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 4년째 꿀빠는 설날
5일의 연휴가 쏜살같이 지나가는 건 프리랜서도 마찬가지다.
출퇴근의 비애가 있는 건 아닌 나도 연휴가 끝난다니 아쉽다.
의도치 않게 4년째 설 연휴를 남편과 둘이서만 보내고 있다.
이번에도 일주일도 남지 않은 이사, 극심한 코로나에 비싼 비행기 표값 등을 이유로 제주에서 보냈다.
돌이켜보니 세계여행을 하던 2019년은 인도 리시케시의 한식당에서 떡국을 먹었고, 2020년은 페루 리마에서 와라즈로 8시간 버스 이동을 하고 있었다.
작년과 올해는 모두 제주에서 보내느라 4년째 가족들과 떨어져 보냈다.
늘 명절마다 대구에 가서 북적거리는 가족들 틈에서 보내왔기에 우리끼리 보내는 건 좀 낯설다.
하지만 가족 모임과 그에 따른 설거지의 부담이 없이 남편과 둘이서 하고 싶은 대로 시간을 쓸 수 있었다. 매일 루틴 하게 하던 일은 잠시 느슨하게 제쳐두고 되도록 새로운 것들로 채워봤다.
가령 평소 마시던 것보다 조금 더 비싼 와인을 마시는 것,
장식으로만 있던 ‘서양미술사’ 같은 두꺼운 책을 읽거나 미뤄둔 카펫 세탁하기 등
1. 평소 1~2만 원 대 와인을 마셨는데 연휴를 기념해 3~4만 원 대의 와인 2병을 사 왔다.
2. 늘 읽던 분야의 책만 읽는지라 이번 연휴에는 부러 두꺼운 책을 읽어봤다. 지금 지내는 집주인 분들이 두고 간 방대한 컬렉션에서 ‘서양미술사’와 ‘팩트풀니스’ 그리고 평소 읽고 싶었던 ‘콰이어트’를 읽었다.
특히 독일 여행을 하며 비스바덴 수도원에서 마셔본 리슬링 와인을 마시며 ‘서양미술사’를 읽었을 때는 작은 희열도 느꼈다. 유럽을 여행하며 의무감에 봤던 것들을 책으로 다시 보니 여행하는 기분이었다.
22살에 마드리드에서 다섯 달 살았던 시절, 매주 화요일 6시부터 무료 개방하는 프라도 미술관을 뻔질나게 드나들었던 기억.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 줄 알았는데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던 조각들이 책을 통해 화르르 타올랐다.
3. 늘 유행하는 드라마를 보느라 뒷전이었던 영상들도 몇 개 찾아봤다. 특히 ‘나의 문어 선생님’을 보며 다시금 채식 지향적인 식사를 해야겠다 다짐했다.
게다가 놀기만 한 줄 알았는데 다섯 날의 연휴를 되돌아보니 의외로 일을 꽤 했다.
3일은 요가 수업을 했고, 12월부터 어정쩡하게 만들어둔 마음의 짐 같던 전자책도 수정하고 판매 페이지도 다시 손봐서 판매 신청을 해두었다.
그런데 딱히 일을 하느라 힘들다는 기억 대신 재밌었다. 오히려 ‘남들이 다 놀 때 일한다’는 생각이 능률을 올려준 것 같다. 힘을 뺀 상태에서 하는 일들은 ‘보너스 게임’ 같다. 안 해도 괜찮지만 하면 보너스 점수가 확확 느는 것!
평소 안 하던걸 하니 뿌듯한 마음에 오히려 푹 쉰 기분이다.
비록 3일 내내 아침 5시에 울리던 알람을 끄고 한두 시간 더 자서 찝찝하지만 그것만 빼면 모두 괜찮은 연휴였다. 오히려 바짝 힘주고 살았던 1월과 비슷한 능률로 일을 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면 연휴에 가졌던 마음가짐대로 힘 빼고 살아봐야겠다.
타석에 들어선 타자도 몸에 잔뜩 힘을 주고 휘두르면 헛스윙을 하거나 뜬 공으로 죽기 마련이다. 오히려 힘빼고 친 게 홈런이 되는 법이니까! 매순간 본 게임이 아닌 보너스 게임인 것처럼 힘을 빼고 배트를 휘둘러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