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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으로 Oct 29. 2022

역시 인생은 알 수 없어

2020년 2월 초,

어느 정도 예상했던 대로 남편이 제주도로 발령을 받았다.

본인이 희망했고, 가장 가고 싶어 했던 곳이라 기쁜 소식이었다. 무엇보다 서울에서 너무 많은 일에 치여 살던 남편에게 꼭 필요한 힐링을 줄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기에 다행이다 싶었다.

이처럼 제주 발령은 분명 좋은 소식이었지만 이와 동시에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물리적 거리 때문에 생활의 변화가 있을 수밖에 없었는데, 이 또한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이에 대해 이미 여러 차례 남편과 의논한 결과, 전학 가기를 거부한 딸아이의 의견을 존중하여 남편 혼자 내려가고 우리는 2주에 한 번씩 왔다 갔다 하면서 만나기로 이미 정해진 터였다.


"자기는 발령일 맞춰 내려가고 나는 아이 방학하면 내려가서 2주 있다 올라올게."

남편 혼자 이동하다 보니 이사라고 할 것도 없었다. 결혼 후 8번이나 이사(심지어 외국까지도, 지금까지는 10번 이사)했었고 대부분을 혼자서 했던 나에게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이다. 단출하게 책이랑 옷가지들, 침구류, 그 밖의 소소한 생활용품들만 부치면 되기에 택배 박스를 구입하고, 이것저것 포장해 넣고,  필요한 것 주문하고, 그렇게 뚝딱 남편 짐을 챙겨 놓았다. 그리고 우리 차를 탁송서비스-나도 처음 알았는데 집에서 제주까지 차를 옮겨주는 아주 편리한 방식이 있었다!- 업체에 넘겨주고 나니 이제 남은 일은 딸아이와 나의 2주간의 제주 여행을 위한 여행가방을 싸는 것뿐이었다.


마침 우리가 내려갈 즈음에 결혼기념일이 있어 미리 제주의 프렌치 레스토랑도 예약하고, 아이랑 갈 만한 곳, 맛집 등을 검색하며 설레는 시간을 보냈다.

남편을 한 발 앞서 제주로 보낸 그 다음주 목요일, 아이와 함께 제주행 비행기에 올랐는데, 예상치 못했던 변수가 발생하고 말았다. 앞날은 예측할 수 없다는 말이 적중한 것이다.


변수의 조짐은 제주도에 내린 지 30여 분도 안 되어 나타났다.

공항으로 마중 나온 아빠와 함께 사택 주차장에 내린 딸이 아파트 화단을 보더니 반색하며 한 말.

 "엄마! 아파트에 야자수가 있어!"


그때부터였을까? 딸아이의 제주 앓이는. 전학이라면 질색팔색을 하며 친구도 없고 싫다고 펄펄 뛰던 아이가 주변 초등학교를 구경 가보자고 하더니 운동장이 마음에 드네, 학교에도 야자수가 있네라고 중얼거리다가 급기야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폭탄급 발언을 투하하는게 아닌가.

 "엄마! 나 전학올래!"


아이고...머리야. 이럴 줄 알았으면 이사업체를 불러 편하게 이삿짐 보냈을 거 아니야. 전학 절차도 미리 밟았겠지! 하지만 이건 어른들의 문제였고, 폭탄은 이미 떨어졌다. 그럼 뒷수습을 해야지. 언제나 그렇듯 이 모든 것은 엄마의 몫인 법!


바로 학교로 전화를 걸어 몇 가지 문의를 한 후  그 길로 전입신고와 전학 신청서 제출을 마무리하고 후다닥 비행기표를 예약해 다음날 바로 다시 육지집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정말 이삿짐을 싸기 위해서. 우리 가족의  제주살이를 시작하기 위해서.


그리고 며칠 후 우체국 택배 기사님이 놀랄 만큼 엄청난 수량의 박스를 부친 후 딸아이와 다시 제주행 비행기에 올랐다. 편도로만 제주행 비행기표를 구입한 것은 처음이어서 살짝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것은 여행객이 아니라 도민이 되어 처음으로 타는 '집으로 가는' 비행기였다.


                             아파트에 우뚝 우뚝 흔하게 보이는 야자수. 정말 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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