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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irut May 07. 2019

아메리카노가 궁금해 미국에 갔어

1860년대, 이탈리아를 찾은 미국인들은 주정강화 와인의 일종인 베르무트에 탄산수를 섞어 마시는 칵테일을 찾곤 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보통의 술보다 훨씬 약하고 달콤한 이 음료에 ‘아메리카노’ 또는 ‘아메리’라는 이름을 붙였다.


아메리카노가 커피를 가리키는 단어가 된 것은 그로부터 조금 시간이 지나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 대륙을 밟은 미군들에 의해서다. 이탈리아의 깊고 진한 에스프레소는 그들 입에 맞지 않았기에 물을 타 마시는 일이 빈번했기 때문이다. 또 전쟁 중, 커피 부족으로 인해 적은 양의 원두로 커피를 내렸던 미국인들의 습관이 정착되어 아메리카노가 퍼지기 시작했다고도 말한다.


아메리카노의 어원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지만, 전쟁의 혼란 속에서 연한 커피를 마셨던 미국인들로 인해 ‘아메리카노’라는 이름이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가장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전장에서 마시던 그 아메리카노가 인스턴트 음료가 되어 커피의 대중화가 일어난 것이 커피시장 제1의 물결이다. 스타벅스를 중심으로, 에스프레소에 기반한 음료들이 유행하기 시작한 것을 제2의 물결이라 한다. 이어 커피산업이 발전하고 자본이 유입되면서 커피 고유의 맛과 향에 집중하는 스페셜티 커피, 이른바 제3의 물결이 탄생했다.      


실은 아메리카노가 궁금했다기보다, 이 모든 흐름을 탄생시킨 미국의 커피시장을 몸소 경험하고 싶었다. 그리하여 커피를 마시기 위해 미국으로 향했다. 하루에 딱 세 군데의 카페만 둘러보자 생각하면서.     


맨해튼의 거리는 항상 분주했다. 낮에도 밤에도 사람들은 깨어 있어야 한다. 분주하게 거리를 걸어 다니는 사람들의 손에는 항상 커피가 들려 있었다. 어떤 카페를 들러도 줄을 서는 일이 빈번했다.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미국에서,
커피는 어떤 형태로도 존재할 수 있었다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그곳에서, 커피는 어떤 형태로도 존재할 수 있었다.


밤새 싸우는 소리가 가득했던 차이나타운의 숙소에서 사람들은 인스턴트커피를 마셨다. 아무리 높이 고개를 들어도 그 끝을 볼 수 없는 건물로 둘러싸인 5번가의 스타벅스는 분주했다. 사람들은 한 손 가득 쇼핑백을 들었고, 한 손에는 싱겁고 쓰기만 한 벤티 사이즈의 아메리카노를 들었다. 어느 부티크 호텔의 로비와 소호거리의 구석자리에는 스페셜티 커피도 있었다.


맨해튼은 싸구려 커피도, 최신 유행의 고급 커피도 공존하는 용광로였다. 그리고 그 커피는 카페인에 취해야 하루를 거뜬히 보낼 수 있는 미국인들을 위로해주었다.     


어떤 커피를 내밀어도 소비할 여력이 충분한 이곳에서 스타벅스가 탄생하고 스페셜티 커피가 태동했던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자본이 최고의 가치인 이곳에서 커피도 하나의 산업으로 크게 성장할 수밖에 없었다.


여행을 다녀오고 몇 년이 지나, 캘리포니아를 기반으로 한 커피기업 피츠커피앤티가 인텔리젠시아와 스텀타운을 인수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두 카페는 카운터컬처와 함께 미국의 스페셜티 커피를 대표하는 빅3로 뽑힐 정도로 유명한 곳이다. 시간이 더 흘러, 스페셜티 커피업계의 ‘애플’로 불리는 블루보틀이 네슬레에 지분을 팔았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자본의 맛이라며
놀려대는 사람도 있지만,
사람들은 대체로
가치가 있는 곳에 돈을 쓴다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적극적인 추진력으로 성장한 카페들의 역사를 지켜보며, 커피의 제3의 물결이 미국에서 일어날 수 있었던 이유에 관해 생각하게 되었다. 미국의 여느 산업이 그러하듯 커피 산업 또한 더 높은 자본 가치를 위해 성장한 것이고, 어떤 커피든 소비할 여력이 있는 다양한 취향은 산업의 발전을 도왔다.  

    

얄밉고 고약하지만, 코카콜라가 그랬고 스타벅스가 그러하듯 미국인들은 세계를 지배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에스프레소에 물을 타 마시는 그들을 조롱하여 아메리카노라 놀려댔지만, 지금은 아메리카노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또 스페셜티 커피 산업을 주도하면서 세계 커피 시장의 흐름을 바꿔놓았으니, 아메리카노로부터 시작한 그들의 역사는 깊고 진한 에스프레소를 내세우는 이탈리아에 견주어도 부끄러울 것이 없는 커피 강국이 되었다.


돌이켜 미국에서 마신 커피들을 생각해본다. 자본의 맛이라며 놀려대는 사람도 있지만, 사람들은 대체로 가치가 있는 곳에 돈을 쓰는 법이다. 그러니 그 자본은 높은 확률로 맛있는 커피를 내줄 수밖에 없다.    




10화 <아메리카노가 궁금해 미국에 갔어>를 마지막으로 위클리 매거진 '커피생활자의 탐구일기' 연재를 종료합니다.


지금까지 매주 연재글을 찾아주시고, 응원과 격려를 보내주신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지난 4월, 《실용 커피 서적 - 커피생활자의 탐구일기》이 출간되었습니다.

브런치를 통해 연재한 글을 포함하여, '커피와 취미생활'을 주제로 다양한 글을 담았습니다.



이제 서른이지만, 반평생 커피를 마셨습니다.

앞으로도 아름다운것과 아름다운것에 대한 글을 쓰는 일로 많은 시간을 보낼것 같습니다.


연재도 끝나고 단행본도 나왔으니 지난 여정을 돌아보고 새출발을 준비해보겠습니다.


그동안 써놓고 공개하지 못한 글도 꽤 있고, 새로이 구상중인 아이템도 있습니다. 잘 정돈하고 다듬어 재미있고 유익한 콘텐츠로 찾아뵙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또 뵙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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