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어도 괜찮아

울면 왜 안 되나요

by 푸른언덕

지금도 연말이면 여지없이 흘러나오는 '울면 안 돼, 울면 안 돼. 산타할아버지는 우는 아이에겐 선물을 안주신대'라는 캐럴처럼 우리는 우는 아이는 선물을 못 받는 게 마땅한 착하지 않은 아이라고 교육받고 살았다.


괴로워도 슬퍼고 나는 안 울어, 참고 참고 또 참지 울긴 왜 울어. 어렸을 때부터 자주 들었고 불렀던 만화영화 캔디의 주제가.

우리는 참고 참고 또 참는 게 훌륭하고 씩씩하다고 세뇌받아왔다.


자식도 많았고 먹고살기 바빴던 나의 부모님 세대들은 대체로 아이들의 감정을 받아주지 못했다.

아이가 소리 내서 울거나 칭얼거리면 그 감정을 받아주기보다는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게 억눌렀다.


어렸을 때 자매 간 다툼이 잦았던 이웃 아이들 중 기가 세고 덩치도 큰 동생에게 밀린 언니는 자주 울었다고 한다. 그 자매의 엄마는


“동생이랑 싸우고 뭘 잘했다고 울어”

”이게 울 일이야 창피한 줄도 모르고 “


하며 아이에게 싫은 소리를 했다.


엄마가 무섭고 엄마가 싫어하는 행동을 하지 않으려 억지로 울음을 그치던 아이는 초등학교 고학년이 된 어느 날 울음을 그치라고 다그치는 엄마에게


“난 지금 너무 속상하고 울고 싶어.

"그런데 왜 엄마가 내 마음까지 엄마 마음대로 하려고 해."

"울 일인지 아닌지는 내 마음이 아는 건데”

라며 펑펑 울었다.


아이의 말에 충격을 받은 그 엄마는 아이가 울고 싶을 때는 그냥 울게 내버려 뒀고 편하게 울 수 있게 된 아이는 실컷 운 뒤에 훨씬 편안해졌다고 한다.






어려서 감정표현하는 것을 배우지 못한 엄마는 아이가 울면 어떻게 해 줘야 할지 모른다.


우는 아이는 나쁜 아이, 엄마를 힘들게 하는 아이라는 교육을 받고 자란 나도 엄마 앞에서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고 살았다. 학교에서 속상한 일이 있어도 위로는커녕 오히려 네가 못나서, 네가 잘못해서 라는 비난을 들을까 봐 무서워 꽁꽁 숨기며 살았다.


내가 어렸을 때 속상한 일이 있으면 작은 마당으로 나갔다. 내가 언제 집에 오던, 어떤 표정이든 언제나 꼬리 치며 날 반겨주는 강아지의 등을 쓰다듬고 있으며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졌다. 자기를 쓰다듬고 있는 내게 강아지는 몸을 기댔고 강아지의 온기를 느끼며 내 이야기를 강아지에게 털어놓기도 했다.


우리 멍순이가 내 얘기를 들었는지도 모르고 어떤 위로의 말을 들을 수도 없었지만 내 옆에서 내 얘기를 들으며 자리를 지켜주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었다.



KakaoTalk_20230714_155139127.png


슬픔의 감정에 공감받지 못한 아이는 부모가 되면 무의식에서 부모가 했던 행동을 아이한테 똑같이 대물림을 한다고 한다.

우리 엄마가 했던 것처럼 절대 하지 말아야지 결심했었지만 겉으로 거친 말을 하지 않았을 뿐 나도 모르게 내 엄마를 닮은 점이 있었다.






선이는 학교 들어가지 전 저녁밥을 할 시간이 되면 부엌에 서 있는 엄마 다리를 붙들고 앉아 짜증을 내면서 자주 울었습니다. 밥을 해야 하는데 아이가 발 밑에서 울고 있으니 참 난감하고 힘들었었다.


소아과 의사 선생님께 여쭤보니 아이가 몸이 약한 편이라 피곤해서 그럴 거라고 얘기해 주셨다. 그래도 전 속으로 피곤하면 그냥 이불에 누워 자면 되지. 왜 저렇게 엄마를 피곤하게 하나 하는 생각이 했다.

아이를 혼내거나 윽박지르지는 않았지만 따스한 눈길로 공감해 주지는 못했다. 그냥 꾹 참느라 표정 없는 엄마가 되었갔던 것 같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된 어느 날 선이는 하교하는 차 안에서 갑자기 불안감을 호소하며 울음을 터트렸다.

아침까지 방탄소년단 노래를 들으며 신나게 등교했던 아이가 차에 타자마자 우니 어떻게 달래 줘야 할지 몰라 당황스러웠다.


"다 잘 모르겠어. 공부도 안 되고 뭘 모르고 뭘 아는지도 모르겠어"

울음 섞인 목소리로 쏟아내는 아이의 말들을 들으며

"선이야 괜찮을 거야." 하고 달래주니

"지금 느낌은 괜찮지가 않아" 라며 계속 흐느껴 울었다.


통곡에 가까운 아이의 울음소리로 가득 찬 차를 운전하면서 머릿속이 아득해져 갔다.

학교에 들어간 이후부터일까 다른 사람들 앞에서 우는 법을 몰랐던 나는 우는 십 대 아이를 달래는 법을 몰랐다. 그냥 편하게 울게 해 주면 되었을 것을 나는 당황하는 모습을 들켜 아이를 불편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한참을 울던 딸아이는 집에 도착할 때쯤 되자 조금 진정이 된 것 같았다. 사실 그 차 안에서 우는 딸아이보다 더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던 건 나였다.


불안한 감정을 표현할 줄도 공감해 줄지도 몰랐던 나는 아이가 불안해하니 나까지 불안해지는 것이 두려웠나 보다.







몇 살 때부터인지 아무도 모를 때만 혼자 울었고 밖으로는 감정을 숨겼던 나는 이제는 가까운 사람들에게 내 감정을 얘기하기도 하고 가끔 펑펑 울기도 한다.


조금 더 일찍 잘 우는 법을 알았더라면 사는 게 조금은 덜 힘들게 느껴졌을까?


우는 것을 편하게 느끼게 되면서 속으로만 울던 때 가슴속이 꽉 막히고 목구멍 아래에서 슬픔이랑 눈물이 섞여 넘실거려 익사할 것 같은 느낌이 많이 사라졌다.

.


아이도 어른도

딸도 엄마도

여자도 남자도


다 울어도 괜찮아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