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에서 혼인 서약 하기
“우리 내일 결혼해야 해.”
내일 일정을 확인해 본다. 아침에 일어나서 밥을 먹는다. 필요한 서류를 모두 챙겼는지 다시 한번 확인한다. 시청으로 출발한다. 결혼한다. 이민 센터로 가서 가져온 서류를 제출하고 필요한 서류를 새로 받는다. 집에 돌아와서 짐을 싼다. 차를 타고 공항으로 간다. 신혼여행을 떠난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농담이다. 나는 한국으로, 남자친구는 불가리아로 출국한다. 그리고 우리는 한 달 동안 떨어져 지낸다.
이런 상황에서 남자친구는 내게 마치 몇 년 만에 귀국한 동네 친구에게 연락이 와서 커피를 마시기로 했다는 듯이, 화장실에 휴지가 똑 떨어져서 사러 가야겠다고 말하듯이 결혼 일정을 알렸다. 문장 그대로 받아들이면 당혹스럽고 대책 없어 보이지만 둘 다 이미 알고 있는 상황이었다. 출국하기 전에 혼인 신고를 하면 튀르키예로 돌아와서 거주증을 발급받기 편해지기 때문에 미리 준비했지만 한 단계 진행할 때마다 예기치 못한 일들이 터졌다. 대사관이며, 번역 센터, 시청을 왔다 갔다 하며 일을 처리하다 보니 결국 출국하는 날 결혼하게 되었다.
튀르키예에서 혼인 신고를 하려면 시청에 가서 혼인 서약 절차를 밟아야 한다. 결혼식을 올리는 경우, 담당 직원이 결혼식장으로 출장을 나가 절차를 진행하고 혼인 증서를 발급해 준다. 결혼식 일정이 잡히지 않았거나 별도로 올릴 계획이 없는 사람들은 시청에서 증인 두 명과 함께 간소한 결혼식 같은 절차를 진행한다.
먼저 일어날 일들을 우선 처리하기로 한다. 열두 시 반에 결혼하려면 뭐부터 준비해야 하나? 옷장을 열어 입을 옷을 고민하고, 이따가 쇼핑몰에 들러 반지를 사기로 했다. 캐리어 가방이 걸리적거려서 구석으로 밀어 두었다. 오늘 여유가 되면 짐을 싸 보겠지만 내일 결혼하고 집에 올 때까지 가방이 계속 열려 있을 것만 같았다. 비행기 시간은 정해져 있으니 내일의 내가 어떻게든 챙길 거라고 믿어본다.
약식이긴 해도 대부분 웨딩드레스 분위기를 내려고 하얀 원피스를 입고 가지만 내 눈에 예쁜 옷을 입고 결혼하고 싶어서 사놓고 아껴두었던 개량 한복 허리 치마를 입기로 했다. 몸에 살짝 붙는 까만 니트와 함께 입으면 예쁠 것 같았다. 짝꿍도 내일 입을 양복을 챙겨서 소파에 올려놓고 고양이들이 건드리지 못하게 방문을 닫았다.
옷을 정했으니 반지를 사러 쇼핑몰에 갔다. 두 번째로 들어간 가게에서 마음에 드는 반지를 골랐는데, 샘플용 반지가 우리 손가락에 커서 헐렁거렸다.
“저희가 내일 결혼해야 하는데…”
“샘플용 반지로 가져가시고 치수 맞는 반지가 완성되면 그때 교환해 가세요.”
결혼반지도 대여할 수 있는 거였나 어리둥절했지만 호의를 감사하게 받아들이며 헐거운 반지를 잃어버릴까 조심스레 케이스에 넣어서 가져왔다.
혼인하는 장소까지 차로 이십 분이면 도착할 거리지만 한 시간 일찍 출발했다. 차 안에서 짝꿍에게 혼인 서약에서 뭘 하면 되는지 물었다. 한국 결혼식에서 주례 선생님이 “기쁠 때나, 슬플 때나”로 시작하는 질문을 하는 것과 비슷하게 혼인 서약 담당자가 물어볼 거고, 거기에 튀르키예어로 “네”를 의미하는 에벳 evet 하고 대답하면 된다고 했다.
대기실에서 기다리며 거울을 보며 립스틱을 한 번 덧바르고 앞 머리를 단정하게 정리했다. 예비시어머니가 사 온 꽃다발을 들고 짝꿍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발을 동동 굴렀다. 영국에서 자주 가던 모리슨 마트에서 마늘 다발을 발견하고 거꾸로 들고 남자친구와 “나랑 결혼해 줄래?”라고 말하며 둘이서 낄낄거렸던 날이 생각났다. 결혼을 하든 안 하든 우리는 계속 지금처럼 관대하고 진심인 웃음을 나누며 살 거라는 확신을 떠올렸다.
직원의 안내를 받아 혼인 서약 장소로 들어가니 단이 높은 곳에 좌우로 긴 테이블이 놓여 있었고, 앞에 백여 명이 앉을 수 있는 좌석이 보였다. 객석을 바라보고 앉는 자리에 앉았고, 테이블 오른쪽에는 증인으로 참석하는 두 고모와 시동생이 앉았다. 잠시 후, 실크처럼 광택이 있는 붉은 가운을 걸친 담당자가 두꺼운 서류를 들고 들어왔다.
본인이 영어를 할 줄 알았다면 좋았을 텐데 미안하다고 말하며, 담당자가 튀르키예어로 이야기하고 짝꿍이 영어로 통역해 주었다. 그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지만 진지하게 단어 하나하나 듣고 있다고 보여주고 싶어서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서류에 적힌 당사자가 맞는지 확인하는 질문을 마치고 한참 길게 이야기하다가 담당자가 나를 봤다. 지금이 대답해야 할 때인가 싶어서 “에벳…?!” 하고 답했다.
“아니야. 그 질문 아직 아니야.”
어서 빨리 결혼하고 싶어 안달이 난 신부처럼 미리 대답해 버렸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모두 한바탕 웃었다.
“결혼하면 좋은 날도, 안 좋은 날도 있을 거고 행복할 때도, 어려울 때도 있을 겁니다. (중간 생략) 그 어떤 압박이나 누구의 강요도 없이 온전히 자발적인 의지로 이 혼인 서약에 임하며 앞으로 살아갈 날들의 행복, 고난, 슬픔, 기쁨 모든 과정을 둘이서 함께할 부부가 될 것을 맹세합니까?”
소중한 사람과 함께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일상을 채워 오며, 나는 사랑한다는 말이나 보고 싶다는 말만큼은 꼭 “사랑해”, “보고 싶어”라는 소리와 문장으로 말하고 싶었다. 잘 말하는 만큼 잘 전하고 싶었다. 그에게 가장 친숙한 언어에 마음을 가득 눌러 담아 보려고, 튀르키예어로 두 문장을 어떻게 말하는지 물었다. 낯선 발음을 기억하려고 여러 번 소리 내어 외우고, 그가 말해줄 때 입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빤히 바라보며 눈으로도 익혔다. 서로에게 모국어보다 늘 낯설 수밖에 없는 언어에 마음을 다 담지 못할까 조바심이 나서, 중요한 말은 꼭 내 모국어로, 상대의 모국어로 말해주고 싶었다.
에벳이라는 말을 들으면 머릿속에서 에벳은 네라는 뜻이었다고 잠시 생각하고 나서야 알아들을 만큼 나에게는 아직 낯선 단어였다. 튀르키예어로 만든 “에벳”이라는 말 그릇에 마음을 고이 담았다. 뭣도 모르고 서둘러 대답해서 철없는 신부 같았던 아까와 달리, 이번에는 천천히 입을 떼어 대답했다. 목구멍이 살짝 좁아졌다가 그 안에서 무언가 뜨겁게 일렁이는 느낌이었다. 뒤이어 남편이 질문에 에벳하고 대답했다. 긴장해서 시선을 어디에 둘지 몰라서 눈동자가 방황하는 나를 안심시켜 주려는 듯, 남편은 나를 바라보고 내 손을 꼭 잡았다.
혼인 서약 담당자는 우리의 대답을 듣고 나서 증인석에 앉아 있던 시동생, 고모 둘에게 두 사람의 결혼이 유효하고 거짓됨 없는 것을 증인으로서 증명할 수 있냐고 물었다. 여기에서 증인들은 네라고 대답하는 대신 증인으로서 동의합니다, 두 사람의 혼인을 지켜보았음을 분명하게 증언합니다 등 다른 문장을 말했다. 혼인 서약에서 대답이 진실하고 무게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부부만 “에벳”이라고 선언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는 거라고 했다. 시청에 마련된 혼인 서약하는 공간에서 약 이십 분 남짓 되는 시간 동안만큼은 신랑과 신부만이 단어의 소유권을 넘겨받는다.
“이 결혼을 정말 자발적인 의지로 동의합니까?”라는 질문이 나에게는 “함께 하겠다는 선택과 스스로의 행복에 책임지겠다고 선언합니까?라는 질문처럼 들렸다. 그 질문에는 나와 내 반려자만 대답할 수 있다. 마음을 눌러 담아 대답했다. 에벳.