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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혁 Mar 24. 2022

첫 자전거 출근 날

영원으로의 출퇴근 - 1화

2019년 6월 24일 월요일, 출근 8:04AM – 9:00AM


여러 해 주말의 자전거 라이딩 경험으로 이것저것 챙겨 둘 것들을 배웠고, 나름 면밀히 체크 리스트를 만들었다. 여분의 타이어 튜브, 소형 에어펌프, 일회용 손 장갑, 체인과 타이어 수리 도구 세트, 응급 약 세트, 샤워 후 오피스에서 입을 옷가지, 점심 도시락, 물통, 노트북 등을 목록에 넣었다.


출근은 집에서 자전거를 차에 싣고, 차로 약 15분 거리의 C&O 운하 24번 수문의 주차장까지 간다. 거기서부터 포토맥 강 하류의 남쪽 토우패스로 약 20 여 킬로미터가 출근 거리다.


주말에 미리 예행연습으로 출퇴근 루트를 자전거로 왕복해보고, 구글맵의 자전거 라이딩 시간과 비교해 보며, 실제 소요 시간을 측정해 보았다. 집에서 출발하는 적당한 시간을 정하기 위해서였고, 신기하게 1시간에 정확히 근사 했다. 토우패스 거리의 소요 시간은 운전 시 차량 도로 거리와 달리, 체력의 적응 정도에 따라 다소 가변적일 수 있을 것이지만, 러시아워 교통상황의 변수를 고려하면 예측성이 좋은 장점도 있다. 집에서 보통 운전을 하여 오피스에 도착하면 대략 총 1시간이 소요된다. 자전거도 토우패스 구간은 1시간이지만, 자전거를 싣고 내리며, 도착해서 샤워 후 옷을 갈아입는 시간까지 고려하면 대략 2~3시간이 필요하다. 대략 자동차로 출근하는 날 보다 1~2시간을 일찍 출발하면 되는 것을 배웠다.


나름 면밀히 챙겼는데도, 오늘 첫날 주차장에서 자전거를 내리며, 다른 라이더들의 헬멧을 보고, 나의 것을 잊고 온 것을 알았다. 일반 자동차의 출입이 금지된 토우패스에서 헬멧의 필요성은 높지 않지만 작은 룰이라도 법을 위반한 것이다. 필수 장비를 잊고 전투에 나선 보병처럼 불안한 첫출발은 의외로 낯설진 않았다.


나에겐 새 스마트 폰 징크스가 있다. 지난 4번의 새 스마트폰들은 구입 후 보호 케이스를 주문하는데, 케이스가 도착하기 전에 꼭 떨어트려 액정에 금이 가거나 카메라 렌즈에 실금들이 생긴다. 일단 그 과정이 지나면 향 후 2~3년은 더 이상의 문제없이 사용한다. 마치 공장에서부터 나만을 위해 일부로 금이 가게 만들어 놓은 제품을 구입했다는 위로로 액땜을 한 것처럼 받아들인다. 징크스는 액땜을 부적처럼 만들어 나머지 시간들을 무탈히 보내게 해 준다. 오늘 이후 자전거 통근 날은 절대로 헬멧을 잊지 않을 것이란 확증을 슬며시 챙겼다.


20여 년 같은 자동차 출근길에 자전거 일탈의 설렘이 오랜 화석의 껍데기를 벗긴 듯하다. 오래전 첫 출근의 묘한 스트레스와 희미해진 호기심들이 거친 숨소리에 잠시 베어 나왔다. 평상 아침 출근의 러시가 오늘은 화성을 향한 로켓 추진체의 출력을 달고 달린 듯하다.


아침과 친근한 나의 두 단어는 긍정과 희망이다. 일상의 마음을 조금만 틀어 보면, 흔하고 쉽게 느껴 볼 수도 있는 긍정의 마인드와 이유 없는 희망들이다. 오늘은 모처럼 의욕의 아침을 자전거를 챙긴 보상처럼 챙겼다.

 




2019년 6월 24일 월요일, 퇴근 5:30 PM – 6:24 PM


처음 시도하는 일상의 추가는 직장의 일과 관련이 있든 없든 “새로움”이란 느낌으로 일상 속의 리비도를 올려 주었다. 출근 후, 라커룸에서 샤워를 마친 후, 컴퓨터 모니터가 평소보다 밝고 커 보였다. 자전거를 타기 전에 마셨던 커피의 카페인이 1시간의 유산소 운동 중에 뇌의 많은 부분들에 효과적으로 배달된 건지, 온종일 정신이 맑았다.


퇴근길엔 갑작스러운 소나기를 만났다. 토우패스 흙길이 순식간에 진창길로 바뀌었고, 얼굴의 입까지 튀어 오르는 진흙탕물이 달큰한 초콜릿처럼 부드러웠다. 금세 빗물에 씻기고 또 묻히길 반복하는 과정이 사라진 동심을 깨우며 미소를 주었다. 도착 즈음에 지나간 소나기는 나의 첫 자전거 통근을 축복하는 토우패스의 세리머니로 담겼다.


퇴근길 중간의 와이드 워터를 지날즈음 허벅지에 쥐가 올랐다. 이런 상황에 페이스를 조절하여 극복하는 방법에 낯설지 않게 해 준 지난 서너 해의 라이딩 경험이 소중했음에 새삼 감사했다.






사람에겐 "알고 싶음"이 혼에 박혀있다.


다 알아버렸으면, 神이던지 아니면 이미 사람의 혼은 증발해버린 것이다.


길이 가르쳐 준다

목적지에 마음을 줄수록 발 밑의 길은 사라진다고


우리는 평생을 길 위에서

걷고,

뛰고,

기고,

뒹군다.


목적지는 죽기 위해 멈추는 곳인데

늘 그곳으로 가려는 꿈을 꾸며 앞만 본다.


중간 즈음 지나며

이제 옆이 보이고 길 위의 내 모습을 느낀다.
 
어차피 가는 길
화장터 연소실의 버너 속으로 들어가는 레일 위보단
청명한 초록과 저녁노을이 보이는 숲길의 레일 위에 나의 영혼을 태우고 싶다


오늘 나의 육신과 영혼이 멈출 봉안당에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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