브랜드들을 입점시켜 상권을 살리는 건축 프로젝트였다. 창업 교육에서 개발한 아트 테라피 스튜디오 아이템을 꼭 한번 해 보고 싶었다. 서류와 면접을 거쳐 최종 합격했지만, 결론적으로는 생각보다 부담해야하는 비용이 너무 컸다. 결국 입점 포기 메일을 보내고 펑펑 울었다. 특히 경진대회와 지원서를 같이 준비한 친구 해주님에게 미안해서 자괴감이 더 컸다. 그 즈음 결심했다.
이건 아니야. 실패를 인정하자.
지금 가야 할 곳은 회사다.
재취업을 하자.
아트테라피를, 예술치료를 평생 더 오래 하고 싶으니 지금 필요한건 경제적 안정이었다. 그 무렵 같이 살던 친동생은 이직도 2번이나 하고 관련 공부도 꾸준히 해 오면서 경제적 안정을 잘 다져가는 듯 했고, 함께 사는 월셋집 계약이 끝나면 혼자 독립하고 싶다는 뜻을 여러 번 피력했다. 애써 회피하고 있었지만 그 때가 오고야 말았다. 나는 결국 돌아오는 봄에는 미아동 부모님댁으로 돌아가서 재취준생이 되어야 하는구나.
창업 교육을 받는다고, 예술치료 공부를 한다고 마케팅 외주를 적게 받아서 남은 기간 월세 낼 돈도 부족했다. 동생이 몇 번 도와주기도 했지만 더 이상 손을 벌릴 순 없었다. 결국 12년 전 대학생 때 해 본 파리바게뜨 알바를 시작했다. 7시에 출근해 13시에 퇴근했다. 6시간 서 있으면 다리가 퉁퉁 부어 집에 걸어오는 10분이 1시간처럼 느껴졌다. 다행힌 것은 같이 일하는 20대 알바 선배들이 일을 야무지게 잘했고 나에게도 친절히 대해주었다. 알바생, 구직자, 프리랜서 마케터, 대표님, 강사님, 작가님... 하루에도 수없이 다른 이름으로 살았다. 무엇으로도 나를 규정할 수 없는 시간이었다. 그냥 나는 이런 상태의 나임을 받아들이는데는 시간이 조금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