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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irut Apr 30. 2019

서울 커피 덕후의 서울 다방 투어

좀처럼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공간이 있다


안국역 사거리를 지나다니길 10여 년, 궁금해서 참을 수 없는 공간이 있었다. 사거리를 수십 번 지나다니면서도 좀처럼 그곳의 문을 열기 망설여졌다. 무엇을 하는 곳인지도 도통 모르겠어서, 또 괜히 잘못 들어갔다가 돈만 쓰고 나올 것 같아서였다. 궁금증만큼이나 두려움이 컸기에 무작정 들어갈 수 없었다.


그렇게 망설이던 어느 날, 큰 결심을 하고 그곳의 문을 두드렸다. 우물쭈물하다가는 이 낡은 곳이 문을 닫을지도 모른다는 걱정도 앞섰다. 하얀색 간판에 명조체로 ‘브람스’라고 쓰여 있는 이 공간은, 알고 보니 1985년에 문을 열어 서른 살을 훌쩍 넘긴 음악 다방이었다.


삐걱삐걱 소리를 내는 나무계단을 따라 조심스럽게 2층에 오를 때는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스윽, 문을 여니 주인장은 손님이 왔다는 기척을 느껴 듣던 라디오를 끄고 브람스의 음악을 틀었다. 그리고 스을쩍, 내 얼굴을 보고는 젊은이가 왔다며 다시 재즈음악으로 바꿔 틀었다. 마침 카페에는 아무도 없어서 안국역 사거리가 내다보이는 창가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메뉴판을 가져다주는 주인장에게 나는 클래식을 좋아하니 다시 브람스를 틀어주었으면 좋겠다고 말을 건넸다. 그리고 메뉴판에 의미심장하게 쓰여 있는 ‘25년 전통의 다방 커피’를 주문했다. 그러자 주인장은 별거 아니라고, 옛날식 다방 커피라고 말한다. 그래도 상관없다고 말하니 바로 커피가 나온다.


“설탕 둘, 프림 둘 넣어서 휘휘 저어 드세요” 주인장은 쿨하게 커피를 내려놓고는 가신다. 그래 봤자 다 똑같은 믹스커피이지 않겠는가마는, 브람스 음악을 들으며 호로록 한 모금 마시니 왠지 25년 전통이 담긴 커피를 마시는 기분이 들었다.


좀처럼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공간들이 있다. 어떤 이유로, 그 공간에 들어서기까지 꽤 큰 결심이 필요할 때도 있다.



브람스보다 더 오래 고민을 하다 들어간 공간은 을지로3가역 지하상가에 있는 시티커피다. 이런 모습으로 어떻게 그 오랜 시간을 버텼을까 싶었지만, 카페는 늘 커피를 마시는 어르신들로 가득 차 있었다. 불쑥 들어선 젊은 청년이 불청객이 되지나 않을까 걱정하면서 가보기를 벼르던 어느 날, 시티커피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

 

사장님은 밝은 미소로 인사를 건네며, 세상에서 가장 공손한 태도로 주문을 받아주셨다. 무엇이 제일 맛있냐는 질문에, 메뉴판 가득한 메뉴 그 어떤 것도 맛없는 게 없다며 너스레를 떠셨다. 30년이나 됐다며, 지방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없다는 자랑도 덧붙였다.


쿠릉쿠릉 쿠르릉, 
오래된 지하상가는 전철이 오갈 때마다 
기묘한 소리를 내며 울어댔다


쿠릉쿠릉 쿠르릉, 오래된 지하상가는 전철이 오갈 때마다 기묘한 소리를 내며 울어댔다. 카페 한켠을 차지한 백발의 어르신들은 심각한 목소리로 국제 정세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데, ‘100분 토론’ 못지않은 뜨거운 열기가 가득한 테이블 위에는 취향 따라 생강차도, 주스도, 커피도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날 때면 얼마 되지 않는 커피 값을 서로 내겠다며 싸우는 그 모습이 마치 이 다방의 오랜 전통이나 되는 것 같기도 했다.


스르르 긴장이 녹아들 때쯤, 주문한 ‘스페샬 커피’가 나왔다. 커피 맛은 걱정할 것이 없었다. 얼마든 넣어도 넘치지 않는 프림과 설탕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격은 고작 2,000원. 그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 한 시간도 넘게 앉아 있었는데, 이 가격에 이렇게 포근할 수 있는 공간이 서울에 또 어디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카페들에서는 도무지 느낄 수 없는 친절함과 정겨움, 따뜻함을 느끼기 위해서 이따금 그 다방들을 다시 찾곤 한다. 반백살 아랫사람은 가뭄에 콩 나듯 찾아오는 공간이라 여전히 부끄럽기도 하고 또 망설여질 때가 있지만, 어딘가 또 멋진 다방이 있겠거니 하며 세월이 담긴 커피를 찾아가려고 한다.






브런치 연재중인 <실용 커피 서적>이 단행본으로으로 출간되었습니다.


한 권이 책이 탄생할 수 있도록 보내주신 많은 관심과 응원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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