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와 칸트, 모겐소와 키신저,그리고..V

목적론에 관하여

by Belleatriz

물론 이러한 추론이 선험적일 수 있다. 이 시기까지 키신저는 “자기가 진정 누구인가를 누구에게도 말하지도, 알게 하지도 않을 것(I’m neither one nor the other. I won’t tell you what I am)”이라 인터뷰에서 밝혔을 뿐만 아니라, 이 당시의 그에 관한 전기적 연구들은 그를 권력에 집착한 인물로 그려내거나, 찬양심에 비롯한 면죄부를 쥐여줬다 (Fallaci, 1977, pp. 44; Kalb and Kalb, 1974, Mazlish, 1976).

한편, 키신저가 과거 현실주의에 도취(an excess of realism)는 오히려 미국의 국익에 해가 된다고도 가감 없이 제언한 점에서, 마냥 권력과 위협추구형의 현실주의자라 평할 수 없다. 그는 현재의 선택(what could be conceded)에 따른 불안정의 극복과, 미래(이자 시간)의 자유와 창의성(imagination)에 대해 숙고했다 (Kissinger, 1959, pp. 537-40; Ferguson, 2015, pp. 430-4).

그의 삶 속 중추적인 사건들 도처에 칸트(와 스피노자)에 대한 오마주와 『영구평화론(Perpetual Peace)』 발언이 흩뿌려져 있다는 점, 그리고 그의 사고과정이 학사 학위논문 『역사의 의미: 칸트, 슈펭글러, 토인비에 대한 성찰(The Meaning of History, Reflections on Spangler, Toynbee, and Kant)』에서 구축됐다는 점에서 바라봐야 그의 행적을 이해하고 알 수 있다 (Dickson, 1985; Kissinger, 1956a, 1957b, 1973).

무엇보다, 학부졸업 논문 속 역사를 바라보는 그의 사고방식은 이후 Center for International Affairs의 기금을 받아(under the auspices) 출판된 『선택의 필요성(Necessity for Choice)』 속 <Of Political Evolution: The West, Communism and the New Nations>에서 반사실적(counterfactual) 사고의 중요성으로 다시 논의되는 바, 그 시사성은 남다르다고 할 수 있다 (Ferguson, 2015, pp.450-3).

좌: 오스발트 슈펭글러, 우: 아놀드 토인비

키신저에게 문명의 역사는 슈펭글러처럼 문화적 결정론에 따라 죽음이 예정된 것으로도, 칸트처럼 도덕적 계몽을 향한 선형적 상승의 추상적 과정으로도, 토인비처럼 집단의 발전 패턴과 메커니즘에 초점을 둔 나머지 개인의 창의성과 도덕적 선택에 따른 책임의 중요성을 단순화시키지도 않았다.

한편, 그는 세 문필가가 강조하는 도전과 응전(challenge and response)이 발전의 원동력이라는 점에 동의한다. 나아가, 문명을 생명주기를 결정하는 ‘영혼’을 가진 유기체라 설명한 슈펭글러에게 비판적으로 찬성하고, 윤리적 행동이 역사에 의미를 부여한다는 칸트의 주장에 동조하며, 역사에는 반복적인 패턴이 있지만 성장의 기회도 동시에 있다는 토인비의 주장을 높이 산다 (Kissinger, 1950).

키신저는 세 문필가의 주장을 다음과 같이 종합한다. 1) 유기체와 같은 주기를 가진다는 접근은 곧 역사적 과정에서 인간이 불가피하게 할 수밖에 없는 행위의 한계를 규정짓게 해주고, 2) 역설적으로 목적론적 세계관이 고차원의 도덕적 질서를 희구하는 내면의 자유와 책임을 이끌어내며, 3) 개인의 창의성과 도덕적 선택에 따른 책임은 곧 경험적 분석이 아닌, 직관(intuition)이 중요하다는 논의로 확장된다.

따라서 문명 쇠락의 주요한 요인은 외부적 변화에 대한 대응실패가 아닌, 문화적 침체와 도덕적 부패와 같은 내부적 요인의 복잡성이 더 크게 작용함을 원용한다 [1]. 자연히, 역사는 패턴만을 이해하는 것을 넘어, 이를 목적을 가지고 찾아내는 과정임과 동시에, 악순환의 고리를 넘어설 수 있는 정치술(statesmanship)과 정치가(statesman)의 역할을 중요시한다 [2] (Kissinger, 1950, pp.323-9).

무엇보다, 거칠게 요약한 그의 학위논문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칸트의 목적론적 세계관과의 조우와 해후라 할 수 있다.

키신저는 칸트가 실체적 세계와 현상적 세계 사이의 구별에 좀 더 끈질기게 천착하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그가 여기기에 칸트는 모든 행위가 곧 평화세계를 향한 필연적 진보이자 절대적 명령의 표현이라 여긴 점에서, 자유를 도덕률과 필연성에 구속하는 것은 역사를 사람들 사이가 아닌, 외곽에 존재하는 어떤 것으로 치환시킨다고 보았다 [3] (Kissinger, 1950, 277-8, pp. 312-7).

키신저는 목적론적인 자세가 일련의 사건들을 의미 있는 과정의 연속으로 볼 수 있게 해주는 것에 동의한다. 하지만, 칸트가 자유를 기계적인 연속으로 전락시킨 점에서, 칸트의 자연주의 기반의 목적론적 세계관을 거부한다.

키신저는 칸트의 자유를 변용해 자유란 신과의 신비스러운 관계로부터 절대적 명령에 의해 의미가 주어지고, 한계의 직접적 직감으로부터 나오는 개인의 과업이라 여겼다 (Kissinger, 1950, pp. 320-1). 그렇기에 스스로 삶에 의미를 부여할 책임이 인간에게 부여되고, 형극의 길을 걸을지라도 자유를 경험하기에 계속 노력해야만 하는 당위가 배태된다.


[1]

이는 본래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 『회복된 세계(World Restored)』에 수록할 예정이었지만 포함시키지 못한 비스마르크에 대한 자신의 성찰을 통해 뒷받침될 수 있다. 그는 19세기 비스마르크의 독일은 생내적인 권위주의적 본성으로 인해 아첨꾼(courtier)과 로비스트(lobbyists)를 형성했지만, 국가와 국민의 미래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정치가(statesmen)는 배태하지 못했다고 평했다. 동시에, 비스마르크의 실각 이후, 그를 찬양하는 다수는 통일된 독일제국을 완수하기 위한 절제와 인내심은 망각한 채 과거의 향수에 도취해 책임없는 자유주의 속에서 쇼비니즘과 나치즘이 배태된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Kissinger, 1968).

- Kissinger, Henry A. 1968. "The White Revolutionary: Reflections on Bismarck," Daedalus, 97(3), pp. 888-924.


[2]

비극성을 인지한 채 시민들과 함께 걸어갈 수 있는 선각자와도 같은 정치가(statesman)에 대한 그의 염원은 박사학위를 취득한 이후에도 꾸준히 피력된다. 그는 영웅과도 같은 자질(heroic leadership)을 지닌 인물을 바랬고, 넬슨 록펠러는 그러한 인물로 보였다. 1960년 11월 당시 로드 퍼킨스(Rod Perkins)에게 말하듯, 본인이 넬슨 록펠러의 모든 대외정책 안건에 가장 먼저 토의하고 전담해 온 점에서, 넬슨의 1960년 포린폴리시 기고문 서문과 본문 IV에서도 그의 지문과 염원을 엿볼 수 있다 (Ferguson, 2015, pp.456-7; Kissinger, 1956b, 1957; Rockefeller, 1960, pp.370-1).

- Ferguson, Neil. 2015. “Kissinger: 1923-1968: The Idealist,” London: ‎Penguin Press

- Kissinger, Henry A. 1956b. “Force and Diplomacy in the Nuclear Age,” Foreign Affairs, 34(3), pp. 349-366.

- Kissinger, Henry A. 1957a. “Strategy and Organization,” Foreign Affairs, 35(3), pp. 379-394.

- Rockefeller, Nelson A. 1960. “Purpose and Policy.” Foreign Affairs, 38(3), pp. 370–90.


[3]

이는 분명 소싯적 수정의 밤(Kristallnacht)을 겪기 몇 달 전에 제3제국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사실과, 1944년 크레펠트(Krefeld)에 도하해 군복무하며 미국 시민권을 얻으면서 스스로를 “미국화 과정(Americanization Process)”을 겪었다고 술회하는 점에서 비롯된 양가적인 감정에서 기인했을 것이다 (Suri, 2008 재인용).

- Suri, Jeremi. 2008. “Henry Kissinger, the American Dream, and the Jewish Immigrant Experience in the Cold War Diplomatic History,” 32(5), pp. 719–747.



<이 장에서 활용된 문헌>

- Dickson, Peter. 강성학 역. 1985. 『키신저博士와 歷史의意味』 서울: 박영사

- Fallaci, Oriana. 1977. “Interview with History,” Boston: Houghton Mifflin Harcourt.

- Ferguson, Neil. 2015. “Kissinger: 1923-1968: The Idealist,” London: ‎Penguin Press

- Kalb, Marvin. And Kalb, Bernard. 1974. Kissinger, Boston: Little, Brown

- Kissinger, Henry A. 1950. “The Meaning of History: Reflections on Spengler, Toynbee, and Kant,” Internet Archive, https://ia803000.us.archive.org/23/items/HenryAKissingerTheMeaningOfHistoryReflectionsOnSpenglerToynbeeAndKant/Henry%20A%20Kissinger%20-%20The%20Meaning%20of%20History_%20Reflections%20on%20Spengler%2C%20Toynbee%2C%20and%20Kant.pdf, (검색일: 2024년 12월 19일)

- Kissinger, Henry A. 1959. “The Search for Stability,” Foreign Affairs, 37(4), pp. 537–560.

- Kissinger, Henry A. 1956a. “Reflections on American Diplomacy,” Foreign Affairs, 35(1), pp. 37–56.

- Kissinger, Henry A. 1956b. “Force and Diplomacy in the Nuclear Age,” Foreign Affairs, 34(3), pp. 349-366.

- Kissinger, Henry A. 1973. “Text of Secretary of State Kissinger's Address Before U.N. General Assembly,” The New York Times, https://www.nytimes.com/1973/09/25/archives/text-of-secretary-of-state-kissingers-address-before-un-general.html, (검색일: 2024년 12월 21일)

- Mazlish, Bruce. 1976. Kissinger: The European Mind in American Policy, New York: Basic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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