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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이 Sep 24. 2021

명당



29日






-띵동



옆집 아주머니가 대추를 한 봉지 가져오셨다. 주시는 것만도 감사한데, 받는 이가 염려할까 봐 EM만 뿌려서 건강하게 키웠으니 걱정 말고 아이와 먹으라신다. 안 그래도 얼핏 보니 대추가 불긋하게 익어가길래 맛있겠다 군침을 흘리고 있었는데, 눈치채셨나. 대추는 올 추석에 차례상에 올려졌다.



동네에 아이가 귀한지라 아이 먹여보라고 어르신들이 간간히 직접 재배한 과일이나 채소, 음식 등을 싸다 주신다. 어린이날에는 화단의 하얀 목단꽃을 꺾어 꽃다발도 만들어 주셨다. 꽃 중의 왕이라고 불리는 목단처럼 크고 중요한 사람이 되라는 덕담과 함께. 아이 하나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아이는 복에 겨웁게 마을 어른들에게 축복의 선물을 받으며 자라고 있다.



어떤 날은 현관문을 열면 쇼핑백이 놓여있기도 한다. 들여다보면 역시나 감자, 호박  집에서 키운 듯한 채소들이 한가득이다. 생김새는 제멋대로지만 요리를 해보면 맛이 그만이다. 처음에는 누가 말없이 두고  쇼핑백을  안에 들여놓기만 하고 꺼내지도 못하고 일주일을 흘러 보냈다. 고마운 마음과 걱정되는 마음이 교차했다. 서울에 인정 없는 사람만 사는  아니지만, 서울에 나고 자라며 이웃끼리 바라는  없이 주고받는데 익숙하지 않았다. 그래서 누군가의 호의를 어떤 다른 의도가 있지는 않는지 경계부터 했었다. 이제는 익숙해져서 cctv 확인해  시간에 감사의 시간을 갖는다.



어느 날 옆 집 할머니와 길에 서서 수다를 떨다가 ‘명당’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내가 여기 처음 들어올 때, 동네 할머니들이 얘기하는 걸 들었잖아요. 여기 안에 그 회사 별장 말이야. 거기 짓기 전에 유명한 지관들이 엄청 왔었대요. 풍수지리를 본다고.”

“그래서요?”

“그래서는, 아주 명당자리라고 했으니까 별장을 지었지요.”



명당이라는 말이 나오자, 잠시 속물적 근성이 끓어올라 기분이 좋았다. 명당. 이상적 환경으로서의 길지를 일컫는 말. 명당자리에 집이나 묏자리를 잡으면 복이 온다고 한다. 이 마을은 옛날부터 왕족들의 무덤이 많은 지역으로 꼽히는 서울의 서북 쪽에  자리하고 있다. 풍수지리적으로 묏자리와 집터에 적합한 땅이 따로 있는지는 몰라도, 그나마 들어본 배산임수의 환경은 갖추고 있다. 북한산, 개명산, 노고산이 철갑을 두른 듯 보호를 하고 있는 격이다.



그렇지만 현대적인 상하수도, 건축물, 개인 교통수단을 다 갖춘 집에게 있어서 명당은 어떤 자리일까. 바로 좋은 이웃들이 있는 곳 아닐까. 바라는 것 없이 내가 땀 흘려 키운 채소를 나눠주는 사람들이 사는 동네가 명당이다. 당신의 딸보다도 어린 나에게 존대를 하는 할머니 같은 분이 사는 옆집이라서 우리 집은 명당이다. 사람에 대한 신뢰와 기대를 빛나게 하는, 흔하지 않은 밝은 자리明堂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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