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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혁 Feb 05. 2022

맥문동

마당에 흐르는 곡선

겨울을 버텨낸

헝클어진 여인의 머리카락

지친 신음 소리 한마디 없다


초봄의 삭발식에 구르던 이슬방울들

한숨을 삼키며 흘려버린 눈물이었다


돌배나무 그늘에서

다듬고 또 다듬는 고결한 여인의 곡선들은

고름의 매무시로 펴지고

반듯한 동정의 접힘에는

흐트러짐이 없다


이제 보랏빛 첩지를 얹고

실바람에 사뿐히 몸을 맡겨

나의 흐르는 숨소리를 더듬는다


정숙한 여인의 미동은

바람의 아다지오를 넘나드는

붉은 전율이 되어간다





고름: 저고리나 두루마기 앞에 기다랗게 달아 양쪽 옷자락을 여미어 매는 끈

동정: 한복의 저고리 깃 위에 덧대어 꾸미는 흰 헝겊 오리

첩지: 조선 시대, 왕비를 비롯한 내명부, 외명부가 쪽머리의 가르마에 얹어 치장하던 장신구의 하나





麥門冬은 겨울에도 초록과 바랜 연노랑의 줄기를 잎에 지니고 있다.

초봄에 늘어진 잎들을 짧게 잘라준다.

한여름에 다시 뻣뻣이 가지런히 솟아 피는 모습이 보리를 닮았고, 늦여름에 연보랏빛 꽃을 피운다.

보랏빛은 서양에선 귀족적 권위의 상징이고, 절제된 화려함이다.

내겐 숨겨진 멍든 상처의 고통으로도 비친다.

늦여름의 실바람에 흔들리는 보랏빛 꽃대는 고결한 조선 여인의 한과 절제된 춤이다.

갈대밭의 아련한 몽환의 바람과 흐름이 주는 곡선에 아슬아슬한 아름다움에 차마 떨고 있음이다.


Liriopes at the backy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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