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론에 관하여
II. 아리스토텔레스와 모겐소: 도덕성과 실천지, 그리고 정치가
모겐소 본인이 읽은 글들 중 가장 영향력이 지대했던 10가지 책들 속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Politics)』을 꼽은 만큼, 아리스토텔레스의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라는 말이 불멸의 진리에 해당하며, 가치를 권력과 도덕성 사이에서 배태되는 비극성으로 치환해 사고하기를 제언한다 (Frei, 2001; Moregenthau, 2004, pp.16, 2014, pp. 278).
공교롭게도 모겐소의 이러한 이론적 접근은 오늘날 신현실주의자들에게 숨 쉬듯 당연한 무정부성과 주권 원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대표 저서 『국가 간의 정치(Politics among Nations)』에서 드러난다.
그는 국가 간 정치의 실천은 도덕성을 배제한 채 작동하거나, 특정한 맥락(국가주의적이거나 민족주의적)에서 윤리적 문제가 제시되며, 정당성과 권력을 조정(moderate)하고 평화를 추구하는데 유일한 방법으로 인내와 신중히 실천하는(prudent practice) 외교의 중요성을 제시한다 (Morgenthau, 1948a, pp. 267-9, pp. 419-45).
이 자체만으로도 어떠한 운동(phoras)과 흐름(rhous)에 관한 지각(noesis)에 대한 맥락 속에서의 실천지(phronesis)를 반증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니코마코스 윤리학(Nicomachean Ethics)』에서 역설한 맹신과도 같은 신념(crusading spirit)을 덜어낸 채, 극단으로 치우치지 않은 중용의 자세를 함축하기 때문이다 (Aristotle, 2018, 2권).
다만, 『국가 간의 정치』는 어디까지나 1943년 시카고 대학교에 정착한 직후 모겐소가 처음 영문으로 출판한 『과학적 인간과 권력정치(Scientific Man versus Power Politics)』에서 비롯된다 (Gary, 2008).
일찍이 그는 정당한 전쟁은 있어도 정당한 군대는 없듯, 정당한 외교정책은 있어도 정당한 외교관 없다는 말도 성립되기에, 윤리와 정치행동 사이의 괴리에 대해 언급하고, 인간사(史) 불가피하게 존재하는 불평등으로 인해 서로를 정치적 지배의 대상인 동시에 지배해야 함을 역설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telos) 론적 세계관[1]도 행동과 윤리 사이의 모호하고 상대적인 관계의 딜레마를 그 행동의 기원(즉 행위자의 의도)에서 찾거나 정치적 기술의 규칙을 따라 현명하게 행동해야 하는 방식으로 확장한다[2] (Morgenthau, 2004, pp.46, 2014, pp.236-7, pp. 232, 239-42).
즉, 현재를 구성하고 있는 환경(이자 자연)은 가장 이상적이면서도 현실적이고, 적절히 판단(및 정의)할 수 있는 중용을 여러 방면에서 지키기를 제언한다. 이는 상대편의 눈동자 속 눈부처를 통해 자신의 영혼과 지혜의 훌륭함을 스스로 돌아보길 제언하는 플라톤과 달리,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미 현실이 이데아이기에 동굴의 우상이 어떻게 직조되어 있는지를 톺아보기를 바라는 점과 닿아있다[3] (Aristotle, 2018, pp. 362; Plato, 2020, pp. 110-11).
요컨대, 『국가 간의 정치』를 비롯한 모겐소의 아리스토텔레스 강연들[4]은 어디까지나 첫 간행물이 출간된 시기의 저작들을, 경험적이고 연역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1]
행위의 제1원리, 즉 행위의 목적인(目的因)이 아닌 작용인(作用因)은 합리적 선택이며, 합리적 선택의 제1원리는 욕구와 목적지향적 이성이다. 그래서 합리적 선택은 지성과 사고뿐 아니라 어떤 마음가짐 없이는 불가능하다. 훌륭한 행위와 그에 반대되는 행위는 사고와 마음가짐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고 자체는 아무것도 움직이지 못하며, 목적지향적이고 실천적인 사고만이 움직인다. 그런 사고는 제작적 사고도 지배한다. 왜냐하면 제작하는 사람은 누구나 어떤 목적을 위해 제작하며, 제작된 것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상대적인 또는 특수한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행위는 그 자체가 목적이다. 훌륭한 행위는 하나의 목적이며 욕구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합리적 선택은 욕구에 관련된 지성이거나 사고에 관련된 욕구이다. 그리고 인간이 바로 그런 종류의 제1원리이다. 지난 일은 합리적 선택이 아니다. 이를테면 트로이아의 약탈자가 되기를 선택할 수는 없다. 누구나 지난 일이 아니라 미래의 가능성만을 숙고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미 일어난 일을 일어나기 이전 상태로 돌이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아가톤의 말은 옳다 (Aristotle, 2018, pp.219)
- Aristotle. 천병희 역. 2018. 『니코마코스 윤리학』 파주: 숲
[2]
덧붙이자면, 모겐소는 『국가 간의 정치』에서 해석의 소지가 다분해지는 권력이 도덕성을 배제한 채 작동하거나, 권력의 정당성을 조정하는 게 한정된 맥락에 의해 제약된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그는 제약이 없다고 말하지도, 그 제약이 모호한 것이라고도 언급하지 않았다. 오히려 도덕성이 쇠퇴하고 있음을 한탄했다 (Morgenthau, 1948b). 어디까지나 모겐소는 “어떤 사람의 정치적 행동이 그 개인으로서 행동과 다르다고 하여 그 스스로 서로 다른 도덕적 잣대로 행동하는 것은 아니다. 즉, 정치적 행동에 적용되는 도덕적 기준이 따로 있고 사적 행동에 적용되는 도덕률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한 가지 윤리적 기준이 두 가지 행동영역에 공히 적용된다. 다만 그 도덕률을 지키고 있는 정도, 그리고 지킬 수 있는 정도가 다를 뿐이다”라 피력한다 (Morgenthau, 2014, pp. 253). 그는 소피스트(Sophist)와는 다른 의미로 지적받는 상대주의자와 같다는 비판을 권력관계를 주어진 것으로 보지 않고, 그 역동성을 직시한 채 윤리가 존재함을 피력함으로써 이 비판을 배격하고자 한다 (Lang, 2007, pp.21, 48-9; 2014, pp. 252-57).
- Lang, Anthony Frank. 2007, “Morgenthau, agency, and Aristotle,” in Michael C. Williams (ed.) Realism reconsidered: The legacy of Hans Morgenthau in international relations,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 Morgenthau, Hans J. 2014. 김태현 역. 『과학적 인간과 권력정치』 파주:나남
[3]
이는 1970년대에 진행된 모겐소의 강연에서 명시적으로 드러난다. 그는 모든 사회탐구는 무의식적이거나 투박할지라도 철학적 전제(philosophic presupposition)을 명백히 지니고 있기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은 현대적 문제와 관련해서도, 오늘날의 정치문제에 대한 연구에서도 시사성이 남다르다고 피력한다. 나아가 그는 국가와 거리를 둔 채 아무 관계도 맺지 않고 자신과 같은 생각(like-minded)을 가진 집단에 파묻혀 지내는 사람을 자신에게만 관심을 갖는 바보(idiotes)라 평한다. 이기적이고 삶의 목표를 성취할 수 없는 이들은 국가에 실천적으로 참여하지 않기에 자신의 목적을 현현할 수 없음을 전제한다. 따라서 국가에 참여하는 것은 개인이 자신의 삶의 운명을 운명을 성취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전제조건임을 덧붙인다 (Lang, 2007, pp.24-29).
- Lang, Anthony Frank. 2007, “Morgenthau, agency, and Aristotle,” in Michael C. Williams (ed.) Realism reconsidered: The legacy of Hans Morgenthau in international relations,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4]
현재 확인할 수 있는 그의 저술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의 1948년, 국익에 대한 반추와 정치가에 대한 염원을 빈 1956년부터 1966년까지 매년 시카고 대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해 진행된 수업들, 그리고 닉슨의 중국방문이 진행된 1970년에서 1972년 동안 진행된 세미나가 있다. Lang이 동의하듯,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모겐소의 해석은 1948년 강연내용과 대동소이한 점에서 『과학적 인간과 권력정치』에 방점을 둔 채 모겐소의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함의를 읽어야 함을 시사한다 (Lang, 2007 pp. 11-14; Library of Congress, 2024)
- Lang, Anthony Frank. 2007, “Morgenthau, agency, and Aristotle,” in Michael C. Williams (ed.) Realism reconsidered: The legacy of Hans Morgenthau in international relations,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 Library of Congress, “Hans J. Morgenthau Papers: A Finding Aids to the Collection in the Library of Congress,” https://findingaids.loc.gov/exist_collections/ead3pdf/mss/2009/ms009291.pdf
<이 장에서 활용된 문헌>
- Aristotle. 천병희 역. 2018. 『니코마코스 윤리학』 파주: 숲
- Chambers, Gary. 2008. “Critical Perspectives on Hans Morgenthau’s Approach to International Relations,” Marmara Üniversitesi İktisadi Ve İdari Bilimler Dergisi, 25(2), pp. 933-944.
- Frei, Christoph. “Hans J. Morgenthau: An Intellectual Biography,” Louisiana: LSU Press.
- Morgenthau, Hans J. 1948a. “Politics Among Nations: The Struggle for Power and Peace,” New York: Alfred Knopf.
- Morgenthau, Hans J. 2004. “Political Theory and International Relations: Hans J. Morgenthau on Aristotle’s The Politics,” edited by Anthony F Lang, Jr, Westport CT: Praeger Publishers.
- Morgenthau, Hans J. 2014. 김태현 역. 『과학적 인간과 권력정치』 파주:나남
- Plato. 조우현 역. 2011.『국가』, 서울: 올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