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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월상담소 양희조 Oct 19. 2021

종결 회기. 상담에서의 이별 다루기

(멜로가체질) 상담을 마무리하고 긴 여행을 떠나는 은정


(가상상담)

멜로가 체질의 은정의 방문

 '사별 애도상담'으로 다루기, 종결 회기



 우리의 상담이 처음 시작되었을 때, 은정 씨는 몇 회기 정도 상담을 받으면 좋을지 질문하셨지요. 대체로 내담자와 상담자 두 사람이 상담에서 어떤 지도를 그릴지에 따라 회기의 수가 달라지기 때문에 회기 수는 두 사람의 합의에 따라 결정해요. 상담 과정은 그 기간에 따라 단기 상담, 혹은 장기 상담으로 구분할 수 있어요. 보통 내담자 분의 상황과 상담에서 다루고자 하는 주제, 회복되어가는 속도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하여 결정하지요. 대개 내담자 분께서 상담에서 다루고자 하는 주제가 명확하고 그 주제로부터 회복되고자 하는 동기가 선명한 경우, 그리고 그 주제가 생기기 전에는 일상생활에서 큰 어려움 없이 유지해오신 기간이 충분히 길고 주변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회적 자원이 충분하시다고 판단될 때에는 단기 상담을 진행하기도 해요. 상담자에 따라 단기 상담을 5회 미만으로 보시는 분도 계시고, 10~15회기 사이, 혹은 30~40회기 사이로 보시는 분도 계시지요. 보통 상담을 처음 시작하실 때에는 10회기 전후로 시작해서 추후 연장할지의 여부를 결정하기도 해요. 


  첫 회기 당시 은정 씨는 약 10회기 정도를 먼저 받아보고 싶다고 하셨지요. 상담 중반에는 은정 씨가 그간 기부해온 해외의 재단에 방문하기로 한 일정이 확정되어 우리의 종결 일정도 그에 맞춰 명확해지기도 하였고요. 그래서 그동안 우리의 상담에서는 은정 씨의 애도 작업과 일상생활로의 회복이라는 목표를 구체화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변화를 위해 필요한 작업들을 진행해왔어요. 중간중간 몇 회기가 남았고 그에 대한 느낌이 어떠신지 여쭤보는 시간을 가지며 은정 씨가 오늘 저와의 종결을 예상하고 준비할 수 있도록 함께 계획을 세워왔는데요. 오늘은 우리의 상담을 마무리하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할게요. 



 상담에서의 작별을 기회로 활용하기 


  오늘은 은정 씨의 마지막 상담이네요. 오늘 오시면서는 어떤 마음이 느껴지셨을까요? 

 마지막 상담이라는 생각으로 집에서 방문을 열고 나오는데, 상담받기 전 날 방에서 고민하던 모습이 떠오르셨군요. '내가 상담이 필요한 게 맞나', '그냥 혼자서 잘 정리하면 되는데 유난 떠는 거 아닌가' 고민하던 때가 있었는데 말이에요. 그때를 생각해보니, 짧은 시간 동안 마음의 풍경이 많이 변화한 것 같군요. 그 마음의 풍경은 어떻게 변했나요? 예전에는 기분이 없는 기분이었는데, 하루의 일과 속에서 여러 색깔의 기분을 느끼기도 하고요. 힘든 생각들과 감정들이 느껴질 때에는 혼자서 꾹 삼키곤 했는데, 이제는 효봉 씨와 진주 씨에게 찾아가 토로하거나 때로는 안기기도 하네요. 좀 나아졌다는 기분이 드는군요. 



  좋아요. 은정 씨가 좀 나아졌다는 기분을 느끼도록 도움이 되었던 것들은 무엇이었나요?

 처음 홍대 씨를 떠나보내고 나서는 일상에서 따뜻함, 포근함, 안락함을 느끼는 것 자체가 불편했었다는 걸 알아차리게 되었네요. 왠지 나한테 그런 것들을 선물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은정 씨를 지배했었군요. 일상에서 나를 기분 좋게 만들었던 것들을 잠시 잃어버린 기분이었겠어요. 상담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고 난 후에는 한동안 자기 자신을 잘 돌보기 어려운 마음이 들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군요.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에 안도감을 느끼면서 다른 선택들을 할 수 있다는 마음이 조금씩 생겼고요. 

 홍대 씨를 잃고 나서 원하는 나의 미래를 영영 잃어버렸다는 무망감에 마음을 닫았던 시간도 있었네요. 그러던 와중에 놓치고 있던 것들이 무엇인지를 상담에서 새롭게 살펴보는 시간이 도움이 되었나 봐요. 늘 그 자리에 은정 씨를 위해 존재해온 효봉 씨와 진주 씨, 한주 씨가 있다는 사실을 돌아볼 수 있었고요. 그들이 나에게 어떤 눈빛으로 어떤 마음을 쓰고 있는지가 새롭게 보이는 시간들이 있었네요. 은정 씨에게 중요한 다큐의 다음 주제를 고민하면서 소중한 사람들과 소소한 일상을 공유하는, 은정 씨의 풍경을 되찾게 된 게 많은 도움이 되었군요. 



출처: JTBC, 멜로가 체질



  그렇다면 홍대 씨를 떠올리면 어떤가요? 

 은정 씨 표정을 보니 조금은 어려운 질문으로 느껴지나 봐요. 여전히 그립고 괴롭기도 하고요. 심장이 저릿하다는 고통이 신체적으로도 찾아오기도 하네요. 그런 감정과 감각들은 주로 언제 찾아오나요? 최근에는 여행을 가기 위해 홍대 씨의 물건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많이 느꼈군요. 그간은 홍대 씨의 부재를 외면하면서 그런 감정과 감각들을 회피해왔기 때문에 지금 느껴지는 것들이 더 힘들게 느껴질 수 있어요. 때로는 상담을 받아서 나 더 나빠지는 거 아닌가, 느껴질 만큼 날 것의 감정들이 소용돌이 칠 수 있지요. 우리가 상담에서 주요하게 작업했던 과업 중 하나로는, 애도 과정에서 느껴야 할 감정들을 제 때 느낄 수 있도록 통로를 뚫어주는 것이 진행되었어요. 그래서 지금 힘들 수 있어요. 하지만 지나가야 할 물결들이 다 지나가고 나면 조금씩 고요해지는 감각들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홍대 씨의 생일과 함께 챙기는 기념일 등이 가까워지면 비슷한 감각들이 찾아올 수 있어요. 그럴 때 은정 씨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요? 

 지난 상담에서 은정 씨는 홍대 씨와의 대화를 통해 깨달은 게 있다고 하시네요. 홍대 씨가 비록 은정 씨 눈앞에 없고 은정 씨와 같은 세상을 살고 있지는 않지더라도, 그가 은정 씨에게 남겨 준 가장 중요한 것이 내 안에 남아있다고 말이에요. 은정 씨가 어떤 공간에 있든, 무엇을 하고 있든, 홍대 씨라는 사람이 은정 씨를 바라본 눈빛과 은정 씨에게 쓴 마음은 영영 잃어버릴 수 있는 게 아니고, 자기 안에 단단한 것으로 남아있다는 걸 믿게 되었다고 말씀하시네요. 잠시 마음의 눈을 감고 은정 씨 안에 단단하게 남은 그것들을 느껴볼까요? 어떤 감각들이 느껴지나요? 배꼽과 가슴 사이의 어딘가가 뭉근하게 풀어지면서 굉장한 포근함이 느껴지네요. 좋아요, 그 감각을 좀 더 느껴볼게요. 그리고는 어떤 감정이 느껴지나요? 보호받고 있다는 평안함이 느껴지고, 그리고 누군가가 은정 씨를 응원하고 믿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 힘이 생기네요. 애도의 과정은 때로는 평생이 걸린다고 하기도 하지요. 언제든 마음이 힘든 순간이 찾아올 수 있지만, 오늘 말씀 주신 이 단단함을 은정 씨가 잊지 않고 기억한다면 좋겠어요. 은정 씨가 홍대 씨에 대한 기억을 품은 상태로 지금 이 자리에서 평안하게 말씀하시는 모습이 참 반갑네요. 


출처: JTBC, 멜로가 체질



  그렇다면 오늘이 마지막 상담이라는 건 어떻게 느껴지실까요?

 한 편으로는 이제 끝났다는 안도감과 함께, 아직 상담이 더 필요할지도 모르는데 지금 그만두는 건 아닐까 불안하기도 하네요. 조금 더 이야기해주시겠어요?

 은정 씨의 두 부모님이 해외에서 살기로 결심하셨을 때, 실은 은정 씨는 부모님과 떨어질 준비가 되지 않았었군요. 그럼에도 부모님이 그런 선택을 하셨던 것에는 다 이유가 있겠지, 싶어 조금 더 부모님에게 의지하고 싶고 부모님과 떨어지게 되어 불안한 은정 씨의 맘을 충분히 다룰 기회가 없었겠어요. 이는 홍대 씨와의 헤어지는 과정에서 유사하게 느껴졌을 것 같네요. 그간 혼자서 처리하는 게 익숙했던 은정 씨가 홍대 씨에게 많은 부분을 의지하게 되었지만, 홍대 씨와의 이별은 갑작스러워 의지할 곳을 잃었다는 상실감을 알아차리기도 어려웠군요. 홍대 씨가 몸이 아파 약해지는 걸 보면서 차마 홍대 씨를 잃을까 두렵고 불안한 은정 씨의 마음을 충분히 돌볼 기회도 없었겠어요. 그러다 보니 상담에서 자기 마음을 누군가에게 얘기하고 상담사에게 의지하는 것 같은 마음이 불편하게 느껴졌겠어요. 그런 의미에서 종결은 나 스스로 해낼 수 있는 힘을 되찾은 것 같고 앞으로는 내가 알아서 하면 되겠다는 마음에 안도감이 느껴졌군요. 


  혹시 그렇다면 우리의 종결이 이전의 부모님과 홍대 씨와 헤어지는 과정과 다른 점이 있을까요?

 은정 씨와 제가 여러 차례 종결의 시기를 논의하고 종결에 대한 은정 씨의 준비도를 함께 살피는 과정이 새롭게 느껴지셨군요. '내가 이 관계에서 어느 만큼 나를 드러내는 게 안전한가?', '내가 이 관계로부터 떠날 준비가 되었나?'를 살피면서 이 관계를 마무리하는 주체는 바로 은정 씨 자신임을 느끼셨군요. 그간은 나 자신이 아직 영글지도 않았는데 뭔가에 떠밀려 관계로부터 독립해야 하기도 했고, 아직 마음의 준비가 충분히 되지 못했음에도 갑작스러운 이별에 뭔가를 빼앗겨버린 느낌이 들기도 했는데 말이에요. 상담에서의 이별은 나 자신이 이 관계로부터 충분히 필요한 것들을 다 채웠는가를 살펴보면서 그 기간을 내가 조절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간의 과정과 달리 은정 씨가 이별에서의 통제감을 느끼신 것 같아요. 통제감을 가진 채 마주하는 이별은, 은정 씨에게 어떻게 느껴지실까요? 




  마지막 질문이에요. 나중에 시간을 가지고 우리의 상담을 떠올려 봤을 때, 은정 씨는 어떤 점을 기억하고 싶으세요? 











 누군가가 회복되는 과정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다는 건, 언제나 제게도 큰 울림이 되는 경험이에요. 그 경험을 은정 씨와 함께 할 수 있어서 무척이나 기뻤어요. 용기가 많이 필요했을 텐데 내면의 깊은 이야기들을 제게 나눠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상담에서는 우리 삶에서 가장 고통스럽고 돌아보기 싫은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곤 하지요. 아주 모순되게도, 상담이 종결될 때에는 그 쳐다보기도 싫은 고통스러웠던 경험은 내가 아주 강한 힘을 지니고 있음을 증명하는 자료가 되곤 해요.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 가장 취약해진 순간에도 내가 내 삶에서 지켜가고자 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걸 보호하기 위해 얼마나 강한 에너지를 지니고 있는지가 드러나기 때문이지요. 상담이 끝난 후 오랜 시간이 흘러 우리가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수 있어요. 다만, 은정 씨가 발견한 은정 씨의 힘이 굉장히 강하고 컸다는 사실만 기억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 그동안 정말 고생 많았어요. 



♣ 상담 신청 https://linktr.ee/counsel.ju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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