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국하던 날 엄마는 차에서 울면서 말했다.
“능력 없는 부모 만나서 학비 버느라 늦게 가는 것도 안쓰럽고, 가는데 못 도와줘서 미안해.”
대학교까지 지원해준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나이 서른 넘어서 회사도 몇 년이나 다녀 놓고 부모님 돈으로 유학 가면 그게 더 부끄러운 것이 아니냐고 말했지만 엄마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바란 적도 없고 그렇기에 원망이나 실망도 한 적 없으니 제발 미안해하지 말라고 했지만 엄마는 늘 죄책감을 돌덩이처럼 마음에 지고 계셨다. 집안 사정은 안 봐도 뻔하니 애당초 기대하지 않았을 뿐, 다른 애들처럼 부모님이 돈을 대주었으면 훨씬 더 편했을 것 아니냐고 하셨다.
팩트는 팩트였다.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아무 고민 없이 외국으로 공부하러 떠나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장학금을 받지 않아도, 아르바이트를 따로 구하지 않아도 되는 친구들은 공부라는 선택지를 망설임 없이 선택할 수 있었다. 찢어질 듯한 가난은 아니었지만 갑자기 기울어진 가세는 취업이라는 길 외에 다른 길을 안개로 뒤덮었다. 하지만 그 이유로 부모님을 원망하지는 않았다. 세상에는 많은 상황들이 있고 그에 따른 많은 선택들이 존재하기에. 나보다 더 나은 상황에서 더 못한 선택을 하는 사람도 있고, 더 못한 상황에 더 나은 선택을 하는 사람도 있다. 상황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도, 그 안에서 원하는 모든 선택을 할 수 있는 사람도 아무도 없기에 크게 마음 쓰려하지 않았다.
오히려 학비를 마련하는 과정이 회사생활에 도움이 되기도 했다. 상사가 먼저 퇴근시키기 싫다고 일도 없는데 집에 못 가게 할 때, 새벽 5시에 출근해서 대기하는데 상사가 전화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를 때, “더러워서 못 해 먹겠네.”라는 말이 혈관을 타고 온 몸을 한 바퀴 도는 그 순간, 이 모든 것이 목표를 위한 수단이자 과정이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모두 한 번쯤 경험했을, 아니 절대로 한 번만 경험했을 리 없는 그 고비마다 유학 비용을 마련하겠다는 목표의식이 나를 ‘존버’하게 했다. 팀장이 아무리 소리 지르고 호통 쳐도 늘 웃는 얼굴로 능청스럽게 응대하던 부장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팀장이 뭐라고 할 때, 나를 몰디브로 보내. 여기가 몰디브고 나는 파라솔 아래에 누워서 모히토 한잔을 마시고 있는 거지.”
좋은 조언이었다. 쓰임새가 확실한 목돈을 마련하는 과정이라고 하나 피부로 느껴지는 단기 목표가 아니기 때문에 가끔씩 약효가 떨어질 때도 있었다. 깨보다 더 심하게 들볶이는 날, 위에서 교묘하게 성과를 가로채서 억울한 날, 목표로도 견딜 수 없는 날이면 언제나 나를 영국 어딘가의 찻집으로 보냈다. 잔꽃 무늬에 금테 두른 3단 트레이에 샌드위치, 스콘, 마들렌 그리고 수제 잼이 차곡차곡 올라가 있는 애프터눈 티세트를 앞에 두고, 한 손에는 곡선의 아름다움을 한껏 뽐낸 티팟을, 다른 한 손으로는 꽃봉오리처럼 살짝 튀어나온 티팟 뚜껑을 조심스레 누르며 차를 따라 마시는 나를 상상했다. 내 몸은 비록 전쟁터에 있지만 내 마음은 언제나 영국으로 떠났다. 곧 가게 될 그곳을 미리 누리며, 하루를 살아내었다.
인간관계에서의 거리 두기도 가능했다. 회사 생활에서 바라는 게 많아지고 욕심이 생기면 사람들과의 갈등이 커지기 마련이다. 내 맘 같지 않은 사람들이 밉기도 하고, 얌체 같이 일을 남에게 던져 놓고는 본인이 일을 다 하는 척하는 사람들이 싫기도 했다. 그럴 때면 갑자기 회사라는 단체에서 나를 뽑아내었다. ‘나는 곧 떠날 사람이니까.’ 그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하면 화날 일도 없었고, 남에게 나쁘게 대할 일도 없었다. 못된 사람들을 보면서는 조금만 참으면 안 볼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좋은 사람들을 보면서는 떠나기 전에 뭐라도 더 잘해주자는 생각으로 지내니 마음이 편했다. 그곳에 있으되 그곳에 있지 않은 사람으로 지냈던 시간들은 1년도 못 버틸 것만 같던 회사 생활을 생각보다 오래 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유학 비용을 벌기 위해 버텼던 회사생활인데 주객이 전도되어 3년 동안 바짝 벌어서 떠나려던 계획에 차질이 생겨 버렸다. 다니다 보니 더 욕심나는 일들도 생기고 좋은 사람들도 만나며 내년에 가자, 내년에 가자 하다 보니 예기치 않게 6년이나 다니고 말았다. 그 역시도 결과적으로 도움이 되었다. 더 오래 다닌 덕에 유학 비용 외에 여유 자금을 마련했고, 향후의 선택에 여유로움이 생겼다.
남들보다 오랜 시간이 걸린 탓에 늦깎이 석사생으로서 체력의 부침을 느껴 홍삼 액기스를 매일 먹어야 하는 안타까움, 공부 모드로 돌아가는데 버퍼링 기간이 필요했던 아쉬움을 부정할 순 없다. 하지만 유학 비용을 마련하겠다는 마음 덕분에 회사 생활을 착실하게, 그러면서도 한 발짝 떨어진 마음으로 해나갈 수 있었다. 회사생활을 한 덕분에 좋은 사람들도 만날 수 있었고, 자소서에 적을 탄탄한 경력이 생겼다. 그러니 엄마는 그만 미안해했으면 좋겠다. 자식은 자식의 인생을 잘 살아왔고 또 잘 살아갈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