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난 기질이 약간은 예민해서인지 계절을 탄다. 가을이 다가오면 벌써 올해도 다 지나갔다는 생각에 일 년을 알차게 보내지 못한 것 같은 아쉬움에 울적해지고, 봄이 다가올 때는 이유 없이 기분이 붕 뜬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시기에는 연애를 하고 싶어지기도 하고, 몇 년 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가 갑자기 보고싶어져 용기 내 연락을 하고, 약속을 절대 먼저 잡지 않는 내가 인맥을 총 출동해서 매주 약속을 잡는다. 이런 시기가 지나면 봄 타던 시절의 나를 생각하며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인 것에 대한 창피함도 느끼지만 어쨌든 봄에 나는 이렇다.
나는 이 시기에 내 마음이 몽글몽글하다고 표현하는데, 마음이 몽글몽글할 때의 단점도 있다. 누군가와 만나서 놀고 싶은데 만날 사람이 없으면 우울해진다. 무조건 친구가 많은 게 좋은 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이 시기에는 내 마음이 평소와 달라서 좁은 인맥을 가진 게 서글퍼진다. 그리고 친구에게 쉽게 섭섭함을 느끼기도 한다. 오래 놀고 싶은데 친구가 뒤에 약속이 있어서 일찍 헤어져야 할 때, 대화하며 놀고 싶은데 집에서 영화만 볼 때 섭섭하다. 또 연애에 대한 생각이 많아지는 게 가장 큰 단점인 것 같다. 설렘을 느끼고 싶어서 소개팅에 나갔다가 잘 맞지 않는 사람을 만나면 이러려고 이쁘게 꾸미고, 시간을 투자한 건지 허탈하다. 그리고 관심 있는 남자의 카톡 프로필 사진만 바뀌어도 나는 이 사람이랑 같이 봄을 보내고 싶은데 이 사람은 왜 나한테 관심이 없는지 짜증이 난다. 기분이 좋으면 오히려 성격이 관대해져야 할 것 같은데, 누군가 내 몽글몽글한 마음을 맞춰주지 않으면 서운함을 느끼는 게 아이러니하다.
올해 봄이 오는 지금 내 마음은 역시 간지럽다. 회사 일에 동기부여가 안되어서 매니저와 여러 번 상담을 하고, 매니저가 내 의견도 받아줬지만 회사 권태기는 계속 나아지지 않았었는데, 지난주에 회사 동료들과 목이 쉴 정도로 재밌게 놀고 술도 많이 마시는 좋은 시간을 보내니 갑자기 의욕이 생겼다. 이제 회사를 정말 잘 다닐 수 있을 것 같아서 매니저와 얘기해서 내년에는 진급을 목표로 하기로 했다. 노는 걸로 스트레스가 풀리는 경험은 처음이라 신기했고, 앞으로도 그날을 잊지 못할 것 같다. 마음이 붕 뜨니 갑자기 자기개발에 대한 욕심이 생겨서 회사에서 스터디 모임을 만들었다. 만우절에는 따듯한 햇빛을 맞으니 기분이 좋아져서 급하게 매니저와 말을 맞추고 동료들에게 퇴사한다는 거짓말도 했다. 그리고 지난 2년 동안 연애에 대한 생각이 하나도 없었지만 날이 따듯해지면서 데이트가 하고 싶어져서 주위에 소개팅 해달라는 얘기도 많이 해두었다.
모두 평소의 내가 경험하지 못했던 일들이라 이제 봄이 왔고, 나는 어김없이 봄을 타고 있구나 생각하게 됐다. 이번 봄은 작년보다도 더 잘 즐겨보려고 한다. 나에게 봄은 이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