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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랑 정원예술가 Jan 22. 2017

브람스의 사랑의 눈물

소설 - windsor의 아침 102 Evol 브람스 현악 6중주 2악장


브람스 현악 6중주 1번 2악장  "또 다른  문"

                           

차가운 물에 얼음을 가득 담아 들어와 책상 앞에 앉는다.

 벨이 울린다, 11시 40분 엄진우 교수다.   

뭔가 진행된 모양이다.

오늘은  좀 특별한 사람들에게 오전부터 전화가  날아든다.

C-City 문화 담당 책임자인 정해진에게서는  

한창 연비 체크를 하며 고속도로를 달리는 내게 "배고파요  밥 사주세요!" 

" 엥. 어디신데요? "

' 나는 이런 전화가 참 좋다'

돈이 없어   '오세요 라면에 두부김치 만들어 드릴게요'라고

 말할지언정 친근함을 밥으로 표현하며 벽을 허무는 사람들이 좋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나는 반대 방향으로 달리고 있어 아쉽다 했다,

그리고 참 나쁘다고 했다 " 딱 두 시간만 먼저 전화했어도  

맛있는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었을 텐데..

  어째 지금 미담재

코앞에서 전화시냐고요?" 했더니 "인연이 아니면 할 수 없지 ,  

지난번 

정원 담당 다녀갈 땐 맛난 원두커피도 주더니, 내겐 딴 데 있다고??"

"에고  , 우짤까요? 다 팽개 치고 달려갈까요?  일이고 뭐고?"

"에이 그럴 순 없지 인연이 아니라 생각하지 뭐..."

" 와 순 생떼네..."

"준비 잘하고 있죠?" 한 달 내로 슈팅할 거예요"

"예, 멋지게  준비하겠습니다  황홀할 만큼이요"

 "그래요, 지나만 다니지 말고 들러요"

"네 다음 주에 우리 작가분들 하고 내려가서 상세 구상 더 보완하겠습니다"

"네, 그래요  대전만 신경 쓰지 말고 우리도 좀 신경 써요...

아주 내려와서 살지?"

"정말요? 살게 해주심 내려가지요", 

"잘 구상해봐.."

그렇게  오전 전화를 마쳤는데  어찌 귀신같이 필이 통했는지 

 엄교수 전화가  칼같이 꽂혔다.

"오늘 우리  같이 작업하실 작가진들하고 임의로 논의 진행했습니다"

"화가, 영상 증강현실  쟁쟁한 사람들인데 우선 가장 기본으로 미담재에 

실제 모델하우스를 만드는 것에 

다 같이 의기투합했습니다"

 "와 얌샘 죽이네,

 멋지다 우리 멋지게 작품 만들어보자,  

끝내주게 보여 주 자고." " 이번에 여수 엑스포에 증강현실 만든 팀이에요. 

세계에서 처음으로 구현한 팀이에요"

"아이고 복덩어리   어째 그렇게 귀한 분을  이렇게... 모시다니"

" 바로 담주에 한번 모여서 논의하죠, 그리고 그 주 주말경 우리가 작품 만들려고

 하는 그 미술관에 가서  우리  방향 함께 제시해 보죠. 네 담주에 그래서 건축,

인테리어, 화가, 영상팀, 일단 다 상세 논의 들어갈게요.

 우리는 그동안 우리가 구상했던 것 스케치 드로잉 더 상세히 할게요"

네, 좀 바쁘게 움직이겠네요. 우리 지금 함께 있어요!!

엄교수의  목소리가 상기되어 있다. 

예술가  특유의 새로운 구상이 나왔을 때 

갖는  흥분, 열기, 희망, 열정 이런 것들이  전화를 타고 내게 진동되어 왔다.

  

불과 한 시간 전에 휴지 한통을 다 젹셔냈던 내 눈물에 살짝 희망의

바람을 불어 눈물을 말려주고 있었다.

 


이 세상에 없는 그를 있다고 믿고 싶었다.

 상실을 견뎌낼 방법이 내게 없었다. 

그래서 그를 지우고 싶었었다.

그런데 그는 불쑥불쑥 여기저기에서 내 앞에 살아났다. 

그가 그렇게 내 주변에 많은

흔적을 남겼다고 믿고 싶지 않았다. 

숨은 듯이 함께했던 시간들,  바람처럼 빠르게 흘러간 그와의 시간,

그는 마치 현실에 없는 듯이 보이기도 했었다, 

어디에도 있었지만, 어디에도 없는 듯 한  그.

 그런데 정작 그가 없는 지금 그는 오히려

더 많이 내 삶에 들어와 살고 있다. 

그래서 상처를 더 깊이깊이 각인시킨다.  

그래서  실존했던 그를 지우고 , 

현실이 아닌 가상의 세계에서 다시 그를 살게 하고 싶었다.

내 삶의 가장 가슴 에린 만추와 봄날의 한 때를 가득 채워 

내가 누구인지를 알게 하고, 내가 그토록 소중한 사람임을 알게 했던 그

그를 영원히 살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제 내 곁에 존재할 수 없던 그는 사라지고, 

내 곁에 영원히 존재하는 또 다른 그가 내게 다가온다. 

마치 처음  영원할 것처럼, 내게 다가왔던 그의 모습 그대로 

그는 내게 다시 태어나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


 22년 전 여름 우리는 영국 Warwick Share의 대학 캠퍼스 미루나무 아래

정지된 듯 차 안에  멈춰 있었다. 공항에서 나를 태워 

그가  교환 연구원으로 와 있는

 이 대학까지 오는 중에 시작된 브람스의 현악 6중주 

(Brahms: String Sextet No. 1 in B-flat Major. Op. 18.)가 1악장을 마치고 

마치, 새로운 세상의 장막을 열듯 

긴 인내와 그리움 끝에 만난 

 우리의 온몸을 휘감아  마비시키는 듯했다.


이 음악의 부제가 "사랑의 눈물"이라 했던가


애끓는 듯이 비올라로 시작하며  

속 깊은 울음을 끌어올리며 시작되어 

바이올린이 의외로 부드러운 손길의 남성처럼,

여인의 머리칼을 어루만지며 위로해 준다

여인은 무너져 가슴에 얼굴을 묻고 

다시 낮은 비올라로 가슴 깊은 그리움을 고백한다.

마치 "보고 싶었어요 너무너무"라고  신음하듯이 

다시 부드러운 손길과 음성으로 위로한다.

"다 알아요" 

"그래서 결국 우린 지금 우린 함께 있잖아요"


그렇게 잔잔히 그러나 격정적으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며 참아왔던 그리움을 노래처럼 토해내는 듯했다 


이어 바이올린과, 비올라가 함께 아름다운 이중창을 노래한다 

서로의 마음을 대신하여 뜨겁고 깊게 들어와 앉던 

 짙고 낮은 비올라로 시작되는 현악 6중주는 애절하게 바닥을 한번

치고는 이내 서로를 향한  따듯하고 부드러운 

애무와 같은 절절한 사랑의 노래를 풀어내었다.


우리는  마치 감전이라도 된 듯 그 음악이 대신해주는 우리들의 노래에  마비되었었다.


그렇게 우리가 애태우며 문을 닫아걸으려 했던 사랑의 

마음은,   논리적인 이성의 저항을 무너트리고 

다시는 빠져나올 수 없는 우리들의 

세계를 만들어 그  안에 우리를  밀어 넣고는

그것이 우리의  운명임을  온 감각을  타고 들며 예고했었다.



브람스의 사랑의 눈물 

2013. 11 미담재에서  소설 Windsor의 아침 - Evol102  브람스 현악 6중주 2악장

권영랑, 2017.01.22 고쳐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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