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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두유 Oct 30. 2022

인생 튜토리얼. 터키에서 살아 보기로 했다

이름 찾아, 터키로

영국에서 1년을 보내고 나와 남자 친구는 그동안 미뤄두었던 결정을 내릴 시기를 맞이했다. 앞으로 어디서 살지를 정하는 것이었다. 퇴사를 결심하고 나니 다음으로는 어디에서 살지 결정할 차례였다. 우리에게는 영국에 머물지, 한국으로 돌아갈지, 터키로 갈지, 아니면 제3 국가를 갈지 네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영국은 사람들이 여유롭고, 분위기 있는 건물과 산책하기에 좋은 공원이 많았다. 하지만 동양인 여자에게 안전한 곳이 아니었다. 길거리에서 늘 인종 차별을 마주했고, 창 밖으로 늘 폭행, 고성, 싸움 등 사건 사고가 일어났다. 게다가 정말 큰일이 생겼을 때, 우리를 도와줄 사람들이나 제도가 없다는 점이 이방인이라는 감각을 더 선명하게 만들었다. 그 모든 것을 감수하고 비싼 물가까지 견디며 있을 이유가 없었다.


그렇다고 한국으로 돌아가긴 싫었다. 내 선택은 내가 반드시 무언가를 얻을 거라 확신에 찬 선택이 아니었다. 삶에는 연습 게임이 없다지만, 지금 나에게 이 선택은 튜토리얼 모드를 진행하는 것과 같았다.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가는 마음 가짐과 태도를 익혀서 실전에서 살아내려고, 연습해보는 셈이다. 내 생각과 욕망을 의심하지 않고 원하는 대로 믿고 나아갈 수 있도록 집중해야 하는데, 한국은 나에게 좋은 환경을 제공해줄 수 없는 곳이었다. “다 너 잘되라고” 끊임없이 불안하게 만드는 말을 하고, 네가 한 선택이 우리를 존중하지 않고 불행하게 하는 선택이라고 말하며 끊임없이 나에게 죄책감을 안겨주는 가족들이 있었다. 남들과 비교하며 정해진 원 안으로 들어와야만 제대로 살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사회가 있었다. 그곳에서 떨어져서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고 존중하고 지켜내는 태도를 익힐 시간이 절실했다.


물가가 비교적 저렴해서 벌어 둔 돈으로 살 수 있는 터키가 가장 매력적인 선택지로 올라왔다. 무슨 일이 생겨도 남자 친구가 해결할 수 있고, 도와줄 수 있는 가족들이 있어서 든든하기도 했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한국보다 남들의 시선에 자유로운 분위기인 것 같아 마음에 들었다. 그래도 직접 살아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기에, 일단 3개월 동안 터키에 지내면서 터키를 알아 가기로 했다.



영국에서 터키로 넘어가려고 이사를 준비하면서 기분이 묘했다. 나라를 이동할 때면 늘 한국이 시작이거나 끝이었다. 한국에서 떠나거나, 한국으로 돌아오거나. 떠나는 곳은 늘 조만간 돌아갈 곳이었다. 한국에서 짐을 싸면서 분명 일 년 뒤에 돌아올 텐데 하며 캐리어를 잠갔는데, 한국에 돌아가지 않고 다른 곳에 살게 되었다. 그땐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나라, 터키에서.


늘 혼자 떠나고 돌아오는 짐을 쌌다. 남자 친구와 함께 챙겨야 할 물건은 캐리어에, 버릴 물건을 쓰레기봉투에 넣고, 팔 수 있는 물건들은 페이스북 장터에 올렸다. 영국에서 우리는 따로 또 같이 였다. 남자 친구 셰어 하우스에서 함께 지냈지만 내 기숙사 방이 그대로 있었고, 물건도 따로 있었다. 영국에서 살았던 일 년치 짐을 정리하며, 터키에 가면 우리는 진짜 함께 살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국제 커플이 같은 나라에 살기 위한 절차로, 정식으로 혼인신고를 하고 다음 단계를 함께 고민하고 나아갈 것이다. 내 인생에서도, 우리 관계에서도 한 페이지를 마치고, 다음 장으로 넘어가는 단계이다.


삶에도 시범 기간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한번 해보고 싫으면 말자는 선택지는 언제나 존재했지만 한 번도 눈길을 주지 못했다. 감히 그 선택지에 브이나 동그라미를 치거나, 까맣게 칠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정답과 모범답안을 빠르게 찾지 않으면 큰일이 나는 줄 알았다.

드디어 튜토리얼 기간을 시작했다. 일단 퇴사하고 글을 써보고, 일단 터키에서 살아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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