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에도 할로윈에 진심일 때

랜선 할로윈을 즐기기로 해

by 청두유

우리는 할로윈과 크리스마스만을 바라보며 하반기 반년을 사는 사람들인데 이게 말이 되냐며 친구와 분노를 토해냈다. 코로나 시대에 할로윈은 확진자 수를 급상승시킬 가능성이 다분한 위험한 존재였다. 한국에서도 이번 할로윈에는 이태원이며 홍대에 모이지 말아 달라고 권고하고 있었고, 영국에서도 최대한 집에서 즐길 것을 권장하고 있었다. 영국까지 왔는데 할로윈을 즐길 수 없다니. 준비한 코스튬을 입고 거리를 누비며 Bar 투어를 할 수 없다면 이번 할로윈은 그냥 조용히 넘어가야 하나 고민했다.


학교에서 주최한 온라인 화상 모임에서 영국에서 방역이 잘 되지 않는 이유와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에서 비교적 방역이 잘 된 이유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한국에 다녀온 적이 있다는 학생이 말하길, 영국은 파티 문화가 보편적이라서 다 같이 모여서 노는 것을 포기하기가 힘들지만 한국 포함 아시아 사람들은 다 같이 모여서 노는 파티 문화에 익숙하지 않아서 방역 수칙을 지키기 더 쉬웠을 것이라고 했다.


어디서부터 바로 잡아줘야 할지 막막한 일반화의 오류 이자 무지에서 비롯된 발언이었다. 속으로 생각했다.

‘한국인을 잘 모르는 구만? 우리가 얼마나 모여서 재밌게 노는지. 왜 세계적인 가수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그렇게들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지.’


우리 민족은 두 가지 히읗으로 살아가는 민족이다. “한”과 “흥”. 그 두 가지가 합쳐져 수없이 많은 해학과 풍자, 골계미가 탄생한다. 요즘 윤여정 선생님의 오스카 수상 이후 K-할머니 신드롬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링크). 연기력은 기본이요, 우리가 사랑할 수밖에 없는 그분의 위트는 많은 세월 쌓인 한이 소화되면서 흥으로 잔잔하게 뿜어져 나오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한이 있어서, 울분이 있어서 더 열심히 놀아야 된다는 사명감을 갖고 자리만 있으면 흥을 표출하는 민족 이건만, 도도하고 콧대 높은(snobbish) 영국 사람들이 우리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좋다. 우리의 흥을 보여줄 때가 온 것이다.


실상 보는 이 하나 없지만 그래도 마음으로나마 질 수 없으니 이번 할로윈도 열심히 즐겨 보기로 했다.

일단 학교에서 호박을 받아왔어요. 코로나라서 만들기 키트를 자주 나눠주더라고요.


기분을 낼 할로윈 코스튬, 흥을 나눌 친구, 그리고 호박으로 만든 맛있는 음식. 이렇게 삼박자가 맞으면 충분했다.

갈 데는 없지만 보여줄 사람, 바로 내가 있으니 의상 준비는 가장 중요한 미션이었다. 아마존을 둘러보며 싸지만 맘에 들면서 가장 빨리 배송되는 옷을 찾았다. 고양이 얼굴에 꼬리까지 달린 동물 잠옷으로, 잠옷이지만 입고 나가도 전혀 위화감이 없을 정도로 잘 만들어진 옷이었다.

지금 보니 입고 나가기에 위화감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리고 시간대가 맞는 친구들과 할로윈 줌 미팅을 잡았다. 드레스코드는 없지만 호박을 활용한 음식은 필수였다. 평소 눈여겨보던 비건 음식점에서 할로윈 파티 세트를 2세트 주문했고, 도넛 가게에서 할로윈 도넛 세트도 주문했다. 파티 세트 하나당 3~4인분이라 하나만 사도 충분히 많은 양이었지만 왠지 두 종류 중 무엇 하나 포기할 수가 없었다. 사람은 한 명이지만 음식만큼은 여러 명이 같이 노는 것처럼 충분하게 준비하겠다고 합리화를 해버렸다.

주문한 호박 세트 중 하나..:) 그리고 직접 만든 호박 쿠키(사실 맛없었어요)
할로윈 컬렉션 비건 도넛이에요:) 고양이때문에 샀다..

학교에서 받아온 호박으로 잭 오 랜턴도 만들어 촛불을 켰다. 할로윈을 즐길 모든 준비가 끝났다.

줌으로 친구들을 만나 서로 준비한 음식을 소개하고 오랫동안 나누지 못한 근황 토크와 잡다한 수다를 떨었다. 할로윈에 듣는 음악은 무엇일지 잠시 고민했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우리를 흥겹게 하는 건 무조건 90년대, ‘00년대 음악, 일명 “토토가”와 함께 할로윈을 보냈다.


창 밖으로 저마다의 코스튬을 입고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과 클럽 앞에 길게 늘어선 줄이 보이고, 이미 거나하게 취한 사람들의 고성이 들렸다. 코로나였다. 그들은 할로윈에 진심이었나 보다.



답답함, 뛰쳐나가고 싶음, 마음을 달래 보려 뭘 해도 진짜 하고 싶은 건 할 수 없다는 불만족. 예상보다 훨씬 길어진 코로나로 인한 부정적인 마음들이 모여서 “에라, 모르겠다.”라는 행동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 곳에 오기 전 7,000명의 학생들이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아서 자가 격리 중이라는 기사를 읽으며, 왜 다들 조심해주지 않는지 야속하기도 했다.


누군가는 여태까지 계속 잘 지켰지만 코로나가 종식되기는커녕 계속 퍼지기만 했으니 이제는 못 참겠다고 말할 수도 있다. 가끔은 그 말이 이해가 된 나머지 마음에 콕 박혀서 떠나지 않기도 한다. 하지만 설령 그게 사실일지라도 그렇게 하나둘씩 수칙을 어긴 행동들이 모여서 서로를 배려하며 이 위기를 잘 헤쳐나가고 있다는 믿음에 조금씩 금이 가게 만든다. 순간의 즐거움으로 인해 무너져 버린 신뢰 속에서 우리는 이 지리한 싸움을 더 오래 계속하게 될지도 모른다.


할로윈은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할 때 더 흥이 나고 즐겁다. 그 사실을 무시할 순 없다. 이태원 거리에서 통통 튀는 아이디어로 중무장한 코스튬을 구경하는 즐거움, 친구들과 한껏 멋 부린 채로 보내는 소중한 시간들. 그 자리에 함께 있다는 이유로 모두 동지가 되어 낯선 이에게도 서로 밝게 인사를 건네고 미소를 주고받는 그 에너지가 좋아서 매년 그날을 기다리곤 했다.


지금은 다른 행복을 발견해보는 시기이다.

이번 랜선 할로윈에는 많은 사람들과 서로 조금씩 즐거움과 유쾌함을 나누는 대신, 가까운 친구들과 농도 깊은 행복함과 소중함을 나누었다.

올해도 우리는 할로윈에 진심이었다.

직접 만든 잭 오 랜턴:) 작품명: 검은고양이가 되고 싶었던 호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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