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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irut Mar 12. 2019

오만과 편견

에스프레소 – 10,000원


“형, 이 메뉴판 잘못 쓴 것 같은데요” 오픈을 축하하기 위해 찾아간 카페를 둘러보던 중이었다. 뒤늦게 메뉴판에 쓰여 있는 에스프레소 가격을 보고 놀라 물었다. “어, 그거 맞아.” 바리스타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새로 카페를 열면 소문을 듣고 몰려와 에스프레소를 시켜놓고 맛이 이러쿵, 추출이 저러쿵 하며 딴죽을 거는 이들 때문이란다. 심지어는 비싼 돈 들여 어렵게 모셔놓은 에스프레소 머신을 보면서 “이 머신은 이래서 안 좋고, 그러니까 다른 걸로 바꿔야 하는데…”라며 참견을 한다고 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좁은 지식으로 경험이 녹아든 바리스타의 판단을 무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커피 좀 마셔봤다’며 이 카페, 저 카페를 휘젓고 다니며 삐딱한 얘기를 흘리고 다니는 이른바 ‘커쟁이’에게 일침을 놓고자 1만 원에 에스프레소를 팔기로 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카페에서 제일 가격이 싼 메뉴가 에스프레소이지만, 커피를 하는 사람들에게 에스프레소는 가장 공을 들이는 메뉴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에스프레소를 존중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고 한다. 


에스프레소는 가격이 제일 싼 메뉴지만,
바리스타가 가장 공을 들이는 메뉴이기도 하다


그 말에 공감하여 웃는 한편으로는 뜨끔하기도 했다. 나 또한 커피깨나 마셨다고 으스대며 도장 깨기 하듯 카페들을 돌아다녔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커피를 사랑하면서도 커피 하는 사람들에 대한 존중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오만이었다. 주문한 카푸치노를 받으면 바리스타 대회 심사위원이라도 된 양 거품부터 까보니, 정성스럽게 커피를 내준 바리스타는 기분이 나빴을 것이다. 후루릅후루릅 공기 반 커피 반 입에 머금고 향미를 평가한 적도 있었고,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느낀 커피의 맛을 뽐내기도 했다. 오렌지의 산미가 어쩌고저쩌고 떠들던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부끄럽다. 



하지만 오만을 덜어냈다고 하여 마음이 편한 것은 아니다. 

커피 덕후들은 해묵은 편견―결국 자업자득이지만―과 싸워야만 한다. 가령 ‘너는 고급 입맛이니, 이런 건 안 먹지?’라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 그때마다 고급 입맛이 아니라, 커피를 좋아하고 많이 마시다 보니 취향이 분명해진 거라고 해명하곤 한다. 믹스커피를 즐겨 마시지는 않지만, 남녀노소 누구나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 그 커피에 대한 동경은 한 번도 버린 적이 없다. 


커피 선물 또한 마찬가지다. 입맛이 고급일 테니 사향 고향이의 똥에서 채취한 루왁커피 같은 걸 마시냐는 질문을 받은 적도 있었다. 먼 곳을 여행하다 돌아와서는 네가 좋아할 것 같다 사왔다며 다람쥐 똥 커피, 코끼리 똥 커피 등등을 선물한 사람들도 있다. 

바쁜 여정에 내 생각을 해 건넨 선물은 너무나도 감사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라도 동물을 학대하여 만든 커피를 좋게 마실 수는 없다. 많이 마셔본 건 아니지만, 확실하게 동물의 배설물로 만든 커피는 내 취향이 아니기도 했다. 


나의 취향은 사람과 커피 어느 사이에 있다


사람들은 묻는다. 그렇다면 너의 취향은 무엇이냐고. 그럴 때마다 나는 답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마시는 커피가 가장 맛있다고. 또 무엇이 맛있냐고 묻는다면, 지역색이 듬뿍 묻어나는 커피라고 말한다. 카페는 결국 사람들과 함께해야 하므로, 그 카페가 있는 동네 사람들의 입맛을 이해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오랫동안 사람들의 취향을 살피며 만들어낸 커피는 다른 곳에서는 마실 수 없는 귀한 커피가 되고,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커피가 되기도 한다. 그러니 나의 취향은 사람과 커피 어느 사이에 있다고 보면 되겠다. 

한때는 오만했으며 또 매일같이 편견과 싸우고 있지만, 커피 한 잔 같이 마실 사람이 늘어난다면 무엇이든 괜찮은 사람이다. 믹스커피도, 에스프레소도, 달달한 캐러멜 마키아토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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