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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리브라운 Apr 13. 2017

'쫌질'은 팀장의 핵심역량이 아니다

팀장의 착각 (4) ...쪼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사진 출처: JTBC 드라마 '송곳']





Question


유통회사에서 팀장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저희 유통점에는 입점업체가 많다 보니 팀장의 주요 업무가 이들 업체를 관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이 좋아서 관리지 주로 하는 일은 회사 지침을 전달하고, 실적 나오도록 쪼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런 일을 잘해야지 '팀장으로서 능력 있다'라고 평가받습니다.


그런데 입점업체 잘 쪼는 게 정말 팀장의 핵심역량 맞나요? 업체 쪼는 일 잘하면 업계에서 실력 인정받나요? 저는 별로 배우는 것도 없고 자기 발전도 없는 것 같은데요.

 




Answer


입점업체를 타이트하게 관리하는 게 중요한 업무인 건 맞습니다. 입점업체를 얼마나 '많이' 그리고 '잘' 쪼냐에 따라 실적이 왔다갔다 하는 건 맞으니까요. 결국 '잘 쪼는 게 중요하다'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부정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실제로 유통회사에서는 거래업체를 잘 쪼는 팀장이 좋은 실적을 내서 빨리 승진하는 경우가 많죠.


하지만 '잘 쪼는 것을 팀장의 핵심역량 중 하나로 인정해줘야 될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쫌질'(쪼는 행위)은 팀장의 핵심역량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를 설명드리기 위해서 먼저 핵심역량의 정의부터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핵심역량'이라는 용어는 C.K. 프라할라드 교수와 게리 하멜 교수가 1990년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HBR)에 발표한 리포트에서 처음 정의했습니다. 그들은 핵심역량은 '기업의 여러 가지 경영자원 중 경쟁기업에 비하여 경쟁우위를 가져다주는 기업의 역량'이라고 정의했는데 이를 쉽게 풀어쓰면 '경쟁기업에 비하여 더 잘할 수 있게 해주는 기업의 경쟁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핵심역량이 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3가지 특징이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1) 고객의 편의를 증대시켜 주어야 한다

(2) 경쟁자들이 모방하기가 매우 어려워야 한다

(3) 다양한 상품, 시장으로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다


이러한 정의에 비추어 쫌질이 팀장의 핵심역량인지를 한번 분석해 보죠.


C. K. Prahalad 교수(좌)와 Gary Hamel 교수(우), 그리고 이들의 공저인 HBR 리포트



'쫌질'(쪼는 행위)의 특징 3가지


1. 쪼는 힘의 원천은 조직에서 비롯된다 (즉, 개인의 경쟁력이 아니다)


쪼는 게 가능한 이유는 뭘까요? 그것은 다름 아닌 '갑'으로서의 권력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갑의 권력은 어디에서 비롯될까요? 회사에서 갑의 권력은 돈도 아니고 인품도 아닌, 조직 내 직책 또는 직위에서 비롯됩니다. 즉, 조직의 후광이 없으면 갑의 지위도 사라집니다.


그런데 회사에는 '조직의 후광'과 '개인의 역량'을 혼동하는 분들이 꽤 많습니다. 자신이 갑이 된 것은 본인의 역량이나 노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오로지 조직의 후광 때문인데 그것을 마치 자신이 잘났기 때문인 것으로 착각하시는 분들이 꽤 많죠. 또한 갑이 조직의 후광에서 비롯된 것임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갑의 권한은 마치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천부인권'인 양 대놓고 과시하려는 분들도 있습니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과거에는 쫌질을 할 수 있는 조직의 직원들은 신입사원이 입사하면 쫌질을 '제대로' 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줬습니다. 이런 조직의 선배들은 쫌질을 잘 못하거나, 쫌질을 하지 않으려는 후배들이 마치 조직의 권위를 실추시킨 양 나무라곤 했습니다. 악습이죠.


결론, 

쪼는 건 갑으로서의 권력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고, 따라서 쫌질은 개인의 경쟁력이 아닌 조직의 경쟁력(?)이다.



2. 잘 쪼는 사람은 세상에 널렸다 (즉, 누구나 모방할 수 있다)


선천적으로 쪼는 걸 잘 못하는 분이 있습니다. 남을 쪼는 것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갖는 분들이 여기에 속하죠. 


하지만 이런 분들은 별로 없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쫌질에 금방 적응합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저 또한 과거에 힘 있는 조직에 속해 있을 때, 처음에는 쫌질을 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언젠가부터 저도 모르는 사이에 조직 분위기에 물들면서 자연스럽게 쫌질을 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물론 남들보다는 공손하게 했지만, 쫌질은 쫌질이었죠.


'쫌질을 잘하느냐 못하느냐'의 구분은 '쪼임을 당하는 사람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면서 쪼을 수 있느냐' 여부에 달려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게 크게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어차피 쪼임 당하는 대상은 기분이 상해도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기 때문이죠. 정리하자면, 잘하든 못하든 관계없이 쫌질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결론,

쫌질 잘하는 사람은 세상에 널려 있고, 따라서 쫌질은 쉽게 모방할 수 없는 특별한 능력이 아니다.  



3. 조직을 뜨는 순간 쫌질은 쓸모가 없다 (즉, 확장이 거의 불가능하다)


사례 제시


K사에 홍보팀으로 입사해 5년 넘게 광고대행사 관련 업무만 진행했던 홍대리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대리 진급하면서 핵심 부서인 기획팀에 배치됐는데 갑자기 패닉에 빠졌습니다. 그동안 웬만한 일은 다 광고대행사에 시켜왔기 때문에 정작 본인은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기 때문이죠. 홍대리는 결국 본인이 자청해 다시 홍보팀으로 돌아갔습니다.


홍대리처럼 쫌질만 해온 사람은 조직을 떠나는 순간 바보가 됩니다. 막상 자기는 할 줄 아는 게 쪼는 것밖에 없기 때문이죠.


'다른 조직에 가서 쫌질 해야지.' 천만의 말씀입니다. 쫌질은 쫌질이 필요한 조직에서나 필요하지 그렇지 않은 조직에서는 필요도 없고 할 수도 없습니다. 대부분의 조직에서는 자기 일 똑부러지게 잘하는 사람을 원합니다.


'그러면 쫌질이 필요한 다른 회사에 가서 쫌질 해야지.' 이것 역시 천만의 말씀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다른 회사에도 쫌질 잘하는 사람은 널려 있습니다. 누가 쫌질 잘한다고 그를 경력직으로 채용하는 바보 같은 회사는 OECD 회원국인 우리나라에는 없습니다. (있었다면 곧 망했을 겁니다.)


결론,

쫌질은 일부 부서에서만 요구되는 행위이고, 따라서 확장 가능성이 거의 없다.


쫌질만 해온 사람은 조직을 뜨는 순간 할 줄 아는 게 없죠. '송곳'의 정민철 과장님처럼요. [사진 출처 JTBC 드라마 '송곳']


다시 핵심역량의 정의로 돌아와서 쫌질을 분석해보면,

(1) 고객의 편의를 증대시켜 주어야 한다 (YES, 쫌질 잘하면 실적이 증가한다)

(2) 경쟁자들이 모방하기가 매우 어려워야 한다 (NO, 2번에서 설명했듯이 누구나 모방할 수 있다)

(3) 다양한 상품, 시장으로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다 (NO, 3번에서 설명했듯이 확장이 어렵다)


또한 1번에서 말씀드렸듯이 쫌질의 원천은 개인이 아닌 조직입니다. 이상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쫌질은 개인의 핵심역량이 아니다


따라서 회사에서 쫌질 잘 하는 것을 무슨 대단한 능력인양 믿고 손 놓고 있다가는 나중에 큰 코 다칩니다. 특히 앞서 말씀드린 홍대리처럼 쫌질에만 의존해서 회사생활을 편하게 해오신 분들은 그 자리에서 내려오는 순간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는 '직장 바보'되기 십상이죠.


쫌질만 믿고 회사생활 편하게 하면 '직장 바보'된다

그러나 '직장 바보'는 감동 없이 모두를 힘들게만 합니다. [사진 출처: 영화 '바보']


그렇다면 홍대리처럼 쫌질에만 능한 직원들은 쫌질 이후의 회사생활에 대해서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요?



쫌질 이후 회사생활에 대한 대비책


1. 젊을 때에는 '을'로 일하면서 개인의 역량을 키워라


조직의 후광은 조직을 떠나는 순간 사라집니다. 하지만 개인의 역량은 몸담고 있는 조직과 관계없이 항상 남아 있습니다. 따라서 젊을 때에는 개인의 역량을 키우는데 힘써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조직에 목줄 잡혀 조직에 얽매이게 됩니다. 


개인의 역량을 키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갑'으로서 조직의 후광에 힘입어 쫌질하려고 하지 말고, '을'로서 실제 업무를 수행하면서 배울 수 있는 부서에서 일해야 합니다. 한 마디로 젊을 때에는 '사서 고생'해야 합니다.



2. 쫌질 할 때에는 '지시'만 하지 말고 '해결책'을 함께 고민해라


하지만 팀장이 되고 더 나아가 임원이 되면 쫌질을 해야만 할 수도 있습니다. 회사에서 그러한 역할을 요구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직장생활의 황금기를 쫌질만 하면서 보내면 퇴사 후에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게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쫌질할 때 아무 생각 없이 '지시'만 하지 말고 상대방과 함께 '해결책'을 고민해보면 어떨까요? 상대방에게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 오세요"라고만 하지 말고, 나름 해결책을 고민해본 뒤 "이런 대책은 어떠세요?"라고 제안하는 겁니다. 그리고 상대편과 함께 더 좋은 대안이 없는지 고민하는 거죠. 상대편 제안에 대해서도 "더 좋은 안을 갖고 오시죠"라고만 하지 말고 "이런 문제가 있으니 이렇게 한번 해보면 어떨까요?"라고 하는 거죠.


물론 이렇게까지 안 해도 됩니다. 내가 갑인데요. 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 직장 바보 됩니다. 나를 위해서 하십시오.



3. 어쩔 수 없이 쫌질을 하더라도 남는 시간에는 자기계발에 힘써라


마지막으로 회사에서는 쫌질을 하더라도 퇴근 후 여가 시간에는 자기계발에 힘쓰십시오. 갑의 권력을 이용해서 술접대 받지 말고요.



by 찰리브라운 (charliebrownkorea@gmail.com)





Key Takeaways


1. 쫌질은 힘의 원천이 개인이 아닌 조직이고, 누구나 모방할 수 있고, 확장 불가능하다.

2. 따라서 쫌질은 팀장의 핵심역량이 아니고, 쫌질만 하다간 '직장 바보'되기 십상이다.

3. 이를 예방하기 위해 젊을 때에는 '을'로 일하면서 개인의 역량을 키우고, 쫌질 할 때에는 '지시'만 하지 말고 '해결책'을 함께 고민하고, 어쩔 수 없이 쫌질을 하더라도 남는 시간에는 자기계발에 힘써라.



부족한 글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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