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정도 예상했던 대로 남편이 제주도로 발령을 받았다.
본인이 희망했고, 가장 가고 싶어 했던 곳이라 기쁜 소식이었다. 무엇보다 서울에서 너무 많은 일에 치여 살던 남편에게 꼭 필요한 힐링을 줄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기에 다행이다 싶었다.
이처럼 제주 발령은 분명 좋은 소식이었지만 이와 동시에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물리적 거리 때문에 생활의 변화가 있을 수밖에 없었는데, 이 또한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이에 대해 이미 여러 차례 남편과 의논한 결과, 전학 가기를 거부한 딸아이의 의견을 존중하여 남편 혼자 내려가고 우리는 2주에 한 번씩 왔다 갔다 하면서 만나기로 이미 정해진 터였다.
"자기는 발령일 맞춰 내려가고 나는 아이 방학하면 내려가서 2주 있다 올라올게."
남편 혼자 이동하다 보니 이사라고 할 것도 없었다. 결혼 후 8번이나 이사(심지어 외국까지도, 지금까지는 10번 이사)했었고 대부분을 혼자서 했던 나에게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이다. 단출하게 책이랑 옷가지들, 침구류, 그 밖의 소소한 생활용품들만 부치면 되기에 택배 박스를 구입하고, 이것저것 포장해 넣고, 필요한 것 주문하고, 그렇게 뚝딱 남편 짐을 챙겨 놓았다. 그리고 우리 차를 탁송서비스-나도 처음 알았는데 집에서 제주까지 차를 옮겨주는 아주 편리한 방식이 있었다!- 업체에 넘겨주고 나니 이제 남은 일은 딸아이와 나의 2주간의 제주 여행을 위한 여행가방을 싸는 것뿐이었다.
마침 우리가 내려갈 즈음에 결혼기념일이 있어 미리 제주의 프렌치 레스토랑도 예약하고, 아이랑 갈 만한 곳, 맛집 등을 검색하며 설레는 시간을 보냈다.
남편을 한 발 앞서 제주로 보낸 그 다음주 목요일, 아이와 함께 제주행 비행기에 올랐는데, 예상치 못했던 변수가 발생하고 말았다. 앞날은 예측할 수 없다는 말이 적중한 것이다.
변수의 조짐은 제주도에 내린 지 30여 분도 안 되어 나타났다.
공항으로 마중 나온 아빠와 함께 사택 주차장에 내린 딸이 아파트 화단을 보더니 반색하며 한 말.
"엄마! 아파트에 야자수가 있어!"
그때부터였을까? 딸아이의 제주 앓이는. 전학이라면 질색팔색을 하며 친구도 없고 싫다고 펄펄 뛰던 아이가 주변 초등학교를 구경 가보자고 하더니 운동장이 마음에 드네, 학교에도 야자수가 있네라고 중얼거리다가 급기야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폭탄급 발언을 투하하는게 아닌가.
"엄마! 나 전학올래!"
아이고...머리야. 이럴 줄 알았으면 이사업체를 불러 편하게 이삿짐 보냈을 거 아니야. 전학 절차도 미리 밟았겠지! 하지만 이건 어른들의 문제였고, 폭탄은 이미 떨어졌다. 그럼 뒷수습을 해야지. 언제나 그렇듯 이 모든 것은 엄마의 몫인 법!
바로 학교로 전화를 걸어 몇 가지 문의를 한 후 그 길로 전입신고와 전학 신청서 제출을 마무리하고 후다닥 비행기표를 예약해 다음날 바로 다시 육지집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정말 이삿짐을 싸기 위해서. 우리 가족의 제주살이를 시작하기 위해서.
그리고 며칠 후 우체국 택배 기사님이 놀랄 만큼 엄청난 수량의 박스를 부친 후 딸아이와 다시 제주행 비행기에 올랐다. 편도로만 제주행 비행기표를 구입한 것은 처음이어서 살짝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것은 여행객이 아니라 도민이 되어 처음으로 타는 '집으로 가는' 비행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