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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줄박이물돼지 Sep 19. 2020

사씨임장기 #2

세상에 집은 많다, 돈이 없을 뿐이다


사씨는 이사할 지역을 고르기 시작했다. 반포, 이촌, 대치... 누구나 가고 싶지만 사씨가 갈 수 없는 지역들의 이름이 눈에 밟혔다. 학군 정보를 검색하면 학력평가 상위 5%, 특목고 진학생의 수가 수십을 헤아리는 지역들. 그 지역들을 애써 외면하며 최종적으로 서울에서 남은 이름은 목동이었다.

목동(木洞). 나무가 많은 고을이라는 이름과는 달리 나무보다 자동차가 많은 곳. 30년이 넘는 아파트들이 아직은 요원한 재건축의 기대감을 품고 살아가는 곳. 지하주차장도 없고 역과 거리도 먼 아파트들이 많지만, 서울 서부에서 단 하나의 특급 학군이라는 입지로 부동산 시장의 강자로 군림하는 곳이다. 사씨는 목동의 7.8억짜리 20평 초반 아파트를 보며 고뇌에 빠졌다.

'비록 처음 생각했던 이사 목적은 보다 쾌적한 생활이었지만, 목동이라면 특급지는 못 되어도 준특급지는 될 텐데 이왕 옮길 것이라면 힘이 좀 들더라도 옮길 수 있는 가장 좋은 곳으로 가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사씨의 우둔한 머리로는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사씨는 본인보다 훌륭한 사촌동생을 만났다. 그로 말할 것 같으면 이립(而立)이 되기 전 경제적 자립을 이루어 덕국(德國)의 슈투트가르트에서 만든 말 그림있는 차를 타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는 평소 사치를 즐기지 않고 주로 김밥천국에서 끼니를 때우지만 처음 만나는 부동산 업자들에게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좋은 차를 탄다. 그런 그가 사씨에게 가로되,

"형님. 수원을 뜨시는 건 좋은 선택입니다. 앞으로는

서울 뿐입니다. 서울로 가십시오. 고생하시더라도 몸 테크가 답입니다."
"하지만 너의 형수가 좁은 집에 사는 것을 괴로워하니 어쩌면 좋으냐. 나야 회사에 오래 있으니 집이 좀 불편해도 견딜만하지만, 집에 하루 종일 있는 사람이 더 중요하지 않겠느냐."
"그렇다면 형수님 말씀을 들으십시오. 형수님의 만족이 최우선입니다. 하지만 만약 형수님을 설득하실 수 있다면 무조건 서울로 가시고 안된다면 최소한 분당이라도 가십시오."

부동산에 도가 튼 사촌동생도 돈 없는 사씨에게 답을 줄 수 없었다. 결국 선택의 문제였다. 사씨는 현재의 행복과 미래의 기대 자산을 바꿀 수 없었고, 빈곤한 현실에 선택권을 거세당한 자신을 원망했다. 목동의 학구열 높은 부모들에 치여가면서 발생할 교육 비용 부담을 덜었다고 안도하며, 나라와 원화의 미래를 애써 암울하게 예측하며 본인의 선택을 합리화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는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허공에 일갈했다.


이제부턴 주담대 풀로 땡겨서 딸라 자산 축적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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