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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이 Sep 29. 2021

책탐



34日






택배로  7권이 도착했다. 먹지 않아도 배부른 느낌이다.  읽으려면 하세월이 걸리겠지만 그게  대수인가. 생각났을  바로 꺼내볼  있는 책이 주는 기쁨은 키보드로 두들겨 찾는 정보에 비할 바가 아니다. 이사를 오면서 책장을 줄이고  공간에 맞추어 책을 소유하기로 결심했었다. 가뜩이나 연초에 마음먹는 다이어트처럼 어려운 결심이었는데 코로나까지 오고 나니 도서관도 가기 어렵고, 자꾸만 사모으게 된다. 2년이 넘으니 슬슬 난감하다.  



살면서 질리지 않고 여태껏 탐하는 것이 있다면 차와 책이다. 탐하는 역사로 치자면 책이 훨씬 길다. 외로움을 빨리 깨우치는 것은 외동의 숙명. 책은 그 숙명을 달래는 몇 안 되는 선택지의 하나였다. 책탐이 생긴 건 복도식 아파트에 살던 초등학교 5학년 때이다. 어둠이 깔린 11층 복도의 끝 집. 부모님이 올 시간이 아닌데도 종종 복도로 나있는 간유리 창문 밖이 어른어른대었다. 붉기도 하고 검기도 한 물결이 낯선 이의 그림자인가 싶어 나는 얼른 이불속으로 들어가 책을 읽었다. 사촌언니가 물려준 어린이 세계 명작 시리즈 중 한 권이었다. 이불 곁에는 50여 권에 달하는 김영숙의 만화 <갈채> 시리즈를 쌓아두었다. 읽던 책이 지루해지면 혼자 있다는 현실 자각 시간이 온다. 그 시간에 여지를 주지 않으려고 재빨리 만화책으로 바꿔 읽었다. 혼자 창가에 서서 밖을 내다보면 빨간 십자가와 어지러운 네온사인이 다였지만, 책으로 들어가면 시간과 공간이 무한히 확장된 세상을, 사람들을 만날 수가 있었다. 내 몸을 중심으로 어지럽게 들쭉날쭉 둘러 쌓여있는 책들은 나를 지켜주는 성이었고, 병정들이었다. 책의 결계 안에서 나는 편안함을 느꼈다.



책을 붙잡고 있던 또 다른 이유는 답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부모님에게도 필요한 지혜를 묻지 않았다. 묻지 못했다는 편이 맞으려나. 똑똑한 아이라고 불렸지만 지식이 아닌 지혜를 구하는 일은 왠지 겸연쩍었다. 언니, 오빠, 누나, 형이 있는 친구들보다 세태를 파악하는 일이 더딘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아주 본질적인 질문들이 궁금했다. 왜 나는 혼자인지, 가족이란 어떤 의미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같은 질문들. 그런 것들을 입으로 물으려면 데면데면한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책을 들었다. 어떤 책에서 답을 찾을 수 있는지도 모른 채 미련하게 이 책 저 책에 기웃거렸다. 하루하루가 더해지니 욕심을 내는 것이 자존심 같아졌다.



책은 여전히 나의 병정들이다. 만 오천 원으로 든든한 경비업체 서비스를 받는 듯한 위안을 얻는다. 책은 나의 죽비이다. 우둔한 나에게 지혜를 에둘러 전하지 않고, 섬광처럼 내리친다. 이런 책들을 어떻게 안 살 수가 있지?



도착한 책들에 구입한 날짜를 쓰고 책장에 꽂아두었다. 곧 만석이 될 것 같다. 책을 소유하는 것이 그만큼의 지식을 소유하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알기에, 결심한 대로 정해진 공간에 맞춰 걷어 낼 책을 선별해보려고 한다. 책탐과 선별은 식탐과 다이어트처럼 채우고 비우는 것을 반복하는 평생의 숙제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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