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론에 관하여
닭이 먼저인가, 달걀이 먼저인가? 인과율에 대한 논의는 고대 그리스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되며, 아리스토텔레스는 "원(순환)에는 시작점이 없다(infinite sequence, with no true origin)"고 피력한다. 플루타르크도 세상의 시작점이 존재하는지에 대한 위대하고 막중한 질문(shook the great and weighty problem whether the world had a beginning)이라 언급한다.
국제관계학(School of International Relations)에 상기 논의를 한정할 경우, 인과관계 딜레마는 국가와 체제 사이의 선후관계와, 개인과 집단 사이의 논의로 치환될 수 있다.
한편, 신-현실주의자(neo-realism)는 오직 체제와 집단만을 바라보기(theoria)를 제언한다. 왈츠(Kenneth N. Waltz)부터 시작해, 길핀(Robert G. Gilpin)과 코헤인(Robert O. Keohane)이 꽃피우고, 왈트(Stephen M. Walt)와 미어샤이머(John J. Mearsheimer)가 만개시킨 신현실주의 역사는 바라본다(theoria)는 본래의 의미가 무색하게 어느새 체제와 집단이 아닌 것에 대한 변증법적 논의로 확장됐다.
체계(structure) 속 불균형성의 원인을 설명하기 위해 역설적이게도 다시 내부의 이야기를 끌어오게 되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간결성(parsimony)을 유지한 채 모든 것을 설명하려다가 그 어느 것도 설명하기 애매한 상태로 빠지고 있다.
이러한 비판점은 국력의 척도는 무엇인지 서결있는 답변을 제시하지 않은 왈츠부터 꾸준히 제기되어 왔고, 왈츠에게 빚진 학자들 또한 그 비판을 비껴갈 수 없다. 이들은 어느새 다양한 역학을 포섭하지 못하게 됐다.
구조만 바라봄으로써 얻을 수 있는 장점은 존재한다. 상기의 목적 아래, 국가를 크기의 정도를 달리하는 균질한 당구공으로 치환해, 국력에 따른 국가들 간의 체계와 관계를 파악할 수 있다.
다시말해, 국가를 곧 하나의 신체로 표현해 그 성립요건으로 각 계층의 조화(harmony)를 역설한 고전들(Classics)처럼, 해당 국적을 가진 행위자의 일련의 모든 행위는 곧 국가의 행위와도 같다는 간결성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이로써 미시경제학 속 시장이론을 끌어올 수 있게 된다.
한편, 경제학적 접근을 차용하게 되면, 각 외교 현장(field)에서 주요 행위자들의 영향력과, 이들이 가할 수 있는 변화가능성(이자 잠재성)에 대해 소홀히 하게 된다. 조화라는 이름으로 그 상태에 도달하는 과정을 순식간(alla prima)에 넘겨서는 안 된다.
구조가 모든 것을 설명해 주지는 않지만, 구조를 배제한 채 설명하기 힘든 부분이 존재하듯, 인적요소 간 불협화음이 모든 것을 설명해 주지는 않지만, 이를 배제하면 설명하기 힘든 제(諸) 공백은 산재해 있다. 앞선 논의를 확장하자면, 개인과 집단 사이의 균형과, 국가와 체제 사이의 균형을 잡으려는 시도는 꾸준히 진행됐다.
한편, 과학적 접근의 정치학자(political scientist)들은 합리적인 정치적 결정으로 인도하기 위해 지식과 사실을 축적해 왔다. 이들은 정치적 행위자가 실질적으로 필요한 요소들을 포착하는 데 실패했다.
정치적 행위자들이 실질적으로 필요한 것은 위기대처역량을 기를 지식과 용기(political virtue), 그리고 중용을 실천(combine)할 정치적 역량(political wisdom)은 필요하다.
본디 일국의 조화 이전에 발생하는 내부의 불협화음에 따른 파장은 국제적이고, 자연히, 그 파급력은 강성한 국가일수록 더 컸다. 모겐소(Hans J. Morgenthau)와 키신저(Henry A. Kissinger)를 비롯한 문필가들은 국외로 영향력을 투사할 수 있는 각자의 역할이 국가 내에 존재하고 그 비중은 상이할 수밖에 없음을 전제해 왔다.
하물며, 그 직(職)에 보임(補任)한 인물에 대한 비교와 대조를 통해 반추는 꾸준히 이뤄졌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법을 정체에 맞춰가되, 최선의 정치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자세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피력한다. 플루타르크도 로마와 고대 그리스 장군들을 대쌍적으로 비교하며, 그 시사점을 분석한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모겐소가 키신저의 지적 대부(god-father)라 간주한다. 나아가 키신저를 국제관계학의 알파이자 오메가인 것처럼 추앙한다. 분명 둘 사이에 공통점은 있지만, 판이한 지적기원에서 시작한다.
모겐소가 칸트(Immanuel Kant)를 권력의 현실에 외면한 이상주의자로 간주한 점과, 키신저가 역사철학에 대한 졸업논문을 완성하기 전 오직 니버(Reinhold Niebuhr)에 대해서만 잘 알고 영향을 받았다는 점, 그리고 입각(入閣) 후 칸트의 명령(imperative)을 늘 유념한 채 공직생활을 해온 점에서 입증되는 바와 같이, 지적 대부라는 주장은 그릇된 평가에 가깝다.
키신저가 분명 미디어를 잘 활용했고, 그 극적인 효과를 통해 남다른 위상과 입지를 다졌지만, 그 또한 큰 틀에서 미국 대외정책의 수행자이자 수혜자로 바라봐야만 한다.
본 논문은 제(諸) 공백을 설명하고자 시도한 모겐소가 아리스토텔레스를 어떻게 수용했는지에 대한 논의를 다룰 것이다. 또한, 그와 일견 유사한 논의를 피력한 키신저가 칸트를 어떻게 수용해 자신의 논의를 발전시키는지 톺아볼 것이다.
국가지도자(statesmen)를 희구했고, 목적론에 관해 모겐소는 아리스토텔레스를 통해 명시적이고 키신저는 칸트를 통해 묵시적으로 논의했음에도, 월남전 개입에 대한 상반된 논의를 제시한 점에서 이들에 대한 사상적 역사적 탐구는 그 시사점이 남다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