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으면 발걸음마다 새로운 세상.
저는 평범한 회사원입니다.
최근 더워지는 날에 몸은 자연히 바깥의 따가운 햇빛과 조금만 걸어도 푹푹 옷이 젖어 땀냄새가 배이는 불상사를 피하기 위해 햇빛을 막아주는 차가운 대리석, 에어컨 밑 공간으로 대피하는 건 어쩌면 본능과도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어릴 때가 생각나네요.
아주 푹푹 찌는 한 여름 더위에도 제 살갗이 타는지도 모르고 그을려가는 피부를 땡볕에 방치한 채 뛰놀고 걷던 제 모습이요. 그때는 피부가 타든 땀냄새가 나든 개의치 않았던 자유로움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자외선에 노출되면 피부가 상하고 기미가 생긴단 이유로 계절을 피해 다닙니다. 여름만큼 더워졌지만 실내에서 있느라 여름이 다가오는지도 어떤 때는 잊습니다. 그럴 때면 어릴 적 까무잡잡하더라도 해맑은 제 모습이 그립습니다.
저만 해도 종일 사무실에 앉아 있으라 해도 앉아 있을 수 있겠다 싶습니다. 퇴근 후에는 바로 내 침대 위에서 유튜브를 보죠.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은 후 저는 걸어보기로 합니다. 걷기 시작하자 몸이 깨이는 느낌입니다. 이미 오전도 일을 하였지만 앉아서 하는 일은 몸은 몽롱한 채 정신만 겨우 깨어 일하는 것과 같습니다. 몸을 움직이니 지나가는 풍경 사이 떠드는 소리, 바람의 냄새, 몸을 스치는 바람의 촉각, 냄새 모든 감각이 깨어납니다. 도보를 디딘 발바닥에서 걷는 걸음에서 지금 내 몸이 살아있음이 느껴집니다.
회사 근처 주변에 위치한 길을 따라 걷습니다. 담장에 탐스런 장미가 피어있습니다. 꽃집에서도 곧잘 생화를 사곤 했지만 야생에서 보는 장미는 조금 어색합니다. 이 장미의 머리가 얼마나 큰 지 꼭 길 가다 아는
얼굴 만난 듯 바라보게 됩니다.
큰 얼굴에는 어떤 향기가 날까?
궁금해집니다. 누군가에게 이상하게 보이긴 싫어 주위를 슥슥 둘러보고 장미의 얼굴에 코를 파묻습니다.
뭐랄까요?
고혹적인 향이 묵직하게 코로 들어옵니다.
꽃집의 장미에선 맡아보지 못한 살아있는 꽃의 향기는 생각보다 와일드하고 묵직함이 있습니다. 사람과 동물 등 살아있는 생물에게 고유의 냄새가 있잖아요? 냄새라 표현했지만 그 대상의 아이덴티티를 나타내는 향이 이 장미에게도 느껴집니다.
‘나야. 내 향기는 이래’라고 알려줍니다.
장미향을 맡은 뒤 회사로 돌아가는 길에 소소하지만 달라진 내 모습을 발견합니다. 길가에 나무들도 전과 달리 보입니다. 고유의 색감, 색의 선명도가 더 높아져 보입니다. 이게 행복이구나 하고 다시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걸읍시다. 걸으면 다시 이전의 지루하고 생기없는 세상으로 돌아갈 수 없어요. 새로운 세상으로 또박또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