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론에 관하여
III. 아리스토텔레스와 모겐소, 그리고 칸트와 키신저: 목적론
모겐소가 소천(召天)한 지 3년 후인 1983년, 키신저는 미국국립외교정책협회(National Committee on American Foreign Policy)에서 한스 모겐소 상(Hans Morgenthau Memorial Award)을 수여받는다. 그날 연사자였던 그의 절친 아서 슐레진저(Arthur Schlesinger Jr)는 두 사람의 유사성과 차이점을 회고하며 지식인(intellectual)과 권위(authority)의 관계를 역설하며 미국에는 키신저와 모겐소 같은 인물 모두가 필요하다고 결론지었다.
다시말해, 역할에 필요한 모든 타협을 통해 정부 내부에서 일할 의향이 있는 자와, 자신의 청렴함(integrity)을 유지하고 권력에 진실을 말하기 위해 정부 밖에서 관조적으로 있을 수 있는 자가 필요하다고 언급한다 (Heilbrunn, 2020 재인용).
키신저와 모겐소는 3명의 미국 대통령이 연속적으로 치른 베트남 전쟁이라는 동일한 사건에 상반되는 입장을 제시한다.
공통적으로, 둘은 미국이 베트남에 너무 많은 개입을 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갈등에서 벗어날 방법을 모색했다. 미국의 힘의 한계와 국제 외교에 관련된 복잡성을 이해하려는 의지도 공유했다 (Look, 1966; Kissinger, 1980). 나아가, 정치가를 역사 속 행정장치라는 기계의 레버로 전락시킨 사회 결정론(scholarship of social determinism)에 반대했다. 일면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가 강조한 결정론과 인간행위(virtue ethics) 사이의 균형을 강조한 점과 궤를 같이한다.
공교롭게도, 둘은 역사의 정치적·역사적 맥락을 무시해서는 안되며, 과거의 행동은 그 당시의 정치적 현실과 조건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입장도 공유한다 (Bew, 2015; Kissinger, 1950, 1956b, 1957a; Morgenthau, 1969).
다만,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과 칸트를 통해 목적론적 의미를 되새긴 키신저와 달리, 모겐소는 아리스토텔레스 사상을 직접적으로 수용해 이론적으로 변용시켰다. 행동은 곧 다음 행동의 원인이기에, '선량한 이미지'만으로 정치일꾼을 고르는 것은 ‘선량한 일꾼’을 고르는 기준이 될 수 없었다 (Morgenthau, 2014, pp. 234-42). 그렇기에 베트남 전쟁의 확장적 개입은 미국의 국익과 무관하며, 그 유해함을 정부 안팎을 종횡무진하며 비판한다[1]. 개입에 성공하는 것, 그리고 새롭게 부상하는 국가 사이에서 일시적으로 명성을 잃는 것 사이에서, 전자의 상처뿐인 명예보다는 후자가 차악(次惡)의 선택지라 여겼고, 둘 사이의 균형을 추구하는 것은 최악의 선지라 판단했다(Goldstein, 2009; Morgenthau, 1965a, 1965b, 1967a, 1971a).
월남전에서의 ‘명예로운 승리’를 전제한 채 4단계의 철수를 역설하던 넬슨(과 키신저)과는 다르게 정부에 미국이 베트남과의 전쟁에서 패배했음을 시인하고 수용하기를 제언한다 (Morgenthau, 1967b, 1968).
모겐소는 도덕적 원칙과 객관이라는 것은 영원히 존재하지 않음과 동시에, 세 대통령 모두가 베트남에서 공산주의에 대한 저항을 미국이 중요한 관심사로 삼은 세계관에서 운영돼 부득불 참전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 대해 이해했다. 한편, 그는 어디까지나 어떤 정책이 국익에 맞고 다른 정책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설득력 있게 증명하는 것이 불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최소한 무엇이 대중의 이익에 도움이 되고 무엇이 도움이 되지 않는지에 대한 진실을 근사(approximate)할 수 있는 객관적인 기준은 있다고 가정한다 (Morgenthau, 2004, pp. 89-90, 100-1, 107). 한 가지 윤리적 기준이 정치적 행동과 사적 행동에 공히 적용되되, 그 도덕률을 지키고 지킬 수 있는 정도가 다를 뿐이라던 자신의 목적론적 입장을 고수한다.
키신저는 정치가에게 덕성을 고(告)하던 모겐소의 이러한 모습을 고르디우스 매듭을 단번에 자르기를 조언하던 알렉산더 대왕의 스승과도 같았다고 그의 추도식에서 애도를 표한다. 그와는 달리, 본인은 상이한 선택을 내렸다고 언급한다 (Kissinger, 1980). “정치인에 준하는” 키신저는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하나씩 풀어내고자 시도한다. 키신저는 모겐소와 마찬가지로 목적론적 사고에 근거했지만, 덕성과 능력을 강조한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 (Aristotelian) 보다 행동의 윤리적 가치를 행위자의 내면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본 칸트주의자(Kantian)였다[2].
가령, 키신저는 즉각적인 철수를 역설한 모겐소와 달리 점진적인 철수를 위해 더 적극적인 개입을 강조한다. 그는 월남전은 더 이상 베트남인들을 위해서 싸우는 것이 아닌, 국제적 안정성과 미국 스스로를 위해 싸우고 있다고 원용한다[3] (Fritchey, 1969 재인용).
오히려, 존슨 개인에 대한 날 선 비판을 가하지 않고, 존슨행정부의 반전(反戰)에 대한 편집증적인 반응을 염려해, 사상자가 증대하는 와중에도 존슨 대통령이 “고독하고 고된 결단” 내리고 있음에 애도했다 (Langguth, 2000 pp. 393). 형이상학적 주제를 넘어 피부에 와닿는 내용을 다룬 생애 첫 기고문에서, 그는 핵무기의 파괴력으로 인해 책임 있는 정치가(statesman) 가 쉬이 개전(開戰)할 가능성은 현격히 낮으며, 전쟁의 가장 큰 위험은 계산착오에 있을 것이라 우려했음에도, 역설적으로 1960년대의 전부 혹은 전무(all-or-nothing)와도 같은 계량관리자 맥나마라 국방장관의 정책으로 인해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기 때문이다 (Kissinger, 1955, McNamara, 2017).
다시말해, 키신저에게 존슨은 분명 과거의 선택이 미래의 가능성을 제약하는 풍경을 가로지르는 여행을 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개인과 정부가 취하는 일련의 행동에 따른 돌이킬 수 없는 역설에 빠졌음을 포착했을 것이다.
[1]
이는 주로 존슨행정부에 방점이 찍혔으며, 닉슨행정부가 출범한 이후에도 지속됐다
[2]
이는 키신저의 공식 전기담당 작가인 퍼거슨(Neil Ferguson)에 의해서도 교차검증된다. 그는 키신저가 철학적인 의미에서 이상주의자에 가까웠으며, 졸수(卒壽)의 나이를 넘어서도 칸트를 유념하며 집필활동을 해왔다고 언급한다 (Ferguson, 2015, pp. 29-30).
- Ferguson, Neil. 2015. “Kissinger: 1923-1968: The Idealist,” London: Penguin Press
[3]
역설적이게도 모겐소 또한 미-소 관계가 논란 없이 유지될 수 있던 이유는 어디까지나 미국이 인도차이나전쟁에 개입함으로써 국가적 우선순위가 역전됨과 동시에, 소련의 국익 우선순위가 국토 자원개발과 신(新) 무역로 개척에 주안점을 뒀기에 가능했다고 언급한다. 다만 미국이 그 개입을 끝맺고 정상적인 외교정책을 다시 수행하면, 다시 소련과 경쟁과 갈등에 처하게 될 우려를 표한다 (Morgenthau, 1971b).
- Morgenthau, Hans J. 1971b. “Changes and Chances in American-Soviet Relations,” Foreign Affairs, https://www.foreignaffairs.com/articles/russian-federation/1971-04-01/changes-and-chances-american-soviet-relations, (검색일: 2024년 12월 18일)
<이 장에서 활용된 문헌>
Bew, John. 2015. “The Kissinger Effect on Realpolitik,” War on Rocks, https://warontherocks.com/2015/12/the-kissinger-effect-on-realpolitik/, (검색일: 2024년 12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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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issinger, Henry A. 1950. “The Meaning of History: Reflections on Spengler, Toynbee, and Kant,” Internet Archive, https://ia803000.us.archive.org/23/items/HenryAKissingerTheMeaningOfHistoryReflectionsOnSpenglerToynbeeAndKant/Henry%20A%20Kissinger%20-%20The%20Meaning%20of%20History_%20Reflections%20on%20Spengler%2C%20Toynbee%2C%20and%20Kant.pdf, (검색일: 2024년 12월 19일)
- Kissinger, Henry A. 1955. “Military Policy and Defense of the “Grey Areas”,” Foreign Affairs, 33(3), pp. 416–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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