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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irut Mar 05. 2019

커피를 위해 견뎌야 하는 것들



무언가를 취미로 가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가령 영화를 두 번 보는 일을 떠올려본다. 물론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마주친 지난 영화를 다시 보는 것과는 다른 일이라고 생각하자. 영화관에 두 번 가거나 혹은 내가 처음 봤던 장면과 다른 요소들을 찾으며 영화를 보는 일은 미약하나마 인내심을 필요로 한다. 한 편의 교향곡을 집중해서 듣는 일이 그렇고, 취기에 넘어가지 않고 와인을 맛보는 일이 또 그렇다. 

계절에 따라 옷을 갈아입는 일처럼 취미 또한 한 철 유행이라 생각하여 잠깐 쓰고 버릴 일이 아니라면, 모든 취미는 꾸준한 관찰과 노력과 인내를 필요로 한다.     


취미 또한 한 철 유행이라 생각하여
잠깐 쓰고 버릴 일이 아니라면,
모든 취미는 꾸준한 관찰과 노력과 인내를 필요로 한다     

진정한 커피 덕후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 아침잠이 없어야 한다. 

매일 아침, 하루를 시작하는 커피를 직접 내려서 마셔야 하기 때문이다. 또 빈속에 커피를 마셔서는 안 되니, 모닝커피를 즐기기 위해서는 적어도 남들보다 30분은 일찍 일어나 밥을 먹어야 한다. 하지만 나는 일찍 일어나는 새는 아니었기에 대학 시절에는 커피를 내리다가 지각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군대에서 단체 숙소를 쓸 때도 그라인더를 가져다가 원두를 갈아 커피를 마시곤 했는데, 굳이 그 새벽에 소음을 내야 하냐고 동기들에게 욕을 먹었다. 그 이후엔 미안함이 앞서 그라인더를 들고 화장실로 가곤 했다. 외로이 변기에 앉아 원두를 갈고 있으면 내가 이러려고 커피를 좋아하게 되었나 하는 자괴감도 들었다. 

직장에 다니면서는 아예 오피스 카페를 차렸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가 너무나도 힘들어서, 필요한 장비들을 하나둘씩 사무실에 가져다놓고 시시때때로 커피를 내려 마시고 있다.  



다음으로 어려운 일은 커피를 여러 잔 마시는 것이다.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커피리브레의 대표인 서필훈 바리스타가 안암동 고려대 후문에 있는 카페 보헤미안에서 커피를 내리고 있었을 때였다. 호기심 가득 찬 눈으로 바라보는 내 모습이 나쁘지 않아 보였는지, 그는 커피를 내리는 족족 나에게 건네주었다. 

나는 그 마음이 너무나 감사해 다섯 잔을 연거푸 들이켰는데, 커피를 그렇게 많이 마신 일은 처음이라 집에 가는 내내 동공이 확장되고 손이 떨리며 식은땀이 났다. 그 이후에는 지난날의 과오를 범하지 않기 위해 하루에 두 잔 이하로 마시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좋은 커피를 만나면 금세 마음이 설레 여러 잔의 커피를 들이켜는 어리석은 짓을 하곤 한다. 벌렁이는 가슴을 부여잡고 집으로 향하는 길이면 커피를 좋아하는 것은 꽤 힘든 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취미생활을 영위하는 일은
인내심을 필요로 하며 
고통을 감내할 수 있는 용기 또한 필요하다


취미가 깊어질수록 지갑은 가벼워진다. 커피도 예외는 아니다. 

호기롭게 사놓고 어머니에게 혼날까 봐 마음 졸였던 드립주전자 가격은 15만 원이었다.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내 첫 알바 월급이 30만 원이었으니, 재산의 절반을 덜어낸 셈이었다.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이후 구입한 그라인더만 10개 가까이 되고, 새로운 커피 기구가 나오면 닥치는 대로 사들여 주방에 그릇 놓을 곳이 없다며 어머니께 등짝을 맞았던 적도 있다. 

프라이팬으로 시작한 로스팅이 결국 작은 수동 로스터를 구입하는 것으로 이어졌고, 을지로를 돌아다니며 사 모은 부품으로 수제 쿨러(로스팅한 커피를 식히는 기구)를 만들기도 했다. 직장에 다니면서는 커피를 위해 여행을 떠났는데, 미국과 일본, 이탈리아를 다니며 커피에 쏟아 부은 돈이 어림잡아 자동차 한 대 가격이다. 그리하여 나는 나이 서른에 쓰린 속과 텅 빈 통장만 갖게 되었다.     


좀처럼 영리하지 못한 나의 취미생활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보다 영리하고 민첩한 사람이라면 나보다 덜 고생하고 덜 아플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취미든, 취미생활을 영위하는 일은 인내심을 필요로 하며 고통을 감내할 수 있는 용기 또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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