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론에 관하여
이런 점에서 모겐소와 키신저 둘 다 목적론적인 사고과정에 초점을 두고 있지만, 서로의 지향점의 정도가 다르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자유는 키신저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였다. 그는 결정론적 구조 내에서도 개인이 도덕적 선택의 자유를 거쳐 역사를 형성한다고 강조한다. 나아가 역사는 어떠한 궁극적인 가치나 목적 없는 (어쩌면 이 자체가 자유인) 끝없는 몸부림(a series of meaningless incidents)이라 여겼다 (Kissinger, 1950, pp. 6). 그리고 인간이 외면의 제약과 내면의 자유 사이의 역설 속에서 그 의미를 찾는 심오한 과정이라 믿었다[1].
그렇기에 키신저는 윤리적 기준이 공히 적용된다던 모겐소와 달리 윤리적 상대주의 입장을 피력한다. 가치와 목적은 각 개인과 그 특수한 문화에 따라 다변하기 때문이다. 인간사에는 일정 정도의 질서가 존재할지라도, 오직 제약을 벗어나게 할 ‘우연’과 제약을 벗어나고자 하는 ‘의지’만이 도덕평가 위에 존재한다.
다만, 윤리적 상대주의와 의지만이 도덕평가 위에 존재한다고 역설한 사실이, 키신저가 무제한적인 자유를 취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을 뜻하지 않았다. 그는 자유가 주는 초월성에 대해 긍정했지만,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대가로 불멸성(immortality)을 고집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Kissinger, 1950, pp. 347-8).
또한, 그는 다르기에 영원히 접점을 이룰 수 없다는 점을 얘기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다르기에 상호자제와 온건성을 보일 수 있다는 점을 피력한다.
키신저는 시간이 흘러 입장을 바꾸지만, 이러한 낙관적인 믿음과 현실적인 노력은 소련과의 제한적 핵무기 운용에서 반영된다. 그는 국내의 영역은 군사와 경제에, 외교의 영역에는 정치(이자 자율성)가 남아있을 여지를 남겨놓음으로써 위협을 “현명히” 조정할 수 있다고 제시한다. 그러기 위해는 도덕적 양심(moral conscience)이 필수적이라 덧붙인다[2][3] (Kissinger, 1956a, 1957b, 1958, 1959).
또한, 모겐소와 키신저 공통적으로 역량을 중요시 여겼지만, 서로가 추구한 역량의 정의는 상이했다. 모겐소는 역량을 도덕적 원칙과 실제적 필요 사이의 균형을 잡을 수 있는 것에 방점을 뒀다. 도덕적 원칙의 이탈은 통제되지 않은 권력추구로 직결돼, 이에 대한 경고가 가장 중요하다는 점으로 전개된다.
칸트를 안온한 이상주의자라 간주한 모겐소지만, 역설적이게도, 본인 또한 자신의 도덕원칙이라는 새장에 갇혀 세상을 향해 윤리적 기준을 고(告)한다. 이후, 모겐소는 베트남전 개입에 대한 자신의 비판과 이에 대한 반발을 소크라테스와 소피스트와의 관계에 비유시켜 자신의 행위에 대한 떳떳함과 역사가 가치판단을 행할 것이라 아리스토텔레스의 강연 초반에 묵시적으로 소명한다[4] (Morgenthau, 2004, pp. 20-3).
키신저의 경우, 균형을 창출할 수 있는 창의력과 시간의 흐름을 속 변화를 파악하고 평가하는 역량에 역점을 둔다[5]. 이 둘의 결합은 곧 한계를 인지할 수 있는 자제력으로 이어진다.
이 두 요소는 키신저에게 매우 중요했는데, 비록 이 역량을 부연하기 위해 균형을 이루기 위한 타점을 어디에 맞춰야 할지 제시하는 것이 추상적일지라도, 그 추상적인 사고를 요하는 사실 자체가 곧 외교를 과학이 아닌 예술(it what makes diplomacy an art and not a science)의 영역에 있음을 반증한다고 힘주어 강조한다 (Kissinger, 1959, pp. 544).
모겐소와 비교를 통해 좀 더 명확하게 말하자면, 그 아트의 영역에 대한 기준을 개인의 도덕윤리와 역량에 맞춰 국제관계를 바라보는 모겐소와 달리, 키신저는 역동적으로 변화는 상황 그 자체를 기민하게 파악할 수 있는 상상력을 활용해 국제관계를 톺아보기를 요구한다.
창의성과 시간에 대한 인지의 경중을 비교하기 어렵지만 키신저는 둘 중에서도 시간의 흐름을 특히 중요시 여겼다. 여기서의 시간의 흐름은 같은 강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듯 일시적이고 유한한 시간에 대한 인지를 의미한다. 이는 키신저가 메테르니히(그리고 케슬레이)와 비스마르크를 비교한 글에서 명시적으로 드러난다.
공통적으로 이들이 가졌던 자신의 한계를 인지하고 절제하는 능력을 매우 높이 샀다. 하지만, 우주를 거대한 시계 장치로 보는 18세기 개념에서 영감을 얻은 메테르니히는 일시적인 안정을 구축했지만, 메테르니히에게 있어서 정치적 및 사회적 개혁이라는 엇박자를 수용하지 못하는 질서를 유지하는데 필사적이었고, 유동적인 힘 그 자체가 정당성이라 제시한 비스마르크의 주장이 힘을 추구하는 그 자체가 중요하다는 식으로 곡해돼 그 한계를 드러냈다.
그렇기에 키신저는 지도자에 대한 의지(will of prince)를 고려한 점이 인상적일 뿐인 마키아벨리와, 자신만의 시간 속에 갇혀 정체되고 기민하지 못한 메테르니히를 자신과 동일시하는 세간의 평가에 대해 깊이 회의적이었다. 마찬가지로 망국으로 이끌고 권력 자체에 매몰된 비스마르크와 자신이 동일시 될 수도 없다고 여겼다.
관료주의와 긴장이 존재한 닉슨 행정부에서도, 독립성이 보장된 안전보장회의(National Security Council)에서 단독으로 활약한 안보보좌관(이자 국무장관)이었기에, 관료주의적이거나 권력지향적이라고 여겨지는 점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Fallaci, 1977, pp. 39-40; Kissinger, 1968, pp. 900, 909, 914).
부연하자면 키신저는 메테르니히와 달리 사고의 수용과 변화를 끊임없이 시도했다. 어쩌면 메테르니히를 반면교사로 삼고 싶었는건지도 모르겠다.
19세기 역사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음에도, 당대 화두였던 핵에 관한 책으로 대중에게 각인된 사실로도 반증될 수도 있다. 하지만, 제한된 핵전쟁을 전통적인 해군전쟁에 대한 비유와 헬리콥터를 통한 투발이 진행될 것이라는 기존의 가정에서, 스푸티니크(sputinik)라는 새로운 투발수단의 등장과 함께 자신의 사고과정을 끊임없이 수정해 나간다.
나아가 나토 회원국의 재래식 역량은 핵 방어가 마지막 수단이 될 만큼 충분히 강력해져야만 하며, 프랑스를 비롯한 개별국가들이 핵을 보유하는 것 대신, 나토 아래 정치적 응집력으로 단결해 연방체제(confederacy)로 발돋움함으로써 핵무기를 함께 통제해야 한다고 제시한다.
이러한 일련의 지점들은 그가 칸트의 영구평화론을 언제나 의식하고 있음을 제시한다 (Ferguson, 2015, pp. 371-3; Kissinger, 1960a, 1960b, pp.806, 1961, pp. 19).
[1]
그의 역사철학 관점은 박사 학위논문에서 발전되는데, 나폴레옹 이후 유럽질서에서 캐슬레이와 메네르니히와 같은 정치가들이 권력균형 정치라는 구조적 제약 속에서 어떻게 국가이익을 탐색하는지로 확장한다. 정치가의 과업은 시간을 통해서만 자발성(이자 자율성)을 얻을 수 있는 질서의 도덕적 토대를 창조하는 것이라 언급한다. 『회복된 세계』에서 구조적 제약은 질서로, 국가이익을 자유로 치환돼 기술되는데, 이는 키신저가 “나에게 자유라는 단어는 목표를 가리키는 것이었지, 한 번도 출발점을 의미한 적이 없었다. 출발점은 질서이며, 이것만이 자유를 만들 수 있다. 질서가 없는 자유의 호소란 특정 정당이 추구하는 특별한 목표에 지나지 않으며, 실제로 그것은 언제나 폭정으로 이어진다. 나 자신은 질서의 인간이므로 나의 노력은 기만적 자유가 아닌 실체적 자유를 성취하기 위한 것이었다… 나는 언제나 모든 종류의 전제정치는 유약함의 증상이라고 생각해 왔다. 전제정치는 스스로를 비난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특히 자유의 명분을 증진하기 위허서라는 가면을 쓰고 나타날 때 전제정치는 가장 참기 어려운 것이 된다.”라 기술한 메네르니히의 유서에서 가장 명시적으로 드러난다. (Kissinger, 2014, pp. 377-80).
- Kissinger, Henry A. 박용민 역. 2014. 『회복된 세계』 파주: 북앤피플
[2]
소련을 동등한 객체로 미뤄보는 점이 본인의 사고과정에서 피력됐을 수도 있다. 하지만, 넬슨 록펠러를 위시한 참모진(키신저 포함)들이 1955년 군사시설의 상호호혜적 항공정찰을 목적으로 한 항공자유화조약(Treaty on Open Skies)을 아이젠하워에게 전달해 제네바 정상회담(the Geneva summit)에서 발의시켜 투명성을 통한 심리연구 참여에서 비롯됐을 소지도 존재한다. 키신저는 해당 모임에서 분명하게 핵이 전면전이 아닌 상황에서도 사용될 수 있음을 기여했다. 나아가 이들은 키신저가 권력의 회랑으로 다가가게 만들어주는 또 하나의 촉매제였을 뿐만 아니라, 대규모전쟁으로 확장되지 않는 한, 핵무기가 소규모 전쟁에서 사용되면 세계는 더 행복해질(happier) 것이라는 합의를 공유했다. 기본적인 합의와 키신저의 상상력이 더해져 추후 키신저의 이름 아래 Nuclear Weapons and Foreign Policy로 출판된다 (Ferguson, 2015, pp. 355-57, 365).
- Ferguson, Neil. 2015. “Kissinger: 1923-1968: The Idealist,” London: Penguin Press
[3]
이런 점에 대해서 퍼거슨은 아이젠하워가 군사적 접근으로 대외관계를 풀어나가고자 한 것에 반해, 전면적 핵전쟁만은 막고자 키신저는 외교적으로 대외관계를 풀어나가고자 시도한다고 평가한다 (Ferguson, 2015, pp.362-4, 368-9)
- Ferguson, Neil. 2015. “Kissinger: 1923-1968: The Idealist,” London: Penguin Press
[4]
전반적인 강연의 내용과 동떨어지는 대화를 피력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 부분은 이후 펜타곤 당국자를 비롯한 월남전을 확전 시킨 자들에 대한 비판에 의해 강화된다 (Morgenthau, 2004, pp. 109-12).
- Morgenthau, Hans J. 2004. “Political Theory and International Relations: Hans J. Morgenthau on Aristotle’s The Politics,” edited by Anthony F Lang, Jr, Westport CT: Praeger Publishers.
[5]
내면의 창조성과 일시성 사이의 긴장은 키신저의 저작물들을 관통하는 주제다. 삶의 형이상학적 측면에 대한 키신저의 감지에 대한 그의 좋은 예는 오스트리아 지휘자 허버트 폰 카라얀(Herbert von Karajan)을 위한 만찬에서 “그의 예술은 시간 속에서 일해야만 하는 사람들에게 시간을 중지시키는 능력이다. 이는 모든 재능 중에서 가장 희귀한 것이다.”라 극찬한 그의 언급에서 엿볼 수 있다 (Dickson, 1985, p. 67 재인용)
- Dickson, Peter. 강성학 역. 1985. 『키신저博士와 歷史의意味』 서울: 박영사
<이 장에서 활용된 문헌>
- Fallaci, Oriana. 1977. “Interview with History,” Boston: Houghton Mifflin Harcourt.
- Ferguson, Neil. 2015. “Kissinger: 1923-1968: The Idealist,” London: Penguin Press
- Kissinger, Henry A. 1950. “The Meaning of History: Reflections on Spengler, Toynbee, and Kant,” Internet Archive, https://ia803000.us.archive.org/23/items/HenryAKissingerTheMeaningOfHistoryReflectionsOnSpenglerToynbeeAndKant/Henry%20A%20Kissinger%20-%20The%20Meaning%20of%20History_%20Reflections%20on%20Spengler%2C%20Toynbee%2C%20and%20Kant.pdf, (검색일: 2024년 12월 19일)
- Kissinger, Henry A. 1956a. “Reflections on American Diplomacy,” Foreign Affairs, 35(1), pp. 37–56.
- Kissinger, Henry A. 1956b. “Force and Diplomacy in the Nuclear Age,” Foreign Affairs, 34(3), pp. 349-366.
- Kissinger, Henry A. 1958. “Nuclear Testing and the Problem of Peace.” Foreign Affairs, 37(1), pp. 1–18.
- Kissinger, Henry A. 1959. “The Search for Stability,” Foreign Affairs, 37(4), pp. 537–560.
- Kissinger, Henry A. 1959. “The Search for Stability,” Foreign Affairs, 37(4), pp. 537–560.
- Kissinger, Henry A. 1960a. “Arms Control, Inspection and Surprise Attack,” Foreign Affairs, 38(4), pp. 557–75.
- Kissinger, Henry A. 1960b. “Limited War: Conventional or Nuclear? A Reappraisal,”Daedalus, 89(4), pp. 800–817.
- Kissinger, Henry A. 1961. “For an Atlantic Confederacy,” The Reporter, Feb. 2, pp.16-20
- Kissinger, Henry A. 1968. "The White Revolutionary: Reflections on Bismarck," Daedalus, 97(3), pp. 888-924.
- Morgenthau Hans J. 2004. “Political Theory and International Relations: Hans J. Morgenthau on Aristotle’s The Politics,” edited by Anthony F Lang, Jr, Westport CT: Praeger Publish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