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금자리를 완성했다. 반려인, 반려묘, 반려꿈
이름 찾아, 터키로
터키 수습 기간 3개월 동안 나와 남자 친구는 예비 시댁에서 지냈다. 시댁 접객실에서 계속 먹고 자고 할 수 없으니 살 집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마침 나쁘지 않은 매물이 있어서 10분 만에 결정하고 계약했다. 영국에서 넘어왔을 때보다 짐이 크게 늘지 않아서 편하게 이사를 했는데, 막상 살다 보니 이것저것 필요한 물건들이 눈에 들어왔다. 매일 딩동 하는 소리와 함께 물건이 하나둘씩 집으로 배달되었다. 다음번에 이사 갈 때에는 캐리어 3개로 해결할 수 없을 것 같다.
베이스캠프를 꾸리면서 내가 무엇을 선택할 수 있는지 눈에 들어왔다. 살 곳, 같이 살고 싶은 사람들을 스스로 택할 수 있다. 그리고 보금자리에서 무엇을 할지, 무엇을 하고 싶지 않은지 고민하고 같이 사는 사람들과 규칙이나 약속을 함께 정할 수 있다.
회사를 그만두고 글을 써보고 싶다고 했더니 남자 친구는 단번에 그렇게 하자고 말해주었다. 내 생각에 자신이 없어서 사람들은 다르게 생각한다고 말할 때면 그는 내 생각과 내 감정이 가장 중요하다고 늘 말해주었다. 욕망은 가장 먼저 참고 무시해야 한다고 배웠는데, 나를 응원해주는 사람을 만났다. 어떤 일을 하는지 보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을 찾았다.
우리끼리 살 집을 구하면 꼭 반려묘를 들이고 싶었다. 고양이를 좋아해서 나중에 꼭 고양이와 함께 살 거라고 틈만 나면 말하고 다녔다. 한국에서 정착하지 못하고 매일 떠나는 상상을 했던 터라 영역 동물인 고양이를 쉽사리 들여올 수 없었다. 지금이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유기묘 입양 계정을 살펴보던 중 데리고 오고 싶은 고양이를 만났다. 첫째 딸, 우유와 가족이 되었다.
매일 잠들기 전, 고양이가 침대로 뛰어든다. 가슴팍에 앉아 골골 송을 내다가 다리 부근에 자리 잡고 몸을 돌돌 만다. 따뜻한 기운이 이불을 지나 다리에 전해질 때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을 다시 깨닫는다. 아침 8시면 배고프다고 울어대는 소리에 깨서 눈을 반쯤 뜨고 부엌으로 나가서 밥을 챙겨준다. 밥을 줄 때까지 눈을 떼지 않고 올려다보며 우는 아이에게 어떻게 하면 더 큰 행복을 줄 수 있을지 생각하며 오독오독 사료를 씹어 넘기는 모습을 지켜본다.
우리는 보금자리에서 자주 꿈꾼다. 갈비찜이며, 데리야끼 스테이크를 맛있게 만들었을 때면 이곳 어딘가에 아기자기하게 예쁜 식당을 열고 싶다. 뜨개질을 하고, 도안을 만들다가 예쁘게 뽑은 디자인으로 가방을 만들어서 팔아 볼까 생각한다. 어느 날은 나중에 에게해 주변에 집을 구해 바다를 바라보며 글을 쓰고 싶고, 또 어느 날은 아예 다른 나라에 가서 그 나라를 탐방하며 새로운 보금자리를 만들어보겠다고 꿈꾼다. 어떤 꿈은 허황되고, 어떤 꿈은 구체적이다. 어떤 꿈은 자주 찾아와서 오래 머물고, 어떤 꿈은 잠깐 들렀다가 사라진다. 하지만 이 모든 상상과 바람을 우리는 반려꿈이라고 부른다. 우리 보금자리에 꼭 필요한 구성원이다.
늘 집에 들어가기 싫어서 밖을 싸돌아 다녔다. 내가 바깥순이(집순이의 반대말로 써 봄) 여서 집에 붙어 있지 못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하루 종일 집에서 일하고 시간을 보내도 아무렇지 않다. 예전에 살던 집들이 보금자리 같지 않았나 보다. 내 보금자리를 내가 가장 행복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다. 가장 행복하려면 내가 나답게 살 수 있어야 한다. “사는 게 다 비슷비슷하지.”라는 말로 지금을 밋밋하게 아무 맛 나지 않는 듯 대하고 싶지 않다. 보금자리에서 부정적인 감정을 피하지 않고 해소하면서 계속 무언가를 꿈꾸고 나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