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와 칸트, 모겐소와 키신저,그리고..VII

목적론에 관하여

by Belleatriz


결론

모겐소는 키신저가 사석에서 자신의 견해를 공유했음에도 상이한 발언을 대외적으로 피력한 점에 실망했지만, 이해했다. 키신저가 존슨 행정부의 정책에 대해 호의적인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면, 그가 넬슨 록펠러와 함께 1968년 파리에서 열린 베트남 평화 협정을 미국 대표로서 교섭하러 가지도 못했을 것이고, 닉슨행정부의 국가안보보좌관이 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Meaney, 2020 재인용).

물론 키신저가 입각했다는 사실이 정부를 향한 모겐소의 비판을 유화적으로 만들지는 않았다. 그는 월남전은 어디까지나 내전이며 존슨행정부가 제시한 도미노이론은 문학적 수사에 불과한데, 캄보디아에 폭격을 가하는 정부의 무능력이고, 이는 고질적인 문제임을 비판한다 (Rice, 2008 재인용).

그럼에도, 미소 사이의 이념적 경직성을 유화시킨 닉슨과 키신저에 대해 높이 산다. 봉쇄정책으로 소련을 제약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미국을 비롯한 서유럽 스스로를 제약하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우고, 위협에 대한 이해는 자연히 기회를 창출할 것이기 때문이다 (Morgenthau, 1971b).

시간이 흘러 모겐소는 어느새 권력과 정당성만을 지향하는 고전적 현실주의자로 치환된다. 미리엄(Charles E. Merriam)의 물리학 기반의 다원주의(pluralism) 혁명으로 모겐소의 주장과 투쟁은 실패한다 (Fox, 1975).

그가 기존에 원용한 주장을 묵시적으로 남긴 채 경제학 시장경제이론으로 국제관계를 연역한 월츠에 의해 신현실주의는 배태된다. 가히 신현실주의자들에게 모겐소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와 같은 처지에 있다고 비유할 수 있다.

월츠를 근간으로 계량주의 연구의 시야의 폭은 잘게 쪼개져 간다. 한편, 자유주의적 접근법의 대안으로 덕성을 원용한 모겐소의 주장은 아이러니하게도 혁명의 재혁명을 창출하기 위해 재활용된다. 웬트(Alexander Wendt)와 같은 구조주의 기반 구성주의자들은 초창기 모겐소가 주장한 내용을 재활용해[1], 물리학을 넘어 모든 것을 포섭하기 위한 양자역학의 세계로 뻗어나간다 (Wendt, 2015).

미리엄에게 투쟁이 실패하고 부활하는 것마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고 매장될 때, 그리고 빈 무덤을 발견하는 순간들 모두에 증인으로 등장하던 마리아 막달레나(Maria Magdala)가 연상될 따름이다.

칸트의 구부러진 목재(crooked timber)를 나름의 방식으로 시간 속에서 풀어내고자(또는 묶어내고자) 한 키신저와는 판이한 수사로 불리게 된다.

영구평화의 칸트와도 마찬가지다. 칸트와 키신저 둘 다 사람들과의 유쾌한 대화를 선호했다. 동시에 둘 다 꾸준한 저술 활동으로 역작들(magna opera)을 뽑아내지만, 후자는 자신에 대한 변명의 수사로 가득 찬 저술에 가깝다는 비평을 자신의 전기(傳記)에서마저도 비켜나가지 못한다 (Howard, 1994; Ryan, 2015). 키신저의 저작의 학술적 기여에 대한 논의도 분분하다.

국가안보보좌관의 자리로 가기 위해 끊임없는 물밑 작업이 진행됐다는 점, 그리고 입각 이후 남미 일대에 비밀리 쿠데타를 지원한 사실은 그의 악명을 더 부추기게 된다 (Hitchens, 2001).

동시에, 그에 대한 헌사도 드높아졌다. 중국의 문호개방과 함께, 석유파동을 거치면서 국제에너지기구(International Energy Agency)를 창설해 대서양관계를 재단장시킨 점은 이후 냉전 종식과 90년대 세계화라는 이름의 경제성장을 견인하게 된다 (Scott, 2004; Kissinger, 2009).

언제나 비극을 회피하기 위해 비극적으로 사고하기를 제언하던 그는 volte-face를 가진 피카소(Pablo Picasso)의 <우는 여인(Femme en pleurs)>처럼 비극 그 자체로 승화한다.

둘은 나름의 방식으로 국제관계 현안을 해결하고자 시도했다. 경보주의자(alarmist)로서 모겐소는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방식으로 꾸준히 읍소한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단번에 자르기를 바라는 것은 곧, 언감생심(焉敢生心) 하지 말라는 것과 동일하기 때문이다.

경보주의자(alarmist)로서 키신저는 대상이 사라지면 해소되는 공포(threat)와 실존의 조건에서 비롯되는 고유한 불안(angoisse)을 제한전(limited war)을 통해 언급한다. 시간과 창의성의 유한함에 언제나 천착한 그는 자유를 향해 날갯짓하는 다이달로스(Daedalus)가 되고자 노력한다.

어쩌면 지금이라는 상황 속에서 최선(最善)과 최대(最大)를 끌어내고자 어떻게 이들이 숙고하고,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어떤 기준으로 분별했으며, 때로는 자신의 과오에 사과하며 영혼을 세련하는 자세를 어떻게 가졌는지 아는 것이야말로 이들에게서 얻을 수 있는 함의가 아닐까?

『에우튀데모스』 속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분별에 관련된 일이라면 무엇이든 말하고 용기 있게 나서서 싸우며 공들이는 사람은 그게 누가 되었든 그 모든 사람을 아껴야 하기 때문이다 (Plato, 2019, pp. 111).






[1]

이 물질세계는 만유인력의 법칙에 따라 시간과 공간을 움직이며 인과법칙에 따라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사물로 이뤄졌다. 그러나 우주가 그처럼 합리적이고 계산이 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다. 사물은 그것을 구성하는 원자로 더욱 세분화됐다. 인력의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시간과 공간개념은 상대성이론에 의해 깨졌다. 양자이론에 따라 인과법칙은 통계적 확률로, 인과적 결정론은 불확정성의 원리에 의해 대체되었다. 과학주의 철학, 그리고 그것의 영향을 받은 19세기 정치사상과 사회과학이 모델로 삼는 물질세계는 이처럼 실체가 없는 유령에 불과한 것이다. 그것은 일종의 과학의 민속과 같은 것이 되어버렸다. 즉, 그것의 위상은 전통과, 지적 안도감 및 실질적 안전을 바라는 사람들 마음 덕분에 유지된 것이지 그것이 주장하는 명제의 내부적 가치 때문은 아닌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의 과학이 그와 같은 물질세계 모델을 포기한 지도 오래됐다. 근대 자연과학의 역사는 과학적 이론이 구성한 자연과 있는 그대로의 자연 사이에 갈수록 확대된 괴리의 역사가 다름 아니다 (Morgenthau, 2014. pp.180)

- Morgenthau, Han J. 2014. 김태현 역. 『과학적 인간과 권력정치』 파주:나남



<이 장에서 활용된 문헌>

- Fox, William T. R. 1975. “Pluralism, The Science of Politics, and the World System,” World Politics, 27(4), pp. 597-611.

- Hitchens, Christopher. 2001. “The Trial of Henry Kissinger,“ New York: Verso

- Howard, Michael. 1994. “The World According to Henry: From Metternich to Me.” Foreign Affairs, 73(3), pp. 132–40.

- Kissinger, Henry A. 2009. “The Future Role of the IEA,” henryakissinger, https://www.henryakissinger.com/speeches/the-future-role-of-the-iea/, (검색일: 2024년 6 월 22일)-

- Meaney, Thomas. 2020. “The Myth of Henry Kissinger,” The New Yorker, https://www.newyorker.com/magazine/2020/05/18/the-myth-of-henry-kissinger, (검색일: 2024년 12월 17일).

- Morgenthau, Hans J. 1971b. “Changes and Chances in American-Soviet Relations,” Foreign Affairs, https://www.foreignaffairs.com/articles/russian-federation/1971-04-01/changes-and-chances-american-soviet-relations, (검색일: 2024년 12월 18일)

- Plato. 김주일 역. 2019. 『에우튀데모스』 파주: 아카넷

- Rice, Daniel. 2008. “Reinhold Niebuhr and Hans Morgenthau: A Friendship with Contrasting Shades of Realism,” Journal of American Studies, 42(2), pp. 255-291

- Ryan, Alan. 2015. “Kissinger the Kantian idealist? Maybe,” The New Statesman, https://www.newstatesman.com/culture/2015/11/kissinger-kantian-idealist-maybe, (검색일: 2024년 12월 22일)

- Scott, Richard. 2004. “The History of the International Energy Agency - The First 20 Years: Origins and Structure Volume 1,” Paris: OECD Publishing

- Wendt, Alexander. 2015. “Quantum Mind and Social Science: Unifying Physical and Social Ontology,”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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