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요가클래스 10개월의 여정
이번 주 글을 쓰려는데 도통 글감이 떠오르지 않는다. 뭘 했는지 기억이 안 나 사진첩을 보니 죄다 요가 수강생들 사진뿐이다.
1월은 추워서 요가 수업이 없겠거니 했다. 야외 잔디 마당의 매력이 사람들을 부른다 생각했으니까.
실제로 1월 첫째 주엔 개점휴업이었다. 12월 마지막 주까지 수업 예약이 많아 달렸던 참이라 쉬면서 다른 일들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러나 둘째 주부터 다음 주까지 수업이 가득 찼다. 집에 가만히 있으면 알아서 찾아와 주시고, 함께 몸을 움직이며 나도 운동을 하는데 돈도 번다. 감사한 일이다.
참고로 코로나 시국의 제주도는 비수기가 없다. 요가 수업을 해보니 더욱 알겠다. 봄에는 꽃이 피니까, 여름에는 물놀이하기 좋으니까, 가을에는 억새도 있고 날씨가 좋으니까, 겨울에는 귤도 있고 동백도 피고 따뜻하니까. 여행을 안 올 이유가 없다. 해외는 못 가는데 휴가는 남고, 안식 휴가를 주는 회사도 많아졌고 퇴사하고 길게 제주에 내려오는 성인들이 많아졌다.
그래도 1월 초부터 휴가를 길게 낼 직장인은 많지 않으니 나도 덩달아 휴가를 갖나 싶었으나 웬걸, 방학을 맞아 일주일씩 혼자 여행을 오는 대학생들과 아이들 방학을 맞아 가족여행을 온 사람들로 북적인다.
맛집과 카페를 다니는 것도 하루 이틀이다. 배는 부르고 그 사이 할 만한 활동을 찾아 동남쪽 시골 마을에 있는 요가 베르데까지 오는 게 아닐까. 제주 여행의 성수기를 몸소 체감하며 열 달 동안 약 350여 명의 수강생들을 만났다.
4월 1일 만우절날부터 거짓말처럼 수업을 시작한 이후, 장마철 잠시 주춤하더니 가을부터 거의 매일 수업을 했다. 특히 9월 초 <환승 연애>가 방영된 이후 약 1.5배가 늘었다. 네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주휘, 혜선이처럼~’을 외치는 분들이 찾아주신다.
최연소 6살부터 최고령 75세 어머님까지 남녀노소의 몸이 한 시간 동안 내 말 한마디로 움직였다.
“요가 처음 해보는데 좋네요”
“서울 가서도 계속 요가 수업 들어보고 싶어 졌어요”
“몸이 개운해졌어요”
“다음에 또 올게요” 나를 기쁘게 하는 고마운 말들이다.
“어제 받은 호텔 마사지보다 시원해요!”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혼자 용기를 내어 오셨던 남자분이 해주셨다. 수업을 마치고 “나마스떼” (당신 안의 신에게 경의를 표합니다)라고 두 손 모아 요가 인사를 건넬 때, 함께 ‘나마스떼’를 따라 해주시고 나서 박수를 쳐주실 때. 나의 한 시간이 이보다 더 근사해질 수 없다.
사람에게 에너지를 얻는 외향적 인간인 나에게 이 직업은 적성에 매우 잘 맞는다. 수업 전후로 나누는 대화로 영감도 받고 자극도 된다.
속초에서 비슷한 결로 수업을 하는 요가 선생님,
남양주 카페에서 야외 요가를 해볼까 하는 사장님,
알고 보니 겹치는 지인이 있던 분들,
수박이가 보고 싶어 한 달만에 또 찾아온 커플,
비밀로 하고 예약해 찾아온 후배들과 친구의 남자친구,
임신 7개월에 커진 배를 가리지 않고 크롭티를 입고 요가하던 멋진 분,
그리고 평소 팔로잉하던 좋아하는 브랜드의 직원까지.
열 달 동안 이 350여 분들 덕분에 많이 성장했다. ‘선생님’ 호칭을 듣는 게 자연스러워졌고, 나의 또 다른 적성을 발견했다. 4년 반 남짓 요가를 수련하며 체득한 것들을 몸과 말로 표현하며 사람들이 변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뜻깊다.
자아가 생성될 때부터 좋은 영향력을 끼치고 싶었다. 중학생 때는 공부 열심히 해서 특목고에 가고, 고등학생 때는 명문대, 대학교에서는 좋은 회사에 취직해 모교에 가서 후배들에게 ‘롤모델’이 되는 게 노력의 원동력 중 하나였다. 같은 맥락에서 마케팅 일도 잘 맞고, 글로 영향을 끼치는 작가, 그리고 몸과 말을 쓰는 요가 강사까지 다 재밌다. 4년 전에 요가 자격증 코스를 들을까 말까 고민할 때 쿨하게 현금으로 결제해준 남편이 고맙다.
이제 새로운 곳으로 이사 갈 날이 열흘 남짓 남았다. 남은 두 번의 수업을 끝으로 시즌1을 마무리한다. 이사 갈 공간에 육지에서 내려올 2.5톤의 짐이 들어가면 과연 요가할 공간이 나올까 그려지지 않아 시즌2는 미지수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가진 것을 요리조리 잘 빚어내 또 다른 좋은 공간을 만들 것이다. ‘또 놀러 올게요!’ 했던 분들을 다시 만날 수 있도록. 요가 베르데 덕분에 나의 제주 생활도 더없이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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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 'TTC(Teacher Training Course)'를 준비하거나 이수했거나,
요가를 가르쳐보고 싶은데 요가원에 취업을 하거나 직접 차리는 창업까지는 하기 싫은데 요가는 가르치고 싶다...! 이런 분들이 계실 것 같아요.
수업을 만들어 운영한 팁들도 다음 글에서 함께 공유해볼게요! (연말에 정리하며 pdf로 만들어둠ㅎㅎ)
혹시 필요하신 분이 계시다면 댓글로 알려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에어비앤비 담당자 분 눈에 띄어 기획 기사에도 소개됐다. 좋아하는 요조님 책방에 엮어서 소개되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