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시작부터 예측불허

빈손으로 시작한 내향적 3인 가족의 열흘간 파리자유여행기

by 전민재


베르사유 궁전 산책로

여행은 시작부터 뭔가 불길했다. 파리행 12시 30분 비행기를 타려면 3시간 전까지는 인천공항에 도착해야 되는데 내가 사는 지역에서 인천공항까지는 공항버스로 1시간 30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우리 집에서 공항버스를 탈 수 있는 역까지 가려면 30분 정도는 여유 있게 잡아놔야 했다.



결국 출발 전날 우리가 내린 결론은 12시 30분의 5시간 전인 7시 30분, 거기에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1시간 정도는 더 일찍 출발하기로 했다. 우리는 자고 있는 아이를 깨워 6시 30분에 집을 나섰다. 전날까지 주섬주섬 챙긴 캐리어 2개를 끌고.



전날에 공항버스 타는 방법에 대해서 벌였던 살벌한 토론 끝에 나온 결론대로 실행했다. 집 근처 전철역까지 남편이 나와 아이를 태워다 주고 남편은 다시 돌아가 차를 아파트 주차장에 세워놓고 왔다. 교통비를 아끼려는 남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은 벌어졌다.



남편과 만나 함께 지하철을 타려고 승강장에서 기다리고 있던 찰나, 갑자기 남편이 외마디 소리를 쳤다.


“가방! 노트북 넣은 가방을 차에 두고 왔어!”


그 가방에 넣어두었던 것들이 꼭 필요한지에 대해서 검토할 겨를도 없이 남편은 용수철처럼 튀어나가 버렸다. 그때가 7시가 조금 넘은 시각. 나와 아이는 다시 자리에 앉아서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노트북가방에는 노트북과 자질구레한 몇 가지 들이 있어있을 뿐 여행에 꼭 필요한 것들이 들어있진 않았다. 무엇보다 8시에 예매해 둔 공항버스를 놓치게 되면 그다음엔 어떻게 해야 되는지에 대한 대안을 알지 못했기에 인터넷을 뒤지고 공항버스 예매사이트에 들어가서 취소나 연기와 관련된 사항을 확인하고 있었다.



7시 30분. 예상보다 빠르게 남편이 가방을 들고 돌아왔다. 얘기를 들어보니 급한 마음에 나가자마자 택시를 타고 가서 가방을 꺼내고 또 택시를 타고 지하철역까지 돌아왔단다. 전날 전철비가 아깝다며 캐리어를 끌고 오래 걷고 야외에서 오래 기다려야 되더라도 공항버스정류장에 직접 가야 한다고 주장하던 남편이었기에, 그 아끼려던 돈을 고스란히 택시비로 쓰게 되었구나 싶었지만 예민한 상황에 입 밖으로 꺼내어 말하진 않았다.

어제의 첨예한 갈등상황을 다시 재연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그게 아니라도 지금 당장 8시 공항버스를 타려면 서둘러서 지하철을 타고 공항버스환승정류장이 있는 역으로 이동해야 했다. 부랴부랴 전철을 타고 도착해 보니 이른 시간이었지만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이미 버스를 타려고 줄을 서 있었다. 그 와중에 장이 예민한 편인 아이는 1시간 30분의 버스탑승 시간 전에 화장실을 다녀오고 싶어 했다. 고민하다가 남편과 아이는 급하게 화장실을 찾아서 역사를 돌아다녀야 했다. 다행히도 버스가 들어오고 아이와 남편도 돌아왔다. 캐리어를 짐칸에 싣고 버스에 타고나니 그제야 조금 안심이 되었다. 공항버스 리무진의 쾌적하고 넓은 자리도 안도감에 한몫했다.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버스는 1시간 10분 정도 만에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유럽에서 사용할 수 있는 유심과 뮤지엄 패스를 각각 지정된 교환처에 가서 교환하고 탑승수속, 출국 수속 등을 마쳤다. 마지막으로 인터넷 면세점으로 주문한 물품을 찾아야 했는데 거기서 또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하고 말았다.



우리가 가져온 캐리어 2개는 짐이 꽉 차있었고, 여행지에서 늘어날 짐과 인터넷면세점에서 구입한 신발 등을 보관하기 위해서 면세점에서 26인치짜리 캐리어를 주문한 터였다. 캐리어를 받으면 거기에 면세점 구입품을 넣고 기내에 반입하여 파리에 가지고 갔다가 파리에서 산 물품이 있으면 거기에 담아서 돌아올 예정이었다. 그런데 캐리어를 꺼내어온 면세점직원의 표정이 좀 난처해졌다.


“올해부터 규정이 바뀌어서요. 국내 항공사의 경우 기내에 26인치 캐리어는 반입이 안 되는 걸로 알고 있어요. 그 부분이 괜찮으신지 먼저 확인하려고요.”


몇 년 전에 똑같은 26인치 캐리어를 그런 방식으로 기내반입하여 가지고 갔다가 들어온 경험이 있었기에 별다른 확인 없이 주문을 했던 게 문제였다. 따지고 보면 면세점에서 기내반입이 안 되는 물품을 판다는 것 자체도 문제인 것 같았다. 최소한 알려는 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주문할 때까지는 아무런 조치가 없이 물품을 인도장까지 보낸 후에(자기들도 에너지 낭비일 텐데) 마지막에 통보를 해주니 난감하기도 하고 당장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었다. 몇 년 만의 출국이라 화장품과 운동화 등을 산 것이 부피가 꽤 됐다. 결국 우리는 면세점에서 준 투명 가방을 들고 바리바리 들고 다니다가 탑승을 했고 프랑스 공항에 도착해서는 그때 가서 캐리어에 어떻게든 욱여넣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필요하면 파리 여행 중에 캐리어는 하나 더 사기로 하고 말이다.



모든 절차가 마무리되고 나자 슬슬 배가 고파왔다. 알뜰한 남편은 통신사 제공 무료라운지에서, 나와 아이는 공항 내 식당에서 아침을 각자 해결했다. 왠지 파리에 가면 한동안은 그리울 것 같아 나는 배가 많이 고프지 않았음에도 굳이 한식당에서 육개장을 주문했다. 그런데 냄새부터 너무 기름져서 먹으면서 후회가 되었다. 그냥 간단한 스낵류를 먹을 걸 그랬나? 그렇게 각자 식사 후 샤를 드골 공항 행 비행기를 탑승하기 위해 우리는 지정된 게이트에서 만났다. 대부분 개인적인 일정으로 가는지 단체여행객은 없어 보였다.



드디어 탑승.

21살 때 이후로는 처음, 40대 중반에 11시간 50분이라는 긴 시간의 비행을 하게 되다니. 새벽부터 좌충우돌하다 보니 여행의 기쁨도 잠시 내 체력에 대한 자신감이 급격히 저하되었다. 이날의 돌발적인 상황은 여행 중에 일어날 일들의 예고편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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