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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이 Sep 10. 2021

죽음이 모여드는 마을



16日






아침에 장의차를 보면 재수가 좋다는 말이 있다. 서울에 살면서보기가 어렵다 보니  밖에 장의차를 발견하면  다른 뜻밖의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하고 기대했. 그런데 지금의 집으로 이사를 오게 되면서 알게 되었다. 사람들이 두렵고 피하고 싶은 것은 수도에 없다.



나는 죽음이 모여드는 마을에 살고 있다. 거의 매일 아침 장의차 행렬을 만난다. 비상등을 켠 검정 리무진 한 대, 그 뒤에 대형 버스 한 대, 그리고 때에 따라 이어지는 몇몇 차들. 차선을 바꾸려다가도 장의차들이 오면 그 사이에 끼지 않기 위해 잠시 차선을 유지하며 차들이 지나가길 기다린다. 곁을 스쳐가는 버스의 창문을 통해 사람들을 살핀다. 차 안의 슬프고 엄숙한 분위기가 그들의 표정을 통해 전해진다. 나는 건강을 위해 요가를 하러 가는 길인데 그들은 죽음을 배웅하러 가고 있다. 나는 한국의 ‘바라나시’에 살고 있다.



인도의 바라나시는 내 배낭여행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도시 중 하나이다. 인도 여행자라면 아마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밤에 치러지는 화려한 뿌자 의식이나 물에 띄우는 꽃보다 기억에 남는 건 화장터였다. 여행자가 주로 찾는 마니까르니까 화장터를 지나 한참을 걸어가면 인적이 뜸해지는 곳에 또 다른 화장터가 있었다. 나는 유가족도 아니면서 오랫동안 의식을 지켜보았다. 타들어 가는 망인의 몸은 그 아래 쌓인 장작보다 더 활활 잘 타올랐다. 우는 사람 없이 무겁지 않은 분위기였다. 화장터 바로 옆에는 빨래하는 남자 둘이 있었고, 검붉은 사리를 걷어올리고 사금을 채취하는 여자들, 크리켓을 하는 꼬마들이 있었다. 장례에 치장된 꽃을 뜯어먹는 염소도 있었다. 묵묵히 자신의 일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죽음 곁에 삶. 둘은 분리될 수 없는 것을 잘 알기에 바라나시의 존재들은 죽음을 애써 붙잡지도, 밀어내지도 않았다.



장의차를 마주치더라도 기분 좋게 안녕할 수 있는 미신은 어쩌면 미신이 아닐 수도 있다. 마주친 죽음으로 오늘 하루를 더 감사한 마음으로 대하면 재수 좋은 일이 생길 가능성은 높아질테니까. 삶의 끝이 죽음 임을 안다면 지금 웃지 않을 이유가 없다. 나는 오늘도 내게 배달된 삶을 맞이하러 나간다. 곁을 지나는 죽음을 외면하지 않고. 메멘토 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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