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렁이 속의 디테일
<일생에 한 번은 고수를 만나라>라는 책에서 ‘고수는 디테일하다’라는 부분이 나왔다. 그 부분을 읽을 때에는 ‘나는 좀 더 디테일해질 필요가 있겠구나’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나는 일상적으로는 디테일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혼식도 대충대충, 집안일도 대충대충, 육아도 살짝 대충대충 하는 편이다. 회사일도 엄청나게 디테일하게 집착하기보단, 대충 쳐내고 수정을 받아서 처리하는 스타일이다.
그런데 오늘 아침 옷을 입다가 문득 느꼈다. 카디건의 단추를 하나 푸를지 말지, 카디건을 바지 속에 집어넣을지 뺄지. 빼서는 어떻게 접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1년 동안 재택근무를 하며 거의 운동복 위주로 입고 다녀서 잊고 있었다. 사실 나는 아주 옛날 옛적부터 옷을 입는 것에는 굉장히 사소한 것까지 집착하곤 했다.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똑같은 의미의 문장을 어떤 단어를 먼저 쓸지. 이 문장의 길이는 어떻게 할지 자주 delete를 누르는 편이다. 심지어 손으로 쓰는 나만 보는 일기장에서 조차도 그렇다. 문장을 썼다 지운 흔적이 굉장히 많다.
엇 사실 나는 좀 디테일한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왜 이제까지 내가 덜렁이라고 생각했을까? 나는 집중을 할 수 있는 부분이 굉장히 작은 것뿐이었다. 어떤 일에 디테일하면 다른 모든 일까지 디테일하기는 어렵다. 특히 집안일 같이 일상적인 일들에는 최소한의 깔끔함을 지킬 수 있는 정도로만 살았다.
가끔은 나의 디테일하지 못한 덜렁댐 때문에 자책을 하기도 했었다. 대부분의 경우에 (특히 회사일) 디테일하지 못할 때 실수가 많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특히나 나의 남편은 굉장히 성격 자체가 계획적이고 꼼꼼한 편이다. 내가 물건을 잃어버리거나, 해야 했던 일을 잊어버리거나 할 때 괜한 자책감에 스스로 남편과 비교하곤 했던 것 같다.
“아 나는 왜 또 이렇게 덜렁댈까”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나름대로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아 맞다. 나 mbti ENFP 지.”라는 위로를 하곤 했다.
사실 10년 전엔 ESTJ였으면서.
세상의 많은 위대한 일들은 디테일 속에서 피어난다. 나 스스로가 디테일하지 못하다는 벽 안에 나를 가두었었다. 돌이켜보니 나는 대학교 때 과제를 할 때도 PPT의 자간 하나에 집착하던 사람이었고, 인턴사원 때 동영상 UCC하나 만든다고 밤을 새웠던 사람이다. 내가 디테일할 수 있는 부분에 집중을 잘하는 것이었다!
원래 OOO 한 사람은 없다.
내가 그렇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이다.
실제로 뇌가 그렇다고 한다. 생각을 해서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이 생각을 지배한다고. 어느 연예인이 우울하고 힘든 생각이 날 때마다 거울 앞에서 억지로 웃으면 어느샌가 기분이 좋아져버린다고 한 이야기가 생각난다.
성공한 사람들의 책을 읽어보면 대부분 ”이미 그렇게 된 것처럼 생각하기 “ 가 나온다. 미래에 되고 싶은 직함으로 명함을 만들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나는 100억 부자가 될 것이라고 선언하기도 한다. 그렇게 뇌를 꼬셔서 나를 행동하게 만들고 결국은 목표를 이루게 된다.
나의 한계를 먼저 정해두지 말고, 한계점이라고 생각한 것조차 디테일하게 파헤쳐보자.
나는 디테일하지 못한 성격이야(X)
나는 집안일은 아닌데, 글 쓸 때는 엄청 디테일해(O)
나는 디테일 대단하 사람이다.
이와 중에도 나는 어제 쓴 신용카드를 잃어버렸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