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노마드의 성지 치앙마이에서 내가 뭘 할 수 있지?

개발자 디자이너 아닌 문과생이 디지털노마드 뭘 할 수 있죠?

by 망샘


태국의 북쪽 산간에 있는 작은 도시 치앙마이는 어느새 힙한 디지털노마드의 성지 혹은 요가 여행지로 자리매김했다. 여행을 떠나기 전 맛집 탐방과 요가가 유일한 낙이었던 내가 치앙마이를 점찍어둔 건 놀랄 일도 아니었다.


매일 SNS에 사진을 올리는 관종 중증이었던 나는 치앙마이에서 한 달간 머문 동안 물 만난 고기 같았다. 퇴사하고 한 달도 되지 않아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던 치앙마이에서 한 달 살기를 했으니 매일 퇴사 뽕에 취해 아침엔 요가, 오후엔 카페로 향하는 중독자처럼 지냈다.

카페에 가면 늘 노트북을 째려보며 저마다 바빠 보이던 디지털 노마드들로 넘쳐났다. 요가를 하며 만난 에스토니아 출신 친구는 개발자였고 다른 스페인 친구 역시 엔지니어였다. 아니면 디자이너라 외주로 일을 하는 식이었다. 그럼 그렇지, 나 같은 평범한 문과생은 디지털 노마드는 고사하고 그냥 방랑자 신세를 면치 못했다. 그 옆에서 노트북을 편들 수익과는 거리가 먼 블로그에 여행기를 쓰는 게 할 일의 전부였으니.

되지도 않을 디지털노마드 놀이는 치우고 요가에 공을 들였다. 부러 요가 여행을 떠난 건 아니었으나 좋아하는 것만으로 하루를 채우다 보니 자연스레 요가가 남았다. 시키지 않아도 요가 정보를 찾았고 좋아 보이는 요가 스튜디오 사진을 보면 설렜다. 방콕에서 저가 항공을 타고 한 시간 만에 도착한 치앙마이에서 짐을 풀자마자 가장 가고 싶었던 요가원으로 향했다.



다채로운 색감에 주황색 해먹마저 힙해 보였던 그곳은 단번에 내 마음을 훔쳤다. 야외에서 수련하기에 약간의 매연 냄새도 나고 쉴 새 없이 달려드는 모기도 많았지만 개의치 않고 5회권을 끊어버렸다. (이후 더 마음에 드는 곳을 찾고선 이내 후회했다. 여기도 좋지만 더 좋은 곳이 있고 내 시간은 유한하니까)

민머리에 다부진 몸으로 고수의 아우라가 느껴지는 30년 경력의 프레디 선생님과 현지 태국인 여자 선생님 민, 두 커플이 발랄한 포메라니안 해피와 함께 꾸려나가는 공간은 꽤나 가족적이었다. 가장 신기했던 건 끊임없이 들어오던 한국인들이었다. 심지어 우리가 수업을 듣던 아무것도 아닌 평범한 날 한국에서 온 촬영팀이 요가하는 모습을 찍어가기도 했다. 그만큼 한국인의 비중이 높던 곳이었다.

그래서일까 두 선생님이 함께 아엥가 요가를 가르치고 나머지 시간엔 한국 선생님이 수업을 진행했다. 외국인들을 위해 영어로 진행하는데 열명 모두 한국인만 와 한국어로 수업을 한 기이한 날도 있었다. 태국에서 한국어로 요가 수업을, 그것도 한국인들과 함께 요가를 할 줄이야. 수업을 갈 때마다 궁금했다. 치앙마이에서 영어가 서툰 한국인이 요가를 어떻게 가르치게 된 걸까? 구직을 했을까, 먼저 요가원에서 구인을 한 걸까 그 비결이 궁금했다.





그런데 갑자기 나에게도 기회가 왔다. 여느 날처럼 수업이 끝나고 남아 안되던 동작을 연습해보고 있었다. 그걸 지켜본 프레디가 혹시 요가 강사냐고 물었다. 옆에 있던 남편은 덥석 맞다고, 내 와이프는 요가 자격증 있는 강사라고 대신 대답해주었다. 그리고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치앙마이 언제까지 있어? 지금 하는 선생님 한국 돌아가고 나면 와서 수업할래? 수업료는 몇 대 몇으로 나누는 방식으로 하면 돼.”

와... 나 지금 영업당한 건가? 남편의 불꽃같은 외조 덕분에 그렇게 궁금했던 한국인 요가 선생님의 비밀도 알게 됐다. 나처럼 이렇게 제안을 받았거나 혹은 이곳의 시스템을 알고서 치앙마이에 오기 전 미리 구직을 했겠구나. 만약 제안을 수락하면 나도 치앙마이에서 돈을 벌며 여행하는 디지털 노마드가 되는 것이었다. 퇴사 보험 삼아 따놓은 요가 자격증이 이렇게 빛을 발하는구나.






아쉽게도 제안을 받은 건 5회권을 소진하는 마지막 날이었다. 즉 치앙마이를 떠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였다. 그렇게 디지털 노마드의 기회는 날아갔지만 다음 치앙마이에 오게 된다면 미리 연락을 해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했다.


또한 치앙마이에는 공원에서 선생님들이 재능기부로 진행하는 요가 수업이 거의 매일 열린다. 마음만 먹으면 어디서든 돈을 벌 수 있는 것이다. 개발자와 디자이너만 부러워할 게 아니라 나도 영어만 편하게 구사할 수 있다면 디지털 노마드가 될 수 있는 것이었다.


평범한 문과생은 글렀다고 생각했는데 뭐든 좋아하는 걸 하다 보면 기회가 올 수 있다는 걸 치앙마이가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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