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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두유 May 18. 2021

락다운에도 조깅과 산책은 허용되는 나라

3개월 락다운 체험 수기


해외여행을 못 가는 1년을 상상할 수 없었던 한국 친구들에게 나는 부러운 존재다. 거리만 걸어도, 까페에서 커피만 마셔도 그곳은 영국이니 행복하지 않느냐고 눈을 반짝이며 묻곤 한다. 외국에서 공부하는 유학생답게 기숙사에서 각국의 친구들과 요리를 해 먹고, 여기저기 놀러 다니는 무용담을 기대한다.


기대에 부응하고 싶었지만 영국은 지난 3개월 하고 일주일 동안 락다운이었다. 뭐하면서 지내냐는 물음에 늘 그냥 방에서 수업 들으면서 지낸다고 대답했다. 11월 중순에 시작된 2차 락다운은 12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잠시 해제되었다. 크리스마스와 새해는 대목이기 때문에 이 시기까지 락다운을 하면 경제적으로 타격이 클 것이고, 크리스마스는 그 나름의 의미가 크기 때문에 잠시라도 갑갑함에서 벗어나 서로 교류할 이벤트가 필요하다는 판단이었던 것 같다.


들뜬 마음으로 크리스마스에 무엇을, 새해에는 또 무엇을 할지 고민했다. 크리스마스에는 트리를 장식하고 플랫 메이트들과 요리를 만들어서 다 같이 먹자는 계획을 세웠다. 오랜만에 문을 연 빈티지샵에서 어글리 스웨터와 털모자까지 사고 나니 벌써 크리스마스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락다운이 잠시 해제된 것이 아니라 아예 종료된 줄 알았다. 크리스마스가 갔으니 새해를 맞이할 생각으로 떡국 레시피를 검색하다가 락다운이 다시 시작될 거라는 소문을 들었다. 이렇게 줬다 바로 뺏는 일은 세상에 없다. 미처 교류의 따뜻한 온기와 활기를 느끼기도 전에 물고 있던 사탕을 뺏긴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혹시나…’하는 마음은 언제나 ‘역시나…’라는 마음을 만난다. 새해가 지나자마자 신문 기사가 떴다. 내일부터 락다운이 시작될 것이라고. 그렇게 1월 초부터 4월 중순까지 우리는 예상치 못한 긴 락다운을 겪었다.



락다운에는 다른 도시로 이동할 수 없고 식당이나 까페에서 음식을 먹거나 커피를 마실 수 없었다. 필수 용품을 판매하는 매장 외에 다른 매장들은 문을 닫아야만 했다. 배달이나 테이크아웃 서비스를 운영하는 식당들도 많지만 규모가 작은 가게들은 아예 휴업을 하기도 했다.


주말 저녁 장 보러 시내에 나갈 때면 음산한 기운마저 들었다. 주말인데 이렇게 사람이 없을 수 있을까 싶은데 조금만 생각해보면 사람이 없는 게 당연했다. 바람이 많이 불고 습하게 추운 영국은 한국보다 기온이 높아도 훨씬 춥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 커피를 테이크아웃해서 광장이나 벤치에 앉아서 수다를 떨 수도 있겠지만 이 추운 날씨에 밖에 앉아서 오래 이야기하다가는 코로나가 아니라 감기 때문에 호되게 고생을 할게 뻔했다. 법을 지키면서 놀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그저 집에 갈 수밖에.


물론 어디든 방역 수칙을 준수하는 사람들이 있는 만큼 기어코 법을 어기는 사람들도 있다. 특히 20대 혈기왕성한 대학생들의 열정은 코로나도 막을 수 없었다. 술집이 문 닫으면 집에서 마시면 된다는 생각으로 매주 금요일마다 시끄럽게 파티를 여는 사람들로 인해 기숙사는 늘 시끄럽고 민원 폭발이었다.



많은 활동들이 제한되는 락다운 시기에 가능한 외출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조깅과 산책이다. COVID-19 관련 규정을 보면 기본적으로 가족끼리도 실내에서 모여선 안된다. 하지만 예외적으로 동행인 한 명과 공원에서 조깅 및 산책을 할 수 있다. 독일은 락다운 시기에도 하루에 한 번 강아지 산책을 위한 외출은 허용한다는 기사를 한국에서 본 적이 있다. 코로나가 이렇게 심하고 위험한데 왜 강아지 산책만 가능한지 의문이 들었는데 막상 이 곳에 오니 수긍이 갔다. 창 밖으로 보면 하루에도 수십 명이 조깅을 하고,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한다.


강아지에게는 산책이 유일한 바깥 외출이자 건강을 지키는 운동이다. 어떻게 강아지에게 코로나라서 산책을 못한다고 양해를 구할 수 있겠는가? 조깅 역시 영국 사람들이 건강을 유지하는 가장 보편적인 활동 중 하나인데 이를 막으면 다른 방향으로 사람들이 폭주할 것이 분명했다. 차라리 허용하되 가이드라인을 정해두면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따르고자 노력할 테니, 이 방안이 이 곳에서는 최선이었다고 생각한다.



처음 락다운을 시작할 때는 한 달을 예상했는데, 좀처럼 잦아들지 않는 확진자 수로 인해 4월까지 약 3개월을 락다운으로 보냈다. 원래 이렇게 살았던 것처럼 감정이 무뎌질 무렵, 4월 12일 락다운이 단계별로 해제되는 첫날을 맞이했다.


며칠 전부터 사람들의 기대감이 길거리에서부터 느껴졌다. 훨씬 밝아진 사람들의 표정과 들뜬 분위기에서 생기가 느껴졌다. 역시 사람은 서로 만나고 부대끼고 또 움직이면서 살아야 하는구나. 온라인 세상도 역동적으로 변했다. 공원 사진만 가득했던 힙스터 친구들의 인스타그램 포스팅이 점점 활기찬 까페로, 술집의 맥주병들로 다채롭게 바뀌고 있다.



락다운이 전부 해제된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까페, 음식점, 각종 학원 등의 실내 시설을 이용할 수 없다가 이제는 제한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 여기 와서 6개월 동안 단 한번도 까페에 앉아서 커피를 마셔본 적이 없어서 꼭 예쁜 까페를 찾아가고 싶다. 그래도 봄을 만끽할 수 있다는 기쁨에 갑자기 몰려나온 사람들로 인해 확진자 수가 다시 늘어날 수도 있기에 당분간 조심할 생각이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이곳에는 눈이 오고 가끔 우박이 오기도 했다. 락다운이 해제되고 이제야 진짜 겨울을 보내준 듯 따뜻해진 날씨와 다시 만난 활기가 참 좋다.

이른 아침 주말. 브런치를 먹는 사람들:) (photo by re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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