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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민재 Apr 02. 2024

○○○가 될 미래의 나에게

지속가능한 취미를 찾는 중입니다 - 수필 쓰기 3

출처 - 나무위키 헤르만 헤세


어쩌면 그냥 스쳐 지나갔을지도 몰라. 도서관의 수필 쓰기 강좌에서 인물에 대한 글쓰기 숙제가 떨어지지 않았다면 말이야.



넌 소설을 쓰고 싶어 했어. 그 마음을 알아차린 건 마흔 살이 넘어서였지만 말이야. 처음엔 모른척 했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거든. 아무런 주제도, 소재도 가진 게 없다고 생각했어. 거기에 진지하고 고지식한 성격. 공학을 전공했고 실용적이고 효율적인 것에 대한 집착으로 소설 같은 걸 읽는데 시간을 쓰는 건 마음이 편치 않았어. 헛웃음이 날 만큼 황당하다고 생각했지.



그러다가 불쑥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소설 쓰기 수업도 들었어. 단편소설도 써봤지. 다른 수강생들의 소설과 화려한 이력을 스스로의 것과 비교하면서 넌 조용히 마음을 접었어. 일기장을 훔쳐본 것 같다는 피드백에 얼굴이 화끈거리기도 했지. 무엇보다 상상력이 부족한 너와 소설은 맞지 않는 옷이라고 생각했어.



코로나와 암투병으로 힘든 고비를 지나오고 나서 넌 깨달았어. 인생은 한 번뿐이고 생은 유한하다는 걸. 망설이고 고민하기보다는 일단 뛰어들어 해 보고 아님 말아도 괜찮다는 걸. 내 인생의 주인은 나이고 내가 나서지 않으면 아무도 내 자신에게로 나아가는 길을 만들어주지 않는다는 걸.



그래도 소설은 너무 먼 얘기 같아 망설이던 차에 인물에 대한 글쓰기 숙제가 나온 거야. 그때 넌 생각했지. 스스로에게 한발 앞으로 나갈 기회를 억지로라도 만들어보자고 말이야.



헤르만 헤세 같은 사람이 쓴 소설도 있다는 사실이 갑자기 희망으로 다가오던 참이었거든. 진지하고 예민하고 서정적이며 정신세계에 관심이 많고 스스로의 내면탐색을 즐기던 사람. 그런 사람이 쓴 소설이 인기를 얻고 시대를 초월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있다니. 하늘에서 내게 보내준 지푸라기 같다고나 할까.



헤세에 대해 이런저런 정보를 수집하고 소설들을 사고 빌리고. 일주일 안에 많은 걸 해내고 싶었지만 마음만큼 몸이 따라주질 못했어. 이상하게 더 미루게 되고. 결국 일요일 밤이 되어서야 글쓰기를 시작했어.



헤세는 정원 가꾸기, 독서와 산책, 여행,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대. 나랑 취향이 참 비슷한 사람이더라고. 그의 소설들이 융의 분석심리학에 기반하였다니 놀라웠어. 소설에 그 모든 것을 녹여낼 수 있다는 점이 신기하고 어떻게 쓰여있는지 직접 다시 읽어보면서 확인해보고 싶어 졌지. 두려움 때문인지 게으름 때문인지 소설 읽기가 생각만큼 잘 되진 않고 있지만 말이야.



삶의 근원적 질문에 대한 답으로 자기를 녹여 소설을 쓴 사람. 그걸 통해 누군가의 성장을 도울 수 있다면 하루하루가 충만할 것 같아. 헤세가 자신의 소설을 보고 독자들이 보낸 이메일에 일일이 답장을 보낸 심정을 알 것 같다면 거짓말일까. 무리 짓기를 거부한 그에게 적합한 소통의 방식 같았어.



결국 너는 너의 본질과 닮은 사람들을 롤모델로 삼아서 네 인생을 그려보게 될 거야. 헤르만 헤세처럼.



이전에는 너와 너무 결이 다른 사람들을 분간하지 못하고 비슷해지려고 애쓰느라 고생을 많이 했지. 이젠 그러지 않아도 돼. 네게 맞고 편한 옷을 입고 신나게 너만의 춤을 추길 바래.



예상치 못한 난관들이 많겠지만 또 예상치 못한 방법들로 마침내 너 자신에게로 가는 길을 찾게 되겠지.



너 자신을 믿고 용기 내어 지혜롭게 그 과정을 겪어나가길 바란다. 시간이 필요할 거야. 조급해하지 마. 언제나 곁에서 응원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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