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휴직을 준비하면서 평소보다 바쁜 나날들을 보냈다. 우리 파트가 파트도 아니었던 시절부터 일해왔기에 그동안 쌓였던 자료들을 넘겨주어야 했고 해왔던 업무들을 남은 사람들에게 인수인계해야 했다. 새로운 사람들에게 유독 친절했던 이유가 이렇게 떠나려고 그랬던 것이었냐면서 파트에 새로 온 사람들은 서운함을 표했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터줏대감 같이 버티고 있던 사원 하나가 빠지고 나면 그들이 자리 잡는데 더 수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마지막 날 자리를 정리하고 PC를 맡기기 전, 팀 사람들과 함께 일했던 유관 부서 분들에게 쓸 메일을 작성했다. 메일 제목은 "학교 다녀 다녀오겠습니다."였다. 그동안 업무를 하며 배운 것들, 뿌듯하고 감사했던 일들을 써내려 갔고, 공부하고 와서 더 열심히 일하겠다는 다짐과 함께 사람들에게 인사를 했다. 특히 여러 전시회와 기자회견, 간담회를 준비하고 함께 밤을 새우며 일했던 미국 법인 동료들과 인사를 할 때에는 왠지 모르게 울컥하는 마음에 인사를 제대로 건네지 못했다.
그랬던 내가 1년이 지나고 주변 사람들에게 다시 말을 꺼냈다.
"퇴사하러 다녀오겠습니다."
이 말은 오랫동안 마음속에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툭 용기를 얻어 세상으로 밀려 나왔다.
내 생각을 표현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다루는 매개체가 나중에 달라질 수도 있지만 지금은 글을 쓰고 싶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글 쓰는 일에 집중하고자 마음먹었다. 호기롭게 하고 싶은 것을 하겠다고 말했지만 여전히 두려웠다. 다들 안된다고 말하며 우려와 걱정을 보내자 더욱 망설였다. 사람들이 하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진심으로 나를 걱정해서 하는 말임을 알기에 무시하기 어려웠다. 선택하려고 앞으로 팔을 뻗을 때마다 걱정의 늪에서 나를 뒤로 끌어당겼다.
회사를 그만두지 않고 글을 써보는 게 낫지 않을까 저울질해봤다. 회사를 마저 다니며 글을 쓰다가 가닥이 보이면 그때 징검다리를 건너 듯 안전하게 폴짝 뛰어 넘어간다면 완벽한 시나리오일 것 같았다. 가보지 않은 길을 안전장치 없이 가기 무서우니 회사라는 든든한 대안에 한쪽 다리를 걸쳐 놓고 싶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계획을 세울수록 적어도 내게는 비현실적인 계획이라는 사실이 선명해졌다. 회사를 다니면서 행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6년 동안 회사를 다니며 한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책상 앞에 앉으면 신세 한탄 외에 쓸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도 쓰다 보면 마음이 나아질까 싶어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려놓으면 내가 얼마나 불행한지, 어떤 괴로움을 견디고 있는지 토해내기 일쑤였다. 더 이상 자기 연민과 분노에 빠진 글을 쓰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한 번은 내가 원하는 길을 걸어가 봐도 되지 않을까? 지금이 그 타이밍이 아닐까? 내 길이 아니다 싶은 곳에서 떨어져 나와 다른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첫사랑과 헤어질 때만큼 오랫동안 다닌 첫 회사를 그만두는 것이 어렵다고들 한다. 짧다면 짧고, 오래 라면 오래 걸렸다. 동화에서는 결혼이 해피엔딩이지만 현실에서는 또 다른 챕터의 시작인 듯, 퇴사한다고 “도비는 자유예요!”를 외치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진 않는다. 진짜 서바이벌이 시작될 것이다. 그래도 새로 시작하려면 잘 헤어지는 일이 중요하니 다시 한번, 외쳐본다.
퇴사 잘하고 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