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상 여행에서 일본 사람들과 대면하고 보니 외국인인 제가 일본어로 그들과 대화하는 데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내향적 성격도 한 몫했겠지만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더군요. 그분들의 이야기는 못 알아듣겠는데 제가 외운 단순한 일본어 문장을 소리 내어 이야기한들 제대로 된 소통이 될 리 없어 보였습니다.
창피당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일어, 영어, 한국어를 뒤죽박죽 섞어서 이상한 의사소통을 몇 번 하다가 결국은 모두 내려놓고 영어와 파파고를 열심히 활용하고 있던 차였습니다.
딸아이가 검색하여 찾은 회전초밥집에 저녁식사시간에 도착하여 번호표를 뽑고 대기하려고 앉았습니다. 그런데 입장안내방송부터 자리배정 등등 모든 과정을 무인으로 돌리고 있었습니다.
입장가능한 번호를 일본어로만 알려주고 있었습니다. 번호가 숫자로 표시되는 전광판에도 지금 순서가 돌아온 번호를 따로 표시해주지 않고, 호출해도 입장을 하지 않은 경우만 번호를 남겨서 볼 수 있게 해 주고 있었습니다.
백단위의 일본어 숫자를 알아들어야만 저희의 순서를 놓치지 않고 입장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안내해 주는 사람이 전혀 없다 보니 문의할 곳도 없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가방에서 볼펜을 꺼내어 번호표 종이에 방송에서 호출되는 숫자를 메모하기 시작했습니다.
큐햐쿠 큐쥬로쿠.
딸아이와 남편에게도 우리 순서의 번호표를 읽는 법을 한글로 써서 보여주고 기억하게 했습니다.
그렇게 거의 한 시간가량을 일본어 세 자리 숫자를 듣고 쓰는 받아쓰기 훈련을 하고 난 뒤 드디어 저희 가족은 배정된 좌석에 앉아서 편안하게 회전초밥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 일 이후로 제 일본어 배우기 취미를 살짝 무시하던 가족들의 태도가 바뀌었습니다. 특히 딸아이는 여행 중 궁금한 일본어 글자나 발음을 제게 물어보기도 하면서 관심을 가지더군요.
무용하다고 치부하던 취미생활이 예기치 못하던 상황에 생존의 도구가 되는 경험을 했습니다. 밥을 먹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집중해서 숫자를 듣고 쓰고를 반복하다 보니 어렵기만 하던 일본어 숫자 듣기가 조금은 수월해진 것 같습니다.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봅니다. 인간이 계획하고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이 어디까지일까요.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기준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에 대한 집착이 어쩌면 가까이에 다가온 행운이나 기회를 알아보지 못하게 눈을 가리는 것은 아닐까요.
직관과 직감을 활용하여 보이지 않는 것에 다가가려는 시도를 해보는 것의 가치를 우리는 너무 폄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점과 점 사이를 잊는 연결고리를 찾게 되는 순간 무용하다고 생각되던 많은 각각의 점들이 하나의 의미 있는 선이 될 수 있다고 한 스티브 잡스의 연설이 떠오릅니다.
제 딸을 비롯해서 한창 성장해 나가는 시기에 있는 사람들, 혹은 저나 남편같이 인생의 전반부를 마무리하고 후반부를 준비해 나가는 사람들이 마음 가는 대로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도전해 보는 것에 너무 인색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저 또한 아직까지 제 인생의 스토리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60대가 인생 최고의 전성기라는 인터넷 운세의 점괘를 마음속에 간직한 채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