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간도 걸리지 않아 셋과의 퇴사면담이 끝났다.
마지막 월요일 출근, 사직원을 제출했다.
출근할 날이 워킹데이로는 이제 만 6일만이 남았지만 퇴사 관련 절차는 불과 지난주 목요일 퇴근할 무렵부터 시작되었다. 사실 절차라는 것도 단순했다. 엑셀파일 한 장에 사직원, 워드파일 한 장은 기밀유지계약서가 전부였다. 만 5년하고 3개월을 채워 일한 첫 회사의 입사일과 퇴사일을 적고 퇴사사유를 적어냈다. 13개의 보기 중에 내가 체크할 사유는 단 하나도 없었다. 이직, 이민, 건강 상의 이유, 가족 부양, 해외 유학, 이사, 은퇴, 학업, 개인 사업 등... 기타에 체크하고 '장기 여행'으로 적어냈다.
이름도 생소한 장기 여행. 세계 여행이 맞지만 왠지 50대를 바라보는 남자 임원들과 입에 올리기엔 조금 민망한 단어라 '세계'대신 '장기'를 넣었다. 형식적인 종이를 앞에 두고 팀장, 본부장, 인사팀장과 연달아 의례적인 퇴사면담을 했다. 이미 나의 계획이 알려진 건 지금으로부터 거의 4달 전부터여서 딱히 면담을 하는 것도 애매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퇴사를 직전에 앞둘 때까지 면담을 하지 않을 줄 몰랐다. 비교하고 싶진 않지만 예전에 리더로 계셨던 내가 유일하게 이 회사에서 존경하는 분이었다면 어땠을까. 이미 4달 전부터 따로 면담을 하자고 하셨을텐데.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최대한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분들과 의미없는 이야기는 하고 싶지도 않았다.
인사팀과 퇴사 면담을 하게 된다면 내가 보고 느낀 부조리함을 낱낱이 고하겠다고 다짐했던 때가 있었다. 사실 몇 시간 전까지도 고민이 끝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면담을 하며 나는 '모두가 다들 잘해주셨다'며 조금은 가식적인 웃음으로 모든 가능성의 물꼬를 봉쇄했다. '자신은 최선을 다해 대했기에 떳떳하다'는 사람을 보며 끝내는 어이가 없었지만 이렇게 좋게 마무리하는 게 여러모로 모두에게 좋기에 마음은 한결 가볍다. 세 명과의 대화가 총 30분도 채 걸리지 않았지만 종국에는 '재입사'라는 단어도 나와 나의 5년 3개월의 시간이 헛되진 않았구나 싶은 마음에 기분이 좋기도하다.
보통 일요일은 오후부터 기분이 싱숭생숭해진다. 낮잠 한두시간 딱 자면 좋겠는데 그러면 밤새 말똥말똥 잠이 오지 않고 힘든 월요일 아침을 맞이할 게 뻔하다. 하지만 마지막 월요일 출근을 앞둔 어제 일요일 오후엔 영화를 보다 까무룩 낮잠에 들었다. 그러다 느즈막히 모임에 나가 신나게 저녁을 먹고 2차로 카페까지 갔다. 일요일 9시가 넘어 집에 왔는데도 하나도 피곤하지 않았다.
물론 마지막 일요일 밤에도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아 커피대신 아이스초코를 시켰지만...
영업사원들이 모두 들어와 북적북적한 월요일의 사무실 풍경은 여전했다. 마지막 월요일이니까 시원하게 지각을 해도 괜찮을 것 같아 밍기적대며 출근을 해도 1분밖에 늦지 않았다. 이 노예근성으로 10월 1일 월요일엔 어떤 기분일 지 상상이 가질 않는다. (기분 째질 듯)
이렇게 노예의 마지막 월요일은 8-5를 꽉 채워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