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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이 Aug 31. 2021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몰라 줄, 루틴.

구구절절한 기록



8日






이 땅에서 네게 주어진 시간은 엄격하게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네가 그 시간을 활용해서 네 정신을 뒤덮고 있는 안개를 걷어내어 청명하게 하지 않는다면, 기회는 지나가 버리고 너 자신도 죽어 없어져서, 다시는 그런 기회가 네게 오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_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책장이 아니라 책상에 꽂혀있는 책들이 있다. 곁에 두고 언제든 빼어볼 수 있는 책들이다. <명상록>도 그중 하나이다.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고대 로마에 살았던 사람이 나에게 하는 말 치고는, 너무나 현대적이고 자명한 말들이어서 소름이 돋곤 한다. 시간의 유한함은 가혹한 섭리. 시간이 얼마나 주어진 줄을 모르게 해서 시간이 무한하다는 착각 속에 빠져 살게 한다. 그러다 이런 글을 마주하면, 머리가 쭈뼛 서면서 아무도 보지 않아도 저절로 자세를 바르게 한다. 어리석은 나를 위해 몇 권의 책을 꽂아둔 이유이다. 몇 장 읽고 나면, 기합이 들어가서 운용하는 시간의 분절을 더 세세하게 만든다. 1년에서 하루까지 몇 번을 쪼개고 하루의 시간도 세밀하게 계획한다. 계획을 지키는 것과 별개로 종종 이렇게 시간을 나누어 디자인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다.



로마의 현인과 함께 빠뜨리면 서운해할, 매일 3시 반에 일어나는 친구의 조언에 따라 기상 시간을 앞당긴 지 1년이 다 되어 간다. 정신을 뒤덮고 있는 안개를 걷어내기에 새벽시간이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오전 5시. 전날 너무 늦게 잠들지만 않는다면, 5시 2,3분 전에 저절로 눈이 떠진다. 내 몸에 시계가 들어있다. 일어나는 것만으로도 자신감이 일부 채워지는 새벽이 가진 힘을 이제는 안다. 그렇지만 다른 이에게 강요하지는 않는다. 내 몸의 시계처럼 그들이 품고 있을 시계를 존중하기도 하고, 이른 아침 수혜를 독점하고픈 욕심도 있다. 혼자 조용히 몸을 일으켜 방을 빠져나온다. 



절기로 처서가 지나면 해 뜨는 시각이 확연하게 늦어진다. 조명을 켜는 대신 손발의 감각에 집중한다. 손을 뻗어 벽을 가볍게 스르르-쓸면서 발바닥을 마루에 밀착하여 어둠 속에 걸음을 내딛는다. 흩어져있는 아이 장난감을 밟을 수도 있으니 딛는 발은 사뿐해야 한다. 몸에 묻은 밤의 잔여감을 걷어내고 감각을 일깨우기에 좋은 방법이다. 



1층에 주방 맞은편에, 집에서 가장 큰 창문이 있다. 창문을 열고 바깥공기를 소리가 나도록 크게 들이마신다. 스으으욱- 난데없이 찾아온 가을장마로 한동안 축축하기만 하고 늪에서 나는 퀴퀴한 냄새가 나더니, 슬슬 공기가 산뜻해지면서, 예리해진다. 만물이 응축되기 시작한다는 신호 이리라. 온도가 내려갈수록 저 마당에 심은 땅콩들이 그러하듯, 나도 씨앗을 품을 것이다. 생일이 있는 11월쯤에는 차기 연도 사업계획서를 작성하는 것처럼 내년에 뿌릴 씨앗들을 점검하고, 혼자 만의 새해를 맞이할 예정이다. 그러면 남들이 맞이하는 새해보다 조금은 여유가 생길 것이다. 



포트에 물을 가득 채우고 끓이는 동안, 화장실을 다녀온다. 깨끗한 손으로 오늘의 차를 하나 고른다. 비가 오는 날은 초콜릿향의 암차나 농익은 과일향의 청차를 집고, 아직 정신이 흐릿할 때는 쓴맛이 처음에 강하게 때리지만 뒤이어 단맛과 감칠맛으로 달래주는 라오만어 같은 보이 생차, 꽃처럼 여릿한 감성의 날에는 하얀 솜털이 윤기 나는 백차, 딱히 생각나는 차가 없는 때는 첫물 녹차라면 선택이 틀리지 않는다. 컴퍼스로 그린 듯 완만한 호를 그리며 개완으로 떨어지는 물줄기가 아름답다. 다구를 예열하고 차를 우리면서 마음을 다독인다. 오늘도 일어나느라 수고했다고 나에게 웃어준다. 잠시 공백의 숨을 만끽한다. 드라마 대사처럼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차와 함께하는 모든 날은 눈부시다.



우린 차를 들고 내려온 길을 거슬러 올라간다. 이때에는 잠도 다 깨고, 계단을 딛는 발에 활력마저 감돈다. 아이 놀이방 한편에 만들어둔 50cm 폭의 날씬한 자작나무 책상에 앉는다. 플래너에 오늘의 날짜를 적고 급한 일, 습관, 보다 먼 미래를 위해 해야 하는 일들을 적어 내린다. 많이 적을수록 부담이 생겨, 7개 이상은 적지 않는다. 멀티태스킹이 쉽지 않은 사람인 걸 알아차리는 데 35년쯤 걸렸다. 노래를 들으며 하는 공부가 가당찮은 일임을 진작에 알았으면, 학교 이름이 바뀌었을 수도 있다. 7개 이상을 적어봤자, 해내지도 못하고 x자를 그리며 괴로워할 테니 적당히 갈무리한다. 



다음에는 100가지 아로마가 들어있는 키트를 꺼낸다. 호흡을 세 번쯤 하며, 후각 상태를 다시 점검한다. 첫 번째 점검은 아까 창문을 열어 숨을 들이키며 마쳤다. 아로마를 무작위로 3가지씩 꺼내어 맡고, 예상하는 향기의 정체를 적고 답을 확인한다. 아직 3개 모두 맞추는 날은 없었다. 나아지겠지. 어릴 적부터 시각과 청각이 예민한 까닭에 후각이 뒤쳐졌었다. 후각 정보는 당시의 특정한 생각, 특정한 정서와 결합되는 특유의 방식으로 대뇌에 저장된다. 나의 경우는 시청각에 의존하다 보니 후각이 미쳐 따라오기 전에 사물과 상황 판단이 끝나버려서, 후각만 단독으로 기억과 맞물린 데이터가 부족하다. 태생적으로도 코가 약해 비염을 달고 살아서 마음껏 냄새를 맡아볼 절대적 시간도 부족했다. 차는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호식품이다. 차를 배우고, 가르치면서 느끼던 후각 콤플렉스를 타파하기 위해 아로마 키트로 트레이닝을 하고 있다. 후각은 쉽게 지치기 때문에 감각을 덜 사용한 아침 시간이 향을 카테고리로 분류하고, 프로파일을 익히기에 다른 시간대보다 유리하다.



루틴의 마지막은 글쓰기다. 선행하는 과정들을 하나씩 해나가면 어느새 글을 쓸 몸과 마음의 준비가 된다. 작가인 체하다 보면 어느 날은 그렇게 불릴 수도 있을까. 상상만 해도 가슴 벅찬 일이다. 커서가 꿈뻑이고, 오늘도 화면을 노려본다. 건식 사우나에 진득이 앉아있으면 숨이 조여들 듯하다가 마침내 첫 땀 한 방울이 솟아오르고 뒤이어 땀이 비 오듯 난다. 글도 끙-하고 앉아있다가 한 문장이 섬광처럼 화면에 나타나면, 그때부터는 생각만 하던 골조가 드러나며 흰 종이가 채워져 나간다. 그래서 안 써지는 날에도 끙-하고 엉덩이를 붙이고 있어야 한다. 오늘도 잘 앉아 있었다. 필력은 모르겠지만, 엉덩이력은 붙고 있는 게 확실하다. 어쨌든 오른편 어깨너머 창에 서광이 빛의 파편들을 쏟아내면 주름갓 단스탠드 조명도 끄고, 몰입은 무르익어간다. 





“엄마, 공부했어?”



이윽고 루틴의 대단원을 장식할 목소리가 등장한다. 몰입의 글쓰기가 한 시간이 될지, 두 시간이 될지는 아이의 기상 시간이 결정한다. 눈도 못 뜬 아이가 방문을 열고 우뚝 선다. 자기 놀이방인데 아침 시간에는 엄마의 영역 임을 아는지 방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문 간에 서있다. 나보다 자는 시간을 더 아까워하는 아이는 엄마와 빨리 하루를 시작하고 싶다. 노트북을 닫고 여전히 눈을 못 뜨는 아이를 뜨겁게 안아준다.



“잘 잤니, 좋은 꿈 꿨어?”


“응, 엄마 내려가자.”



아이의 목소리는 가장 아름다운 알람 소리가 아닐까.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몰라 줄 나만의 루틴을 마치고, 기꺼이 가족과 함께 하는 두 번째 아침을 시작한다. 



정신은 이미 청명하고 오늘의 기회는 잡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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